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만성형으로 시 주석의 당내 지위 공고화 위한 ‘양개확립(兩個確立)’ 구호로 확실한 눈도장

시진핑 중국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새 브레인 장진취안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대기만성의 전형으로 불리고 있다.[사진제공=환추스바오(環球時報)]
시진핑 중국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새 브레인 장진취안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대기만성의 전형으로 불리고 있다.[사진제공=환추스바오(環球時報)]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동서고금의 역사를 살펴볼 때 어영부영하다 어쩌다 어느 국가나 조직의 지도자가 되는 황당한 케이스가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대체로 뛰어난 능력의 지도자들은 그냥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의 노력과 주변의 도움을 반드시 필요로 했던 경우가 많다. 천시(天時. 하늘의 때. 하늘이 주는 기회라는 의미)와 지리(地利. 지리적 이점), 인화(人和. 주변 사람들과의 화합)라는 덕목이 중요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인화는 이 덕목 중 단연 최고라고 해야 한다. 대업을 일군 사람치고 능력이 뛰어난 주변 사람을 잘 쓰지 않은 케이스가 드문 것은 다 까닭이 있다고 해야 한다. 반대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운이 좋아 어찌어찌 지도자가 돼서도 사람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자신만 최고라는 생각에 젖은 독불장군이나 독고다이는 절대로 끝이 좋을 수가 없다. 국가나 조직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인들에게 엄청난 피해도 주게 된다. 나중 귀태(鬼胎. 태어나지 말아야 했을 사람)라는 치욕적인 욕을 들을 수도 있다.

중국은 이런 진리를 일찌감치 잘 알았던 것 같다. 지도자들의 뛰어난 용인술을 성공의 조건으로 삼았던 5000년 역사를 일별해보면 정말 그렇지 않나 싶다. 이는 최근에 들어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최고 지도자를 보좌하는 엘리트들의 집합체인 당정 조직들을 그 어느 것보다 중시하면서 종횡으로 운용하는 사실을 상기하면 잘 알 수 있다. 이 조직들 중 가장 핵심으로 꼽히는 곳이 아마도 당 중앙정책연구실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수장은 장진취안(江金權. 64) 주임(장관급)으로 최근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새 브레인, 책사(策士)로 꼽히고 있다. 중국 내외에 비춰질 위상이 주임 이상이라고 해도 좋을 수밖에 없다. 이는 그가 15일 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파이롤리 정원에서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 간의 미중 정상회담에 배석한 사실만 봐도 좋다.

앞으로 중국 내외의 당정 정책 수립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 확실한 그는 후베이(湖北)성 시수이(浠水)현 출신으로 베이징사범대 중문과를 졸업했다. 이어 화중(華中)과학기술대학에 진학, 경제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그러나 지금의 위상이 무색하게 50대 후반이 될 때까지는 정치적으로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후베이성 조직부 부처장을 시작으로 쌓은 관료 커리어도 그다지 대단하지 않았다. 중앙정책연구실로 이동해오면서 당건(黨建)연구국 부국장을 거쳐 부주임으로 승진한 것이 대단하다는 소리를 들었다면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을 듯하다.

하지만 그는 사실상 정년을 1년 남겨놓은 2018년 2월 극적으로 주임급 대우를 받는 부주임으로 승진하면서 대기만성의 신화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2020년 주임으로 승진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그는 비로소 중국 내 언론의 주목도 받기 시작했다. 홍콩을 비롯한 중화권 언론과 외신들로부터도 그랬다.

그는 대기만성이라는 말을 듣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부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관료로 어느 정도 활동했는지에 대한 보도들이 드문 것은 이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우선 2017년에 당의 헌법에 해당하는 당장(黨章) 개정안 작성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재 당정 권력 서열 4위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으로 올라선 왕후닝(王滬寧. 68)의 뒤를 이어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이 된 이후에는 시 주석에 대한 ‘충성 맹세’ 사업에 집중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우선 2021년 11월에 시 주석의 당내 지위를 공고히 하는 개념인 이른바 ‘양개확립(兩個確立)’ 구호를 외치면서 눈도장을 확실하게 받았다.

또 12월 당 기관지 런민르바오(人民日報)에 게재한 “당의 전면 영도를 고수하자.”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이전 지도자들인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등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시 주석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심지어 개혁·개방 이후 당의 문제가 시 주석의 시대에서 완벽하게 해결됐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아첨한다는 느낌이 다분했으나 중국적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시 주석 역시 이런 그의 행보에 상당히 흡족해했다고 한다. 시 주석이 그를 미중 정상회담 석상에까지 데리고 간 것은 아마도 이때 받은 강렬한 인상 때문이 아니었나 보인다.

그는 아직 전임인 왕 정협 주석 같은 대단한 연구 실적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후진타오와 시진핑 전, 현 총서기 겸 주석의 과학발전관, 중국몽과 같은 국가 정책을 담은 거대 담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부장(장관)급이면서 아직 205명이 정원인 중앙위원회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상태에 있다.

하지만 향후 가능성은 무한하다. 이유는 하나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시 주석의 신임이 엄청나게 두텁다. 주임이 시 주석을 비롯한 당정 최고 지도자들과의 독대를 통해 정책 건의를 하는 것이 별 큰일도 아닌 중앙정책연구실의 위상 역시 거론해야 한다. 하나 같이 주옥같다는 평가를 받는 저서를 무려 40여 권이나 출판한 뛰어난 능력 역시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들의 최근 전언을 종합하면 실제 그는 방미에 앞서 미국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철저하게 준비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선 시 주석에게 미국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도록 계속 권고했다고 한다.

이는 그가 작년 11월 당의 이론지 추스(求是)에 게재한 글에서 “미국의 목적은 중국 공산당 영도와 사회주의 제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미국의 디커플링(공급망 분리)에 대응해야 한다.”는 등의 대목이 나오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보다 앞서 2021년 홍콩과 신장(新疆) 인권 문제를 지적하는 미국을 겨냥, “민주주의는 서방 특허가 아니다.”라고 한 사실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아직은 전임인 왕 정협 주석에 비해 무게감이 덜하다. 하지만 시 주석의 새 브레인으로서 대미 전략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둘 경우 그의 위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아질 수 있다. 정치적으로 더 크면서 진짜 대기만성의 사례를 보여주지 말라는 법도 없다. 미중 간의 관계가 이전보다 훨씬 좋아지려고 하는 분위기를 놓고 보면 진짜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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