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우 50년 문학 인생에 내놓는 18번째 서정시편들

양성우 시집, 일송북. 정가11,800원
양성우 시집, 일송북. 

삶과 대자연을 긍정하며 합일(合一)을 이루다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독재에 대한 저항시집 『겨울공화국』으로 우리나라 민주화에 불을 지핀 양성우 시인이 18번째 신작 시집 『꽃의 일생』을 펴냈다.

팔순을 맞아 펴낸 이 시집에는 자연과 한 몸이 되어 쓴 생태 시편들과 함께 삼라만상이 자연스레 하나가 되는 원숙한 시편들이 실려 있다.

  양성우 시인은 1970년 『시인』지로 등단해 1975년 집회에서 시 「겨울공화국」을 낭송하여 교사직에서 파면되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장시 「노예수첩」을 국내에서는 발표할 수 없어 일본의 잡지 『세카이(世界)』지 1977년 6월호에 게재했다가 국가모독죄로 투옥되었다. 두 시 모두 제목에 그대로 드러나듯 당시의 유신독재 체제를 비판한 투쟁시다. 

  양 시인이 투옥되자 자유실천문인협의회(현 한국작가회의) 측 문인들이 시인의 시들을 묶어 1977년 『겨울공화국』을 펴냈다. 이에 연루돼 고은, 조태일 시인 등이 투옥되기도 했다.

 1979년 가석방된 시인은 1985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장을 맡는 등 시작詩作과 함께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

 1988년에는 국회의원에 당선돼 현실정치에 잠시 발을 담구었다가, 요즘은  시작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번 시집은 시인이 대자연과 자연스레 하나가 되는 순정한 마음으로 선보인 시편들이 모여 있다. 인간의 꿈과 삶과 일생이 어떻게 우주 삼라만상과 한 몸, 한마음이 되어 서로를 염려하며 건강한 우주적 삶으로 순환하는 지를 시인의 시적 내공을 통해 보여준다.  

  무척 긴 무더위 끝에 온, 이른 가을 첫 비 내린 뒤의

  그윽한 풀빛같이

  혼자서 무심코 걸어가는 길 위에서 문득 만나는

  때 이른 한 잎의 빛 고운 가랑잎같이

  작은 연못의 무성한 넓은 잎 틈으로 보얗게 피어나는

  수줍은 수련꽃같이

  찬 수풀 너머 모래밭에 떠나간 이들의 이름을 쓰고

  돌아와 눕는 날 밤의 서쪽 하늘가에 걸린 붉은 초승달같이

  내 가슴을 휘저으며 그가 왔다

  시여 노래여

  겹겹으로 두른 검푸른 산과 산, 그 산 너머 저 멀리

  우뚝이 솟은 흰 산봉우리같이

  -「시여 노래여」 전문

  양 시인의 시편들은 그리움과 사랑에 대한 노래다. 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순정한 마음을 그대와 삼라만상 앞에서 무릎 꿇고 정갈하게 부르는 노래다. 거듭거듭 정갈하게 바쳐져 시 자체가 노래가 되는 연가(戀歌)다. 그래서 실제 많은 시편이 가곡으로 작곡돼 불리며 대중의 가슴에 뭉클하면서도 유장한 감동을 주고 있다.

 “내 가슴을 휘저으며” 왔다는 ‘그’는 누구인가? 풀빛, 가랑잎, 수련꽃, 초승달, 산봉우리 등 순수한 면을 불러들여 한 몸 되게 하는 그는 누구일까?

  ‘그’는 첫 비에 씻긴 풀빛 같은 순정한 마음이며, 억압의 검은 산 겹겹 너머 솟아오른 흰 산봉우리, 혹은 밤하늘에 붉게 걸린 초승달 같은 결기다. ‘그’는 또 그런 마음으로 쓴 시이며 마음과 시가 한결같은 시인 자신이다. 

'꽃의 일생'을 통해 하나가 되다  

  이처럼 삼라만상, 대자연과 자연스레 한 몸, 한마음의 시세계가 바로 『꽃의 일생』이다. 아래는 표제작 「꽃의 일생」이다.

꽃이 피기 전에 어찌 아픔이 없겠느냐

어떤 큰 몸부림의 뒤에 문득 눈 시린 꽃잎으로

피어나는 것이겠지

그 누가 부르지 않아도 절정은 그렇게 오고

나비가 오고

새의 날갯짓에 놀라기도 하지

웬일인지 몰라도 꽃이 활짝 피면

기다렸다는 듯이 비바람이 치니

어찌 눈물 없이 꽃의 일생을 살았다고 말할까

사람도 한 때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울고

술을 마시고

어둠 속을 헤맴은 흔한 일이라

그러다가 무엇을 두고 온 것처럼 오던 길을

잠깐 돌아보는 사이에

몸도 영혼도 시드는 것!

이와 같이, 저도 모르게 꽃잎은 지고

물에 떠서 흐르고

그다음에는 언제나 또다시 긴 적막이 오겠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이

 누가 부르지 않아도 꽃은 피고 지고 우리네 삶 또한 그런 대자연의 운행 법칙에 따른다. 또 꽃의 피고 짐, 생과 사의 섭리가 자연스레 피어난다. 

  이번 시집 후기에서 시인은 “오늘도 여전히 문학소년 때와 같이 밤잠을 설치며 시에 매달리는 나의 고행은, 남이 보기에는 이것이 아무리 허망한 일일지라도 내가 죽는 날까지 그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런 첫 마음, 첫 순정의 시 쓰기의 고행이 이제 일체 하나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무엇보다 자연과 일체, 일심이 된 시 쓰기가 환경 생태시를 넘어 에코 철학의 깊이에 이르게 했다. 

시지프스처럼 달려온 50년 

시인은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문단에 나온 지 어언 50년이 넘었다.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이 땅에서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다지 녹록지만은 않았다. 유달리 나에게만 그랬는지는 몰라도, 내가 걷는 시인의 길은 굴곡이 많고 비탈지고 거칠었다. 

그래서 중간중간에 나는 몇 번이나 시에서 떠나려고 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몸을 사로잡은 시의 팔심이 너무도 강하여 나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주저앉곤 했으니, 이 어찌 시 쓰기를 내 운명이라고 자처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렇게 나는 한평생을 시에 묶여서 살아왔다. 차라리 일찍부터 풀무질하고 쇠를 두들겼더라면, 지금쯤은 노련한 대장장이로 가족을 편안히 먹여 살릴 수도 있었을 터인데, 나는 차마 그러지도 못한 채, 오늘도 여전히 문학소년 시절과 같이 밤잠을 설치며 시에 매달리는 나의 고행은, 남이 보기에는 이것이 아무리 허망한 일일지라도 내가 죽는 날까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시지프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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