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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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희대의 헛소리를 들었다.

‘대장동 일당에 조력한 대가로 아들을 통해 약 50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곽상도 전 의원이 1심에서 뇌물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았다’라고 여기저기에서 기사로 나왔다.

50억원을 아들이 대신 받았는데 무죄라고?

무죄의 이유는 “아들 계좌로 입금된 성과급 중 일부라도 피고인에게 지급되는 등 사정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 검찰 증거만으로 아들에게 지급된 돈을 피고인에게 지급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이다.

대한민국에서 50억 정도까지는 뇌물이 될 수 없고 그냥 주고받아도 된다는 것을 만천하에 선포한 셈이다.

한 번 더 양보해서 본인한테 직접 주면 걸리니 자식한테는 줘도 된다는 의미이다. 뇌물로 받은 돈을 세금 한 푼 안내고 증여할 수 있는 방법을 사법부에서 친히 알려 준 셈이다.

50억원까지는 뇌물도 가능하고 세금 없이 상속도 가능하다는 법적 논리를 전개한 이 희대의 헛소리는 내 평생에 처음 겪는 일이다.

프린스턴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이자 세계적으로 저명한 도덕철학자인 해리 프랑크퍼트 (Harry Frankfurt)의 ‘On Bullshit’ (우리나라에서는 ‘개소리에 관하여’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에 따르면 헛소리는 ‘사람들의 자신이 하는 말의 진위를 신경쓰지 않고 상대방을 감동시키거나 설득시키고자 할 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정확한 논거나 논리와는 아무 상관없이 상대방을 헷갈리게 하고 정신 못차리게 하는 것이 바로 헛소리이다.

이런 헛소리는 듣는 사람을 헷갈리게 하고 정신없게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마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말도 안되는 데이터를 갖다 붙이기도 하고, 온갖 전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거의 철칙이다.

예를 들어 이렇다.

내가 내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와의 약속에 40분 정도 늦었다고 하자.

‘왜 늦었어?’ 라고 묻는 친구 말에 사실 유튜브 보면서 놀다가 그냥 늦게 나왔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진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분명 친구한테 명치를 엄청 세게 맞을 것 같기 때문에 ‘버스 타고 오다가 접촉사고 나서 늦었어’라고 거짓말을 한다. '

그런데 사실 그 정도 거짓말은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불안한 마음에 여기에다가 정당성을 부여하고 근거를 부여하는 말도 안되는 작업을 하게 된다.'

‘왜 강남역 앞 사거리 있잖아. 거기가 접촉사고가 많이 나거든. 1차선, 2차선 둘다 좌회전 차량인데 급한 마음에 1차선에서 동시 신호일 때 직진하는 차량이 가끔 있어. 급정거 했는데 살짝 긁혔네. 보험회사 사람 기다리고, 그 사람 와서 처리하다 보니까 금방 40분 지나가더라.’ 라고 말한다. '

내가 지금 길게 한 말, 바로 그게 헛소리다.

그냥 거짓말은 앞에 접촉사고로 늦었다는 부분이고 그 거짓말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온갖 이유를 가져다 붙였는데 그게 바로 헛소리이자 개소리이다.

헛소리를 구성하는 가장 쉬운 요소이자 그럼으로써 가장 설득력 있는 요소는 첫째, 데이터를 가지고 설명하는 것, 둘째, 전문가처럼 어려운 용어를 쓰는 것이다.

데이터를 가지고 오독하고 목적에 맞게 재구성하는 그러한 행위는 이전에도 다뤘고, 앞으로 계속 다룰 부분이다. 전문가처럼 어려운 용어를 쓰는 것에 대해 오늘은 조금 더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훌륭한 법조인일수록 작은 평수에 산다’는 논지를 누가 얘기했다고 하자.

그럼 우리는 그냥 검소하니까 그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작은 평수에 산다는 사실이 집값이 비싼데 살기 때문에 평수를 좁힐 수 밖에 없어서 때문일 수도 있다.

더군다나 훌륭하다는 개념도 모호하다.

훌륭하다는게 판결이 올바른 건지, 그럼 올바른 건 어떻게 증명하는 건지, 항소가 없어야 올바른 건지, 항소가 없다는 건 또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등등 그 기준만 고려해도 머리가 아프다.

여기서부터 진짜다.

해당 주장을 편 사람이 그 상관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독립변수를 평수로 하고 종속변수를 항소율로 했고, 매개변수와 조절변수를 고려했으며 구조방정식 모델을 사용해서 결과값이 00으로 아주 강건하게 우리 가설을 지지함을 발견했습니다’라고 떠들었다고 하자.

그걸 알아들을 사람이 전 인구의 몇 %일까?

그리고 그 말을 하는 시점에 청중의 대상 중에 통계학에 대해 깊게 공부한 사람들이 없다고 한다면, 그 말의 진위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0에 수렴한다.

이게 바로 전문용어를 빌려와 지껄이는 헛소리이다.

물론 이번 판결문은 이해하기에는 상대적으로 쉽다.

판결 내용이 이해가 안되는 것이지 형식적으로 이해하기는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대중들은 “피고인 김만배의 (녹음 파일 속) 진술은 피고인이 아닌 자인 곽병채의 진술을 내용으로 하는 진술로 전문진술인데 곽병채는 공판에 출석해 증언했으므로 전문진술을 증거로 인정할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할까?

다시 한 번 오늘은 다른 때보다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다.

냉정하게 말해서 검사나 판사가 재판 결과에 대해 온갖 법적 용어를 써 가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면 그게 바로 헛소리다.

왜냐고?

웬만하면 우리는 법적 용어를 잘 모르니까 말이다.

아마도 법전이, 그리고 법 용어가 어려운 이유는 일반인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알아서 수긍하라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합리적인 의심을 가진다.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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