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와인의 현주소와 일본와인 시장

【뉴스퀘스트=이철형 와인 칼럼리스트 】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국산와인과 한국와인에 대한 용어정리부터 해보자.

국산 와인은 국내에서 생산된 와인이라는 의미이기는 하나 횡성한우가 소가 도축전에 횡성에서 3개월인가 6개월만 있으면 횡성한우로 판매될 수 있는 식으로 해외에서 벌크로 와인을 들여와서 한국에서 병입하거나 여기에 극히 일부 한국에서 재배된 포도로 만든 와인을 블렌딩하면 국산 와인으로 인식될 수 있으니 국산 와인의 개념 대신 한국 와인이라는 단어를 선택하기로 한다.

이는 그 나라에서 포도재배부터 양조까지 해서 와인을 만들었기에 프랑스 와인, 이탈리아 와인, 미국 와인라고 부르듯이 한국 와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세계무대로 나갔을 때도 더 의미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각 생산국에서는 자국 와인을 국산와인이라고 하고 타국의 사람들이 불러주는 것이겠지만.  

향후 해외로의 수출을 더 확대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스스로 그렇게 불러 보며 자기 최면을 걸어보자.

그리고 광의로 와인은 곡류나 과일을 발효하여 만든 알코올 음료를 의미하여 막걸리나 복분자 등의 곡류주나 과실주도 와인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 칼럼에서는 협의의 와인으로서 포도로 만든 포도주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정한다. 다른 과일로 만든 것은 한국 과실주라고 분리하여 명명하고. 

즉 이 칼럼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포도를 발효하여 만든 와인을 한국 와인이라고 정의하기로 한다.

우리나라에 와인이 처음 소개된 것은 문헌상으로는 고려시대 충렬왕때 원나라 쿠빌라이가 보낸 와인이 있고 그 다음은 조선 인조 14년에 호조판서 김세렴이 대마도에서 대마도주와 와인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그 다음은 1653년 제주도에 표류한 하멜이 제주도 관원에게 와인을 전달했다는 기록도 있다.

한국 와인의 근대사는 일제시대 1906년 뚝섬에 만들어진 포도묘목장(뚝섬 원예 모범장)과 

1908년 수원의 권업모범장에 포도나무를 심으면서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1918년에는 포항에 미츠와 포도 농장도 만들어지기도 했다.

마주앙 브랜드 변천사 출처 ; 롯데 칠성음료
마주앙 브랜드 변천사 출처 ; 롯데 칠성음료

 1965년 양곡관리법으로 쌀로 술을 빚지 못하게 되었고 1960년대중반(1964년) 박정희 대통령의 독일 방문시 대통령이 리슬링 와인을 마셔본 후 모래와 자갈이 있는 척박한 땅에서 오히려 잘 자라는 포도이기에 비옥한 땅에서 잘 자라는 곡식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것에 착안하여 이를 장려하면서 1973년 경북 청하와 밀양에 동양맥주(지금의 OB맥주)가 포도원을 조성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때 조성된 포도원에서 4년 후인 1977년에 마주앙이라는 브랜드로 와인이 출시된다.

이 와인이 국내에서 생산된 교황청이 인정한 최초의 미사주가 되었고 지금도 미사주는 생산되고 있다. 이 브랜드는 아직도 남아 있으나 지금은 대부분이 OEM방식으로 해외에서 만들어 수입하거나 오크통째 수입하여 국내에서 병입하거나 국내에서 생산된 와인을 블렌딩하여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가정에서 막걸리 제조는 금지되었지만 설탕과 소주를 넣고 만든 포도주는 정부에서 규제하지 않아 지금의 60대 이상은 포도주하면 식용포도로 만든 달콤한 레드 와인을 떠올릴 것이다.

사실 과실주로 제일 먼저 등장한 것은 1969년의 사과로 만든 술인 파라다이스라는 브랜드의 술 즉 사이다(=시드르(Cidre))다. 애플 와인이었다. 

