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전통 그림자극이 있었을까

【뉴스퀘스트=김승국 전통문화칼럼니스트 】

만석중놀이
만석중놀이

 등잔이나 촛불을 켜고 지냈던 시절 어린아이들이 두 손이나 종이를 이용하여 동물의 형상을 만들며 노는 그림자놀이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그림자극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나마 그러한 문화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러면 다시 우리나라에 전통 그림자극이 있었을까? 있었을까, 아니면 없었을까? 답은 "있었다"이다. 바로 '만석중놀이'이다. '만석중놀이'는 ‘만석승희(曼碩僧戱)’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 남사당패의 박첨지놀음, 발탈 등 전통 인형극이 전래했다는 사실은 대부분 알고 있지만 '만석중놀이'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만석중놀이'는 커다란 영사막 같은 차일을 쳐놓고 차일 뒤에 활활 타오르는 화톳불을 조명으로 만석중, 사슴, 잉어, 용 및 십장생 인형의 그림자극과 막 앞에서 스님의 화청(和請:  불·보살을 청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불교 포교의 한 방편으로 대중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불교의 교리를 쉽게 풀어 설명한 사설을 민요 가락으로 부르는 불교 성악)과 운심게작법(運心偈作法) 춤이 어우러진 전통 그림자극을 말한다. 이 놀이는 4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을 전후해 사찰 혹은 민가에서 공연되었던 무언 그림자 인형극이다. 

  '만석중놀이'의 시원은 고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갔을 것으로 짐작이 가지만 고려시대부터 본격화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만석석중놀이’가 4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을 전후하여 연행되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만석중놀이'는 불교의 교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1933년 국문학자 김재철이 한국연극을 역사적 맥락에서 고찰한 학술서인 <조선연극사>에 의하면 ‘'만석중놀이'는 고려시대의 연등회에서 내려오는 풍습으로 4월 초파일에 연출하며 반주하는 음악과 조화되어 인형이 움직이면 관중이 저절로 이해하게 되는 무언(無言) 인형극이다’라고 했다. 

‘만석중놀이’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전승기반을 만들어줘야

  이 놀이는 조선 시대에는 남사당패에 의해 사찰과 민가에서 공연되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단절되었다. 1983년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은 실제로 '만석중놀이'를 보았던 경봉 스님과 남사당놀이 원로 양도일 등의 증언을 바탕으로 발굴·재현하였다. 지금은 경남 거창 <'만석중놀이'보존회>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만석중놀이
만석중놀이

  심우성 선생이 '만석중놀이'를 복원할 당시 1막: 등의 행렬(장면의 시작과 끝에 만석중의 몸짓) 2막: 10장생 등장 – 퇴장(화청시작) 3막: 다시 연등 행렬 4막: 용과 여의주의 겨룸(운심작게법) 5막: 연등의 행렬(범종소리) 총 5막으로 구성되었던 것이, 지금은 3막으로 무대에서 연행되고 있다. 3막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1막 : 범종 소리와 함께 탑이 밑에서 솟고 이어 목어와 종소리가 계속 울리며 각종 연등이 등장한다. 화청이 시작될 때 등이 퇴장하고 곧이어 화청이 이어지고 사이사이로 종소리와 함께 십장생이 등장과 퇴장을 되풀이한다. 

제2막 : 목어가 등장하면 무대 조명이 강하게 비추고 종소리에 맞춰 목어가 퇴장. 스님이 등장하여 운심게작법을 춤. 이때 상향 조명 비춤. 화면에 여의주가 나타나 용을 희롱. 이 분위기를 북돋기 위해 태평소가 연주. 이어 스님의 바라춤. 여의주 용 스님 퇴장.

제3막 : 다시 무대 조명 약해지며 탐과 이어서 연등 등장. 탑을 중심으로 연등 행렬이 이어짐. 탑돌이가 끝나고 연등과 탑 퇴장하면 범종 소리 울리고 조명이 꺼지고 막이 내림.

  '만석중놀이'는 심우성 선생님의 제자 한대수씨를 중심으로 유일하게 전승되는 소중한 전통 그림자극이지만 아직 무형문화재로 종목 지정받지 못하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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