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모 화가의 '청자와 봄꽃'(127-72, 2007년)
정창모 화가의 '청자와 봄꽃'(127-72, 2007년)

【뉴스퀘스트=정형렬 갤러리피코 대표 】 정창모의 기명절지도(진귀한 옛 그릇과 화초 과일 채소류를 소재로 한 그림)는 크게 두가지 부류로 나뉜다. 남새(채소류)와 과일 위주로 그린 기명절지도와 도자기류와 화초가 주로 등장하는 기명절지도가 있다. 이중 후자의 그림이 고려청자와 다양한 꽃들이 담긴 꽃바구니가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보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형상으로 인상에 각인되는 경향성을 띤다.

이 그림은 지금까지의 정창모의 기명절지도 중에서 그 소재가 돌출적이고 색상 면에서도 드물게 바탕색감이 압권일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가장 수려하다. 또한 전통의 기명절지도와 서양의 꽃정물화를 융합 조화하여 미학적으로 승화시킨 정창모의 기명절지 정물화 중 가장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그림이다.

자주 보이지 않는 뒷배경색을 보라색과 자주색 계열의 2단 바탕색으로 입혀서 입체감이 돋보이고, 신비로움과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고조시키고 있다. 한편 바닥 배경은 흰색 여백으로 남겨두어 고상한 동양적 여백미의 품격을 효과적으로 살려 놓았다.

일군의 풍성한 분홍 백장미들이 꽃들의 화면 중심에 서면서 우아함과 고결한 기품이 강조되고 붉은 장미가 짝을 이루면서 장미군단의 색채 대비감을 만끽하게 해준다. 또한 나리꽃과 라일락이 좌우측에 배치되어 서구적 꽃들의 향연이 펼쳐지면서 다채로움과 향기로움, 그리고 신선함이 배가된다.

바닥에는 청자병과 잔의 그릇 세트가 고품격의 인상적인 솜씨로 그려져 화미(華美)함의 절정을 이룬다. 바닥에 흐트러진 소나무와 진달래는 자유로운 기상을 표방하며 전통적 형상의 꽃바구니와 함께 단짝을 이루어 한민족 정서의 표상을 바탕에 진하게 우려내는 상징성을 드러낸다

정창모는 일제시대 아버지가 전주에서 표구상을 운영하고 외조부가 문인화가여서 어릴 적부터 동양화에 대한 정서적 감수성과 식견을 배양하여 조선화가로서의 예비 자질을 쌓아갈 수 있는 유리한 환경에서 자랐다.

북한에서는 이러한 전통에 대한 익숙한 경험이 자칫 독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러한 유산 계승을 위한 절차탁마와 집념, 훌륭한 스승들의 다양한 가르침에 대한 부단한 흡성 정진과 일취월장 실력 신장을 통해서 그의 위대한 자산으로 탈바꿈시켰다.

한때 반복고주의 지향에 대한 북한의 정통 사실주의자들의 입김이 득세했던 시기, 정창모는 그의 월북 이력과 이러한 조선시대 봉건적 전통 그림류에 대한 과도한(?) 천착 등으로 뜻하지 않은 사상 논쟁에 휘말리고 봉건적 복고주의자로 몰려 곤혹을 겪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이름도 한때 '정창몽'으로 개명(?)하는 우여곡절도 겪는데, 일정 시기 그의 작품들은 ‘정창몽’의 이름으로도 그려진 바 있다.

 

정창모 화가의 '고려청자와 봄항기'(129-64, 2007년)
정창모 화가의 '고려청자와 봄항기'(129-64, 2007년)

수년전 세계 순회 북한그림 전시회를 종종 개최하는 네덜란드의 북한그림 대수집가가 일산 킨텍스에서 전시회를 한 적이 있다. 수천점의 소장 북한그림 중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북한그림이 바로 이 정창모의 분홍 바탕의 꽃과 청자 정물화라고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흥분된 어조로 이런 명품의 정물화를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울 뿐만아니라 더이상의 최고작은 없다는 취지로 신이 나서 말을 쏟아내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다.

아마도 바탕색이 비교적 충실히 깔려 있는 데다가 분홍 보랏빛의 서구적 색채감이 서양인들의 감성과 취향에 가장 호소력 있게 어필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르누아르 풍의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밀려드는 행복감이 그림에 환상적으로 투영되어 번져 있는 양상이다.

고려청자가 조선백자 보다 우리문화의 주력적인 간판으로서의 면모를 띠고 보다 상징적인 대표성으로 표상된다는 느낌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의 영문 국호가 코리아인 것도 고려의 국호를 영어식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는 북한미술에서 고려청자가 조선백자를 압도하여 대부분의 화면을 장식하는데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실제 북한의 최고 미술사학자인 김용준이 조선백자의 담백한 미감을 고차원적으로 역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심미적인 통찰력을 후배 미술가들이 공감하기에는 많은 한계를 지니고 역부족인 측면을 감추기 어려웠다. 1966년에는 정창모마저도 김용준의 그런 추상적인 미학에 반기를 들고 색채주의를 부르짖으며 비판하고 나섰을 정도였다.

정창모 화가의 '축복'( 120-72,2008년)
정창모 화가의 '축복'(120-72, 2008년)

◇ 정창모(1931-2010)는 누구인가?