출처 : 한국일보 김성실의 역사속 와인 칼럼에서 캡처
출처 : 한국일보 김성실의 역사속 와인 칼럼에서 캡처

이 회사에서는 포도로 만든 올림피아라는 와인도 생산했는데 이 와인은 1987년 위하여로 브랜드가 바뀌었다.

그리고 동양맥주보다 먼저 1974년 해태주조가 리슬링과 시벨품종으로 노블 와인을 만들었는데 1975년 국회의사당이 설립되었을 때 그 입구 양쪽 해태상 밑에 이 와인을 36병씩 묻어두었다가 100년후에 개봉하기로 해서 아직도 거기에 있다.

해태는 그룹이 해체되어 더 이상 와인을 생산하지 않지만 2075년에 공개될 와인을 역사에 남겼다. 그리고 1984년 금복주에서 두리랑, 1985년 진로에서 샤토 몽블르를 만들었다.

한국 최초의 스파클링 와인은 그랑주아로 이것은 1987년 대선주조에서 만들었고 

이 회사는 1989년에 스틸와인인 앙코르도 만들었다.

1977년 04월 28일 동아일보 8면에 게재된 해태주조의 노블와인 광고/사진 출처=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갈무리(스크랩)​출처 : 브랜드타임즈(Brand Times)(http://www.brandtimes.co.kr)
1977년 04월 28일 동아일보 8면에 게재된 해태주조의 노블와인 광고/사진 출처=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갈무리(스크랩)​출처 : 브랜드타임즈(Brand Times)(http://www.brandtimes.co.kr)

그런데 이 때가 안타깝게도 바로 88 올림픽을 앞두고 주류 시장이 민간에게 개방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렇게 시작한 한국 와인들은 80년대에 호황을 겪다가 87년말 수입와인 시장이 민간에게 개방되면서 90년대 들어 쇠퇴의 길로 들어서서 해외 와인을 벌크로 들여와서 국산와인 소량과 블렌딩하거나 그냥 그 자체를 병입하여 판매하는 식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가 2000년을 전후하여 농가형 와이너리들이 생겨나면서 다시 부활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 이때는 포도품종이 식용포도 위주였고 우리나라 기후 자체가 와인 주생산지역의 겨울 우기, 여름 건기와는 정반대로 겨울 건기, 여름 우기로 포도의 당도가 한참 올라가야 할 때 비가 많이 와서 당도가 낮아지거나 낙과의 위험에 노출되어 기후적으로도 불리한 상황이고 게다가 양조기술을 제대로 습득하고 와인을 만드는 농가도 많지 않아 맛과 향의 다양성이나 품질면에서 많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수입와인 위주로 시장이 형성되면서 수입와인을 맛본 사람들은 한국 와인을 외면하였고 그냥 와인의 첫경험이 한국 와인이었던 사람들은 이게 와인 맛인가보다라는 식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부차원에서 포도특구를 추가로 지정하고 농림수산부 산하 기술연구소들이 개량 품종을 내놓고 농가들이 와인 양조를 공부하거나 컨설팅을 받아 품질을 개량하고 체험관광문화가 발달하면서 다시 부흥의 조짐이 보이더니 급기야는 2016년에는 청수(1993년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화이트 품종)라는 국산 포도품종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 품평회에서 대상을 타기에 이르고 일부 한국 와인들이 해외 품평회에 출품하여 입상하면서 최근 들어 부흥기의 기미를 보이고 있고 코로나 이후 각종 주류 박람회에서 한국와인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250여개의 한국 와인 생산자들이 있다고 한다.

청수 출처 : 수도산 와이너리 홈페이지 
청수 출처 : 수도산 와이너리 홈페이지 

이들 중에서 비교적 오래 되었고 대표적인 성공 사례의 하나가 충북 영동군의 와이너리들이다.

