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도 일본식 말투 잔재 적지않아
뒤바뀐 낙지와 오징어에 당황하기도
“70년 남북 분단이 만든 또 다른 장벽”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7년 12월 만포시에 있는 ‘압록강다이야공장’을 방문해 생산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 곳은 북한의 대표적인 타이어 생산시설로 미사일발사차량 등에 쓰이는 특수타이어도 만든다. [사진=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7년 12월 만포시에 있는 ‘압록강다이야공장’을 방문해 생산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 곳은 북한의 대표적인 타이어 생산시설로 미사일발사차량 등에 쓰이는 특수타이어도 만든다. [사진=조선중앙통신]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김정은 동지께서 압록강 다이야공장을 현지지도 하시고 생산 정상화에 대한 말씀을 주시었다.”

북한 조선중앙TV의 간판급 아나운서 이춘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정 보도를 전담한다. 늘 톱뉴스를 장식하는 김정은 관련 소식은 주로 ‘현지지도’라 불리는 공장・기업소와 군부대 등의 현장방문이 비중 있게 다뤄진다.

그런데 북한 매체들의 보도를 접하다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나 단어가 적지 않게 등장한다. 꽤 오랜 기간 익숙해진 경우가 아니면 잘못 이해하거나 실수를 하는 일도 벌어진다.

김정은의 ‘압록강다이야공장’ 방문 보도를 인용해 기사를 쓴 한 영자신문 후배기자가 이를 ‘diamond factory’라고 쓴 걸 보고 “다이아몬드가 아닌 타이어공장”이라고 귀띔해줬던 기억도 떠오른다.

사실 우리도 타이어를 ‘다이야’라고 불렀던 시절이 있었지만 워낙 오래전 일이다보니 신세대 기자 입장에선 잘못 이해한 게 당연할 수도 있다.

70여년 분단이 만든 남북 간 언어 차이는 의외로 크다. 야채나 채소를 남새로 부르고, 라면은 꼬부랑국수, 도넛은 가락지빵으로 부른다는 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단어가 남북한에서 달리 쓰이거나 표현에 차이가 난다.

아이스크림(얼음보숭이), 마라톤(마라손), 베이컨(베콘), 마이신(미찐), 레일(레루), 달러(딸라) 등은 물론 국가나 지명도 차이가 확연해서 러시아(로씨야), 베트남(윁남), 카이로(까이라), 멕시코(메히꼬), 스웨리예(스웨덴) 등 분간이 쉽지 않다.

뉴스, 다이아몬드, 모델, 뮤지컬, 미니스커트 등 남한에선 우리말처럼 자주 쓰이는 외래어의 경우 탈북민들에게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였다. 몇 해 전 국립국어연구원이 조사한데 따르면 남한에서 통용되지만 탈북민이 모르는 단어가 8284개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남북대화나 취재, 비즈니스를 위해 북한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경우 당황스런 일을 겪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평양의 식당에서 낙지볶음 메뉴를 시키면 오징어요리가 나온다. 남북한에서 오징어와 낙지가 바뀌어 불리기 때문이다.

답답해하는 북한 안내원으로부터 “무리등이나 살결물이 무슨 뜻인지 인차 요해가 안되십네까”라는 핀찬을 들을 수도 있다. 무리등은 우리말로 호텔로비 등에 걸린 대형조명인 샹들리에를, 살결물은 화장품인 스킨로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차는 금방이란 뜻이고 요해는 이해란 말의 북한식 표현이다.

지난 2000년 북한이 발행한 우표. 오징어를 ‘낙지’로 표기하고 있다. 남북한에서는 오징어와 낙지가 뒤바뀌어 사용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000년 북한이 발행한 우표. 오징어를 ‘낙지’로 표기하고 있다. 남북한에서는 오징어와 낙지가 뒤바뀌어 사용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들어서는 남한의 드라마와 영화, 가요 등 한류가 유행하면서 신세대를 중심으로 ‘남조선 말투’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남자친구를 ‘남친’이라 부르고 결혼한 신세대 아내가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현상이 번지자 북한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해 단속에 나섰다. 김정은이 나서 청년세대들에 대한 사상교양을 강조하고 북한 매체들은 “외부사조에 물들면 체제가 물먹은 담벼락처럼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경고 보도를 잇달아 내보내고 있다.

북한판 한류 확산을 통해 남북한의 문화 차이와 언어이질화가 극복된다면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철저한 통제를 가하고 있는 김정은 체제의 특성상 본격화 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던 남북한이 이처럼 분단 반세기 만에 언어사용에서 깊은 골이 패인 것은 서로 다른 체제 속에 다른 어문정책을 펴온 때문이다. 북한당국은 일찍이 언어를 사상교양의 수단으로, ‘혁명과 건설의 중요한 무기’ 규정하고 주민들의 언어생활을 조절・통제해왔다. 북한은 1966년 5월 김일성의 교시에 의해 과거부터 우리나라 표준말로 돼있는 서울말 대신 평양말을 중심으로 ‘문화어’를 만들고 사용토록 했다. 서울말에 부르주아・복고주의 요소가 있어 봉건・유교사상 등 반동적 사상과 생활양식에 젖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남북한에서 기념하는 한글날의 날짜가 서로 다르다는 점은 남북 간 언어이질화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가를 엿보게 한다. 남한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세종 28년 음력 9월 상순(1446년 10월 9일)을 계기로 해 한글날로 삼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은 한글 창제일인 세종 25년 음력 12월(1444년 1월15일)을 기념하고 있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지금 같은 이질화 추세라면 남북한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는 중요한 징표의 하나인 언어문화마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컴퓨터 자판까지 다르다는 점에서 통일 이후 체제통합에도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이 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겨레말큰사전 남부공동 편찬 등 일부 시도가 있었지만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중단이 장기화 하고 있는 실정이다. 말과 글이 달라지고 언어의 이질화가 심화된다면 결국 생각에 차이가 생기고 이질감이나 단절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통일 시대에 대비한 남북 언어 통합 노력 등이 시급해 보인다.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