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회담 않고 인생 논하지 말라” 말까지
‘냉면 목구멍’ 망언 이선권 판문점서 잔뼈 굵어
“김영철 전면 등장은 남북관계에 먹구름 예고”

2005년 7월 20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3차 실무대표회담에서 문성묵 국방부 대북정책과장(좌측 가운데)고 북측 류영철 인민무력부 대좌(우측 가운데)가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
2005년 7월 20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3차 실무대표회담에서 문성묵 국방부 대북정책과장(좌측 가운데)고 북측 류영철 인민무력부 대좌(우측 가운데)가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남북회담 테이블은 첨예한 대립과 갈등의 축소판이다. 민감한 현안을 두고 사활을 건 입씨름이 오가고 기선제압을 위한 술수와 전략이 난무한다.

평생 외교관으로 생활하며 ‘정상적인’ 국가와의 협상을 벌였던 홍순영 외교장관은 통일장관직을 맡아 북한과 마라톤협상을 해본 뒤 “북한과 회담하지 않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을 남겨 두고두고 회자됐다.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하는 회담은 홈그라운드 측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회담전략이나 지시사항인 훈령을 받아가며 협상을 이어가야 하는 입장에서는 본부와의 통신이 중요한데 남북관계의 특성상 아무래도 상대측이 제공하는 통신라인을 맘 놓고 쓰기에는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양측 모두 회담 필수요원으로 통신보안과 암호체계를 담당하는 정보요원을 포함시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립지역인 판문점에서의 회담은 유독 치열하다. 치밀하게 준비된 발언과 협상술로 상대를 뒤흔들고 회담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전력투구한다. 과거 판문점 회담 때 북측 단장이 ‘서울 불바다’ 위협 발언을 해 엄청난 파장을 부른 게 대표적이다.

물론 회담에서는 북한 측이 훨씬 더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남북대화 초기인 1970년대는 남북한이 비등하게 대좌하는 상황이었다면, 이젠 북한 측이 여러 측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쌀이나 자재⋅장비 등 대북지원 물품을 챙겨가야 하는 회담이라면 더욱 그렇다.

북측이 남측과의 협상에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는 판문점 군사회담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경제 회담이나 사회⋅문화 교류 사안을 다루는 것과 달리 북측 입장에서는 군부와 관련한 민감한 사안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05년 7월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열린 군사 실무대표 회담에서는 북측 단장인 북한군 고위간부가 졸도하는 바람에 실려나간 일까지 벌어졌다. 당시 장성급 회담을 합의하고도 이런저런 핑계로 개최를 미루던 북한을 향해 남측 수석대표인 문성묵 대령이 “차기 회담 일정 없이 군사분계선을 넘어갈 수 없다”며 압박했다.

그러자 북한 측은 극도로 흥분하는 분위기였는데 단장인 유영철 대좌는 “누가 누구에게 돌아가라 마라 하는거냐”며 핏대를 올리다 갑자기 쓰러졌다. 회담은 중단됐고 남측 군의관으로부터 뇌경색 진단을 받은 유영철은 우리 측이 제공한 군 앰뷸런스에 실려 군사분계선을 넘는 초유의 상황을 연출했다.

지난 6월 16~18일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통일전선부 고문으로 임명된 김영철. [사진=연합]
지난 6월 16~18일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통일전선부 고문으로 임명된 김영철. [사진=연합]

군사회담을 전담하는 북한 군부의 베테랑 대남 ‘대화일꾼’들은 계보가 있다. 지난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이재용 삼성 당시 부회장 등 남측 인사를 향해 “냉면이 목구멍에 넘어 갑네까”라고 질타해 비난을 샀던 이선권도 판문점 군사회담판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천안함 폭침 도발의 주범으로 파악되고 있는 김영철은 이 계보를 이끌고 있는 군부의 실세로 꼽힌다.

김영철과 이선권 모두 군부의 강경파로 분류되는 데, 김정은 집권 이후 이들이 대남업무를 담당하는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부장이나 당 중앙위 비서 등 요직을 차지하고 남북 정상회담까지 관여하는 등 보폭을 넓혀 온 점은 주목된다.

아무래도 정통 대남 협상가나 외교라인이 아닌 군부라는 점에서 북한의 대남⋅대외 노선이 강경한 쪽으로 향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지난 6월 16~18일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영철은 ‘통일전선부 고문’ 직책으로 복귀했다. 노동당 핵심인 정치국의 후보위원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지난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권력에서 밀려났지만 다시 김정은의 신임을 얻은 것이다.

김영철은 우리 검찰이 850만 달러에 이르는 쌍방울의 불법 대북 송금이 전달된 북측 당사자로 보고 있는 인물이다. 송금 과정에 직접 관여했고, 2019년 5월 경에는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에게 “자금을 보내줘 고맙다”는 내용의 친서까지 보냈다는 게 검찰 측의 설명이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번 복귀는 김영철이 쌍방울이 보낸 달러를 챙기는 ‘배달사고’를 내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북 전문가들은 베테랑 대남일꾼인 그가 남한으로부터 받은 돈이 갖는 폭발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빼돌리는 일을 벌이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김영철의 부활은 남북관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진다. 그렇지 않아도 핵과 미사일에 ‘위성발사’를 내세운 도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강경파 김영철의 전면 등장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를 더욱 격랑 속으로 몰고 갈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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