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기관지 수장에서 정부 중앙선전부 부장 발탁 가능성도 높아

‘무관의 제왕’들의 수장인 퉈전 런민르바오 사장. 앞으로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사진제공=런민르바오]
‘무관의 제왕’들의 수장인 퉈전 런민르바오 사장. 앞으로 더 중책을 맡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사진제공=런민르바오]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중국에서 기자들의 지위는 다른 국가들에 비할 경우 상대적으로 낮다고 할 수 있다. 한국과 비교할 경우는 더욱 그렇다고 해도 좋다.

‘무관의 제왕’이라는 말이 없지는 않으나 기자들이 기본적으로 당과 국가의 나팔수로 인식되는 탓이다. 최근 들어 뛰어난 인재들이 기자직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매체가 런민르바오(人民日報)나 신화(新華)통신,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이라면 얘기는 확 달라진다. 너 나 할 것 없이 들어가서 일하지 못해 안달을 한다고 단언해도 좋다.

나팔수라는 오명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는 없으나 그래도 속된 말로 ‘가오’가 좀 잡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특히 공산당 기관지인 런민르바오는 신화통신이나 CCTV와는 달리 일도 그다지 고되지 않아 전국의 인재들이 선호하는 언론사로 손색이 없다. 진짜 자신이 ‘무관의 제왕’이라는 프라이드를 가지는 기자들도 많다.

위상이 간단치 않은 이 런민르바오 기자들의 수장인 사장 자리는 현재 퉈전(庹震. 64)이라는 언론인 출신이 맡고 있다. 진정한 ‘무관의 제왕’의 수장인 만큼 당 내의 위상 역시 대단하다. 부장(장관) 자리에 보임될 수 있는 정원 200여명의 당 중앙위원회 위원 신분이다.

언제라도 부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 실제로도 런민르바오 사장으로 가기 전에는 중앙선전부에서 부부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여기에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국회에 해당) 대표라는 신분까지 더할 경우 그는 진짜 부러운 사람이 없다고 단언해도 괜찮다.

소설 ‘삼국지’의 무대이기도 한 허난(河南)성의 난양(南陽)시 팡청(方城)현에서 출생한 그는 문화대혁명(문혁)의 광풍을 맛본 마지막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17세 때인 1976년에 고향 인근의 농촌으로 하방돼 고된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곧 문혁이 종료되면서 19세 때 양쯔(揚子)강 일대의 최고 명문인 후베이(湖北)성의 우한(武漢)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청소년 시절부터 기자가 되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는 그의 첫 직장은 베이징의 징지르바오(經濟日報)였다.

경제학과 출신답게 그는 경제지에 적응을 아주 잘했다고 한다. 특종 기자로도 유명했다. 기자가 된지 2년만인 84년에 ‘전국 우수 신문기자상’, 92년에 ‘중국 10대 걸출 청년상’을 받은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52세가 되던 2011년까지 근무하면서 총편집(편집국장. 중국 언론계에서는 사장급)으로 승진한 것 역시 너무나 당연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언론 인생은 바로 이해에 대반전의 계기도 잡게 된다. 그동안의 맹활약을 눈여겨본 당국에 의해 신화통신의 부사장으로 전격 발탁된 것이다. 이후 그는 시쳇말로 미사일보다 빠른 속도로 승승장구했다. 우선 2012년 4월에 광둥(廣東)성의 당 위원회 선전부장으로 이동한 다음 3년 후 중앙선전부 부부장으로 영전했다. 이어 또 3년 후인 2018년에 런민르바오의 총편집으로 이동했다. 2020년에는 드디어 대망의 사장 자리까지 겸임하게 됐다.

50세 이후에 숨 가쁘게 언론계 고위직을 역임한 것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비교적 관운(官運)이 좋은 케이스에 해당한다. 다 까닭이 있다고 해야 한다. 무엇보다 능력이 있으면서도 부지런하다. 젊은 시절부터 법정 휴가를 다 써보지 않은 것은 언론계에서 오래 전부터 유명했다. 위에서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상하다고 해야 한다.

그렇다고 혼자 잘 난 맛에 사는 스타일도 아니다. 주변 동료들과의 협업을 아주 중시하는 그만의 업무 방식은 징지르바오에서 회사 매뉴얼로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그는 리더십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징지르바오에 이어 런민르바오에서 총편집을 맡고 있는 것은 다 까닭이 있다고 해야 한다. 광둥성과 중앙 정부에서 행정 경험을 가진 것도 그에게는 큰 재산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어디에 갖다놔도 쓸모 있는 스타일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 그에게도 인간적인 약점은 있다. 술자리를 비롯한 회식을 좋아하는 것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혼자 즐기기를 좋아하는 젊은 기자들이나 여기자들에게는 환영을 받기 어려운 스타일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징지르바오 기자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그의 지도를 받은 바 있는 구진쥔(顧金俊) 씨의 얘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다.

“퉈 사장은 아무래도 워라벨을 중시하는 요즘 기자들과는 많이 다르다고 해야 한다. 가능하면 같이 먹고 마시면서 대화 나누기를 좋아한다. 그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요즘 기자들은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 아무래도 환영을 받을 수는 없지 않을까 싶다.”

이외에 예스맨 기질이 강한 성격, 달변가라고 불릴 정도로 다변인 스타일 역시 반드시 장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로 인해 승진을 빨리 했다는 사실을 감안할 경우 인정은 해줘야 하지 않을까 보인다.

그는 기자로서 올라갈 수 있는 자리의 끝까지 갔다고 해도 좋다. 런민르바오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은퇴하더라도 여한이 없다고 해야 한다. 하지만 관운이 좋은 것을 보면 앞으로 더 중용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더구나 최근에는 이른바 치상바샤(七上八下. 부장급 이상의 고위직들이 67세 이하일 경우 계속 근무하나 68세 이상이면 은퇴함)의 관례도 거의 유명무실해진 만큼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도 있다.

예컨대 정부의 중앙선전부 부장 자리로 이동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고 해야 한다. 만약 이 전망이 현실이 될 경우 그는 ‘무관의 제왕’의 수장에서 ‘유관(有冠)의 제왕’이 된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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