조세형평에도 어긋나, 황재세 도입 산유국과는 상황 달라

지난해 7월 25일 민주노총 등 관계자들이 2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국내 정유사 앞에서 재벌 정유사의 폭리를 규탄하고, 정부에 '횡재세'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연합뉴스]
지난해 7월 25일 민주노총 등 관계자들이 2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국내 정유사 앞에서 재벌 정유사의 폭리를 규탄하고, 정부에 '횡재세'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보민 기자 】지난해 에너지 대란 속에서도 사상 최대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드러난 국내 정유업계가 요즘 좌불안석이다.

민주당을 위시한 정치권이 초호황을 누린 정유사들이 벌어들인 이익금 일부를 세금으로 환수하는 ‘횡재세’ 도입을 거듭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난방비 폭등으로 부담이 커진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횡재세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제기되면서 국내 정유사들은 속앓이만 하고 있다.

이에 국내 정유사들은 정치권의 횡재세 도입 움직임은 시장논리를 철저히 무시한 잘못된 주장이라며 결론이 어떻게 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횡재세는 지난해 상반기 SK이노베이션을 비롯한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S-Oil) 등 정유 4사가 12조원이 넘는 흑자를 기록하면서 정치권과 민노총을 중심으로 횡재세 도입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해 하반기 들어 국제유가 급락으로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던 횡재세 도입 주장이 최근 국내외 정유사들의 실적 발표가 잇따르면서 재점화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난방비까지 폭등하면서 정치권은 서민지원을 명분으로 횡재세 도입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치권이 이처럼 국내 정유업계를 대상으로 횡재세를 도입하려는 배경은 서민들이 '난방비 폭탄'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반해 정유사들은 가만히 앉아 떼돈을 벌었다는 것이 이유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횡재세를 걷어 취약계층을 위한 재원으로 삼자며 정부와 정유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정유사들은 지난해 최대의 실적을 거둔 것과 횡재세를 연결짓는 것은 시장논리를 무시하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난방비 폭등과 국내 정유사들의 최대 실적과는 연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횡재세가 거론되는 것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최근의 난방비 폭등은 국내 가정의 난방 연료별 비중이 액화천연가스(LNG)가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다 주요 난방 연료인 LNG를 수입·판매하는 곳은 정유사들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 4사가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거둔 것은 사실이다.

에쓰오일(S-Oil)은 지난해 연간 매출 42조4460억원, 영업이익 3조4081억원을 기록,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대 규모로, 전년보다 각각 54.6%, 59.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실적을 발표하진 않았지만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도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최대 석유메이저 엑손모빌도 지난해 557억달러(약69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는 등 로벌 석유 메이저들 역시 지난해 사상 최대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미국 셰브런과 영국 셸은 각각 354억달러(44조원), 398억달러(49조원)가 넘는 이익을 냈다. 

하지만 국내 정유업계는 글로벌 메이저들과 수익구조가 다르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글로벌 석유 메이저들은 주로 땅속, 바다 밑에서 퍼 올린 원유를 팔아 큰돈을 벌기 때문이다.

실제 셰브런의 경우 지난해 원유 채굴·판매로 올린 수익이 전제 영업이익의 8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내 정유사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원유를 정제한 뒤 이를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며 수익을 올리기 때문에 글로벌 메이저 정유사들과 단순 비교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국내 정유사들이 과연 횡재세를 낼만큼 폭리를 취하고 있는지 여부는 영업이익률을 따져보면 알 수 있다.

지난해 1∼3분기 국내 정유 4사의 영업이익률은 9.4%로 확실히 남는 장사를 한 것으로 평가는 되지만 같은 기간 반도체 업종의 영업이익률 22.2%와 통신기기 14.7%와 비교하면 한참 뒤지는 실적이다.

게다가 산업연구원이 업종별 영업이익률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7∼2021년 정유업계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5%에 그쳤다.

정유사들은 코로나 사태가 터진 2020년 석유 수요 급감으로 연간 5조원에 달하는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을 때 그렇다고 해서 당시 정유사에 대한 손실 보전 등 정부의 지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던 만큼 수익이 기대 이상으로 많이 발생했다고 횡재세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조세형평에도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횡재세는 초거대 석유기업인 BP, 셸 등을 갖고있는 영국과 같은 산유국에서 원유가격이 급등할 경우 부과할 수 있는 세금"이라며 "전량 원유를 수입, 정제해 정제마진에 의존하는 국내정유사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고 주장했다.

국내 정유사들은 글로벌 석유시장의 시황에 따라 정제마진이 기본적으로 결정되며 손실을 보게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국내 정유사는 전량 수입한 원유를 정제해 이 중 60% 이상을 수출하고 있다"며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국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로  세계적 수요변동에 따라 업황도 부침을 겪는 만큼 횡재세를 도입할 경우 과세 근거, 명확성, 예측 가능성 등 여러 사안을 폭넓게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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