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중국 항저우 사오싱 차이나 텍스타일 시티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12강 토너먼트 한국과 파키스탄의 경기. 세트스코어 0-3으로 패한 한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지난 22일 중국 항저우 사오싱 차이나 텍스타일 시티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12강 토너먼트 한국과 파키스탄의 경기. 세트스코어 0-3으로 패한 한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 달려 가고 있는 아시안게임 얘기를 해보자.

아시안게임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우리 국민에게 즐거움을 주는 건 늘상 그랬듯이 인기 있던 종목이 아니라 비인기종목이다.

이번에는 배드민턴이다.

글을 올리는 지금 기준으로 어제까지 남녀 단체전에서 금 하나, 동 하나를 땄던 우리나라는 단식, 복식, 혼합복식 등 거의 모든 종목에서 메달을 확보했다.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안 게임에서 세계 최고라는 중국 선수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모습은 더욱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준다.

이와는 반대로 인기 있는 프로스포츠 종목들은 어떤가?

축구는 승승장구 하면서 결승까지 올라갔으니 여기에 대해서는 그냥 감탄만 하면 된다.

야구는? 대만한테 힘 한번 못 써보고 진 후에 각성이라도 했는지 조금은 나아지는 모습으로 결승에 진출에 성공했다.

자, 이제 다음부터는 조금은 부끄럽다.

남녀 배구 얘기를 꺼내보자.

남자배구는 세계에서 변방으로 일컫던 인도에 이어 파키스탄에까지 지면서 아예 예선탈락을 해 버렸다.

여자 배구는 조금 덜 하기는 하지만 베트남에게 지고, 중국에게도 져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이후 17년 만에 4강 진출에 실패했다.

그 다음 제일 충격적인게 남자 농구이다.

어떤 국가는 부상 선수가 많아서, 또 어떤 국가는 농구월드컵에 주전들을 출전시켜서 이번 아시안게임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대거 선수들을 빼주느라 정상적인 채로 출전하는 국가가 거의 없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부상 때문에 빠진 선수가 많기는 하다만, 애초에 일본한테는 실력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만 보여주고, 중국과의 경기에서는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것만 또 느끼게 해주었으며, 마지막으로 이란에까지 지면서 역대 최악의 성적을 국민들에게 던져 주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종목이라 아쉬움은 더욱 크지만, 그러한 감정은 뒤로 하고 농구를 보면서 웬걸, 남은 시간 죽어라고 하면 다시 기회를 노릴 수 있다고 드는 순간에 여지없이 그리 좋은 슛 기회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3점 슛을 던져대는 것을 너무나 많이 보았다.

보면서 '이거 분명히 어디서 봤던 용어인데' 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잊고 있다가 불현듯 책상에 놓여진 ‘프로젝트 헤일메리’라는 책을 보고 생각났다.

마션의 작가 앤디 위어가 쓴 ‘프로젝트 헤일메리’.

헤일메리는 원래 미식축구 전술로부터 나온 용어라 한다.

패색이 짙고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때, 오직 패스 한 방으로 동점 아니면 역전을 노릴 수 있는 바로 그 순간, 패스를 던져 주는 쿼터백 말고 모든 팀원들은 오로지 터치다운 한 방을 노리고 적진으로 돌진하는, 즉 최후의 한 방 말고는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는 그 순간 쓰는 전술이다.

Hail Mary에서 ‘Hail’은 인사하다라는 뜻이고, ‘Mary’는 성모 마리아를 일컫는다.

라틴어로 표현했을 때,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용어, 바로 ‘아베마리아’다. (Ave Maria)

그러니까, 헤일메리는 최후의 순간에 가장 가능성이 낮은 유일한 방법, 신께 올리는 기도, ‘마리아여 나에게 구원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내가 본 남자 농구에서 그냥 헤일메리를 줄기차게 외치고 있었다.

방법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1차적으로 감독이 해야 할 일이고, 2차적으로는 뛰고 있는 선수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상대팀에게 통할 수 있는 많은 이성적 대안들을 고려하지 않고, 즉 방법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에서 3점 슛을 난사하면서 헤일메리를 외치는 우리 남자 농구팀의 모습은 진심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농구에 대해 문외한인 나로서도 냅다 던지는 3점슛보다 10초 안에 빠른 공격으로 확률높은 2점을 성공시키고 바로 압박 수비를 붙어서 다시 공격권을 가져오는 등의 방법을 시도해 볼텐데 시간이 남은 상황에서도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그냥 시간도, 방법도 남은 상태에서 주구장창 헤일메리를 외칠 뿐이었다.

제도나 규정이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특히 행동경제학 관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공정성 때문에 만들어 놓은 규정이 오히려 덫이 되어 사람들의 이성적인 의사결정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3점슛이라는, 팬들에게 ‘언제든지 역전할 수 있는게 농구다’라는 의식을 심어 준 좋은 제도가 뛰는 선수들에게는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게 만드는 넛지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사실 그러한 제도가 없더라도, 시간의 압박이 들어오게 되면 그때부터 사람들의 마음은 급해지고 그냥 헤일메리 해버린다.

그리고, 다른 종목에서 난다긴다하는 해설도 마치 헤일메리가 올바른 방법인양 말할때도 많다.

예를 들어, 축구 경기에서도 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한 10분 이상 남았는데도 ‘이제는 시간이 없으니 문전에 공을 띄워 놓고 싸움을 붙여야 됩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넣을 수 있는 골이었으면 처음부터 계속 그 전술만 쓰면 되는 것 아닌가?

축구에서도 시간이 거의 끝나서 한 두번 밖에 공격 기회가 없을 때, 헤일메리 외쳐야 하는데 시간도 충분하고, 방법도 많은 상황에서는 다급하게 외칠 필요가 없다.

시간이 정해지 있는 스포츠에서 대개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우리들 역시 살아가면서 어려운 고비마다 이게 마지막 남은 절체절명의 순간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헤일메리를 외칠 필요가 없이 이성적으로 고민을 더 해도 좋은 순간에 헤일메리를 외쳤다면 다음에는 더 큰 고통의 순간이 찾아올 확률이 높다.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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