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월급’ 주던 김일성과 차이
2년 전 평양 식량난에는 비축미 방출
“핵심층만 챙기면 된다는 생각인 듯”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1년 6월 17일 노동당 제8기 3차 회의에서 평양 지역에 식량 긴급 방출을 지시하는 특별명령서를 펼쳐 보이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1년 6월 17일 노동당 제8기 3차 회의에서 평양 지역에 식량 긴급 방출을 지시하는 특별명령서를 펼쳐 보이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 북한에 식량 부족으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 가운데 김정은이 손을 놓고 있는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식량난이 본격화 하는 시점에 노동당 차원의 대책 회의를 소집해 놓고도 막상 연설 등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 없이 ‘정신 승리’ 만을 강조하는데 그친 것이다.

북한에 상당한 규모의 아사자가 발생한 사실이 확인된 건 지난달 18일 대통령실의 발표를 통해서다.

당시 북한은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는 도발을 감행했는데, 이에 즉각 대응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개최한 대통령실이 결과 발표를 통해 “북한 내 심각한 식량난으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정권이 주민의 인권과 민생을 도외시하며 대규모 열병식과 핵⋅미사일 개발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북한 당국은 식량 부족사태나 아사자 문제에 대해 아예 언급을 않고 있다. 하지만 한⋅미 군사훈련이나 대북 제재 움직임 등에 민감하게 반응해온 북한이 우리 정부의 ‘아사자 속출’ 발언에 대해 함구하는 것으로 볼 때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도 대통령실의 발표 하루 뒤인 19일 담화에서 “적의 행동 건건사사를 주시할 것이며 우리에 대한 적대적인 것에 매사 대응하고 매우 강력한 압도적 대응을 실시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식량 문제에는 입을 열지 않았다.

북한이 2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를 소집하면서 식량 문제와 아사자 대책이 집중적으로 다뤄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었다. 농업 문제가 단일 의제로 다뤄지는데다 지난해 12월 말 전원회의를 개최한지 불과 두 달 만에 열렸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농업 증산 등과 관련한 일반적인 논의 수준에 그쳤다. 김정은 위원장은 연설에서 “농업발전에 부정적 작용을 하는 내적 요인들을 제때에 찾아내 해소하는 것이 절실한 요구”라고 강조했지만 더 이상의 언급은 없었다.

식량 부족 사태 속에서 급한 불을 끄려면 식량 차관이나 원조를 요청하는 게 일반적인 수순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마저도 차단벽을 쳤다.

노동신문은 2월 14일자 보도에서 “굶어 죽고 얼어 죽을지언정 절대로 버려서는 안되는 것이 자주와 자존의 정신”이라고 주장했다. 또 22일자에서는 “제국주의자들의 원조는 하나를 주고 열, 백을 빼앗아가기 위한 약탈과 예속의 올가미이며 세계 지배 전략 실현을 위한 도구”라며 대북지원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당과 내각의 간부들이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한 대북원조 확보 등을 주장하고 나서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김정은이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는 국면에서도 핵과 미사일에 올인하면서 버티기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국면을 두고 비공개로 활동 중인 북한 고위층 출신 탈북 인사는 “김정은의 통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북한 최고지도자를 기업 최고경영자(CEO)이 비유한다면 김일성은 임원과 말단사원까지 모든 직원들에게 넉넉하지는 않아도 임금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체제를 운용했지만 김정은의 경우 조직 매출에 기여하고 성과를 내는 일부 임원이나 충성도 높은 직원만 챙기는 방식이란 얘기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실제로 김정은은 평양에서 일부 식량 공급이 중단되는 상황이 벌어진 2021년 6월 노동당 제8기 3차 회의를 열어 비축 식량 긴급 방출을 지시하는 특별명령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개성과 신의주 등 지방 도시에 아사자가 속출하는 국면이 펼쳐졌지만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김정은의 머릿 속에 체제 유지의 버팀목인 핵심 계층이 모인 평양만 챙기면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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