충북 영동군에서 영농조합 형태의 기업형 와이너리로 시작하여 지자체가 지속적으로 20년 이상을 투자해온 결과 와인 관광 열차 운영, 와인동굴 개발, 와인 페스티벌 등을 개최하면서 지금은 지역의 다른 관광자원과 컨텐츠를 엮어서 복합 문화 관광지로 발전시키는 등 지역 와이너리들의 마케팅겸 판매를 후원한 결과 흑자를 내는 기업으로 성장하였을 뿐 아니라 지역의 숙박이나 음식업 활성화와 지역 특산물의 홍보까지 함께 도모하게 되었다.

경북 영천군 역시 포도특구로 지정된 이후 지역 와인 생산자들과 (사)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의 컨설팅을 받으며 함께 성장해오고 있고 대부도의 농업법인 역시 여름철 와인 축제를 독자적으로 운영할 만큼 성장하였다.

이제는 광명 와인동굴을 시작으로 영동 와인 동굴, 충주의 활옥 와인동굴 등 여러 개의 와인 터널들이 생겨나 지역 영농법인 와이너리들의 전시 판매를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출처 : 충북 영동 풍류스테이 홍보물
출처 : 충북 영동 풍류스테이 홍보물

하지만 한국 와인은 수입 와인의 유통채널이 대부분 대형마트와 와인 샵등 샵시장 비중이 80%이상인 상황에서 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이유는 각 와이너리들의 생산량이 소량이어서 대량 유통에 어울리지 않기도 하지만 품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아직 높지 않고 가격대도 수입 와인에 비해 높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샵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잘 구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가까운 일본은 어떨까?

일본도 와인문화는 16세기에 포르투갈의 예수회 선교사들이 오면서부터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일본은 일찍이 19세기 메이지 유신때 사케 생산자의 아들들을 유럽에 유학시켜 선진 양조 기술을 배워오게 하여 사케 기술에 접목하게 하는 한편 와인 생산에 집중하여 일본이 경제 대국으로 식문화까지 세계로 확산되면서 일본 토착품종인 코슈(甲州)로 만든 화이트 와인과 자체에서 개발한 뮈스캇 베일리 에이(Muscat Bailey A)로 만든 레드 와인까지도 해외에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일본은 사실 우리보다 환경이 좋은 것이 위도상 남북으로 길게 영토가 구성되다 보니 동경에서 북쪽으로 신칸센으로 한시간 반정도 가면 와인 생산으로 유명한 야마나시 현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그곳은 유럽의 기후처럼 8, 9월 포도 수확기에도 우리나라와 달리 태풍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 지 일본은 수입 와인대 자국 생산와인의 비중이 60:40 정도로 자국 와인의 비중이 높다. 하지만 일본도 자국내 포도재배부터 양조까지 한 후 자국내에서 판매되는 와인은 전체 와인시장의 4%정도에 불과하다.

대신 일본와인은 100% 자국내 생산와인의 경우 가격적으로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일본 와인시장 전체 규모가 우리의 10배이상이니 4%일지라도 큰 규모인 셈이다.

일본 야마나시현 코슈의 와이너리 출처 : 위키피디아
일본 야마나시현 코슈의 와이너리 출처 : 위키피디아

이제 한류문화의 세계확산을 타고 고급화된 한국 와인이 국내외 품평회에서 입상하기도 하면서 서서히 한국도 제 4의 와인 생산국으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고 해외로 소량이나마 수출되기 시작했다.

칼럼이 길어져서 한국 와인의 장래성과 그 대책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에서 알아보도록 하자.

(본 칼럼은 1. https://aligalsa.tistory.com/2700 [역사] 김준철 원장님이 알려주는 와인에 관한 역사적 사실 1편, 2.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112116180000254 김성실의 역사고 와인 코너 : 오래된 미래의 맛, 한국 와인과 인터넷 자료 그리고 최정욱 와인 연구소의 최정욱대표와의 인터뷰, 건국대학교 와인학 석사과정 겸임교수시절의 자료 등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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