정창모의 필력은 붓이 바람을 가르며 춤을 춘다. 붓이 가다가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붓질을 잠깐이라도 주저해서 멈칫하거나 자신감 결여로 망설이거나 하면 그림은 번져버리고 중간에 리듬이 끊겨 이어붙이는 그림이 되고 말 것이다. 정창모의 붓사위는 그런 면에서 가장 깔끔하고 견고하며 리듬 라인의 탄력이 왕성하다.

아마도 그에게 평생에 걸쳐 누적된 말년의 이력에 비추어 볼 때, 그런 힘의 강약과 속도의 완급 조절 면에서의 신들린 솜씨는 그의 스승들인 정종여와 리석호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리석호의 필력을 장검의 검무에 비유한다면 그의 애제자인 정창모의 그것은 삼국지 관운장의 언월도의 칼춤에 비견될 수 있다. 장검은 날렵하고 예리한 멋과 심오한 기상을 선사하지만, 언월도는 육중하고 투박한 매력과 산사태 같은 기세를 내뿜는다.

조선화가 정창모는 유화가 최제남처럼 애주가이면서 술기운에 일필휘지의 속필로 승부하는 미술가이다. 마치 서구의 속사포 같은 직관주의의 인상파 화가들이나 파가니니처럼 속주로 연주하는 예술가의 전형이다.

그러나 이러한 달필의 정창모도 북한의 정통적인 사실주의 화풍에 기반한 예리한 날카로움이 항상 그의 화폭 어딘가에서 섬광처럼 번득인다는 점도 놓쳐선 안된다. 그는 이런 면모에 덧붙여 많은 미술 저작과 미학이론 논문도 다수 발표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혁신한 북한미술계의 혁명가였다.

정창모의 그림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조선역대미술가편람에 소개된 그의 스승 리석호와의 각별한 일화를 전한다. “정창모는 리석호와 함께 금강산 그림 창작을 위해 함께 여행한 일도 있었다. 이때 리석호는 조그마한 수첩과 연필 하나를 가지고 명소들을 찾아다니며 습작했는데 실지 수첩에 그린 것은 별로 없고 머리에 새겨두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다.

정창모는 가는 곳마다 커다란 스케치부크를 펼치고 자연의 구체적인 변화까지 그리느라고 해저무는 줄 모르고 열심히 습작하군했는데 숙소에 돌아와보면 바람벽에 자기가 보고 그린 자연보다도 더 아름답고 훌륭한 여러 점의 완성된 그림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놀라군하였다.

리석호 선생이 휴식하는 짬에 수첩을 몰래 훔쳐보니 거기에는 자연의 실상이 없고 몇 개의 선과 점으로 구도작업만이 된 것이였다. 리석호는 많은 것을 머리에 새겨넣었는데 본질과 정신은 어김없이 작품에 구현되어 그야말로 운치있는 예술작품으로 높은 경지에 이르고 있었다. 노미술가의 이러한 실천적인 교육과정을 거치고 하루 2~3시간 정도 규칙적으로 진행한 운필 연습으로 기량을 숙달함으로써 정창모의 그림은 필법에서 스승을 닮아갔다.

자기의 그림을 흔히 주지 않는 성미인 리석호의 경우에도 사랑하는 제자에게만은 많은 소품들을 넘겨 주었는데 유산의 일부를 재능과 함께 그에게 계승시키려 한 것같다. 리석호는 하루 그린 여러 점 소품 가운데서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내고 나머지는 정창모를 시켜 태워버리게 했는데 그때마다 그의 등 뒤에 서서 그림이 타는 것을 지켜보군 하였다고 한다. 정창모는 리석호가 손때 묻혀 키워낸 독실한 제자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정창모는 <남강의 겨울>로 선우영의 <백두산의 부석백사장>과 함께 2005년 북경 국제미술박람회에서 동반 금상을 수상한다. 정창모는 북한의 조선화를 종합 완결시킨 북한 미술계의 국보급 인사이며, 그의 위상은 북한 현대 3대 조선화가 중 첫 손가락에 꼽힌다.

그의 작풍에는 전통이 계승된 남방의 수묵화와 전통을 개조한 북방의 채색화 스타일이 함께 무르 녹아들어 있다. 오원 장승업의 후계자 답게 술을 좋아하는 호방한 성격의 정창모는 열정적인 필치로 단숨에 내달리다가도 섬세한 붓질로 세부의 미적 향취와 역점을 효과적으로 살려 자유자재로 완급을 조절하는 리드미컬한 운필의 달인이다.

정창모 화가 
정창모 화가 

그의 그림을 본 남한의 미술평론가가 쓴 글 일부를 발췌한다. “... 날카로운 선, 부드러운 붓, 그윽한 맛, 그의 작품은 기기묘묘한 경관을 신비경으로 이끌어가는 시각적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의 몰골 기법은 신묘하다고 할만큼 뛰어난데서 더욱 빛을 발하였다. 형태 해석의 그 세련미는 고도의 숙련된 필치에서 비롯된 것이고 보면 필법의 완성도를 론할 단계를 넘어 섰음을 알 수 있다. ... 그는 거의 감각적으로 기운생동을 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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