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에 접어들었음에도 왕성한 필력 과시

중국 작가 중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이 가장 유력한 작가 찬쉐. 중국이 소프트파워에서도 강력한 국가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사진제공=환추스바오(環球時報)]
중국 작가 중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이 가장 유력한 작가 찬쉐. 중국이 소프트파워에서도 강력한 국가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사진제공=환추스바오(環球時報)]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어느 한 국가가 극강의 파워를 보유한 글로벌 G1이 되려는 야심을 실현하려고 한다면 이른바 하드 파워만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소프트 파워도 갖추지 못한다면 절대 불가능하다고 해야 한다. 그럴 경우 뒤뚱거리면서 걷는 오리 같은 신세를 면치 못한다. 마치 냉전시대의 구소련과 비슷한 처지가 될 수 있다.

하드 파워에 관한 한 미국과 맞장을 뜰 자신감을 숨기지 않은 중국은 바로 이 소프트 파워에서 상당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BTS와 블랙핑크로 대별되는 K-팝이 세계를 주름잡는 한국보다도 평균적으로는 수준이 낮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소프트 파워 대국의 저력은 분명히 보유하고 있다. 5000년 역사를 상기하면 그렇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해야 한다. 지난 10월 초 수상자가 발표된 노벨문학상 후보에 여류 작가 찬쉐(殘雪. 70)가 당당히 오른 사실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더구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노벨문학상 수상의 유력한 후보로 뜬 것이 아니다. 4∼5년 전부터 계속 이름이 거명되면서 중국이 소프트 파워에서도 간단치 않다는 사실을 증명한 바 있다.

끈질기게 도전할 경우 언제인가는 수상에 성공하면서 중국의 소프트 파워가 간단치 않다는 사실을 증명해줄 찬쉐 작가는 본명이 덩샤오화(鄧小華)로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고향인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대단한 명문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버지 덩쥔훙(鄧鈞洪)이 중국을 대표하는 철학자를 꼽으라면 지금도 거론되는 학자로 유명했다. 또 오빠는 화중(華中)과학기술대학 철학과 교수를 지낸 덩샤오망(鄧曉芒. 75)으로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어머니가 기자였다는 사실은 이로 보면 별로 놀랍지도 않다고 해야 한다.

그녀는 그러나 고향 대선배인 마오 전 주석이 일으킨 문화대혁명(이하 문혁)의 유탄을 오빠와 함께 제대로 맞은 세대로 꼽힌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진학 길이 막히자 어린 나이임에도 공장 노동자가 돼야 했던 것이다.

이후 그녀의 삶은 명문가 출신답지 않게 정말 기구했다. 우선 공장을 나와서는 고향 인근에 자리한 한 농촌의 이른바 적각(赤脚) 의사가 됐다. 초등학교 학력의 젊은 여성이 의사가 됐다면 대단한 성공 스토리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나 당시 중국 농촌의 열악했던 의료 현실을 상기해볼 경우 얘기는 많이 달라진다.

적각 의사가 정식 의료인이 아니라 속성으로 양성한 간호조무사 정도의 인력이라는 답은 바로 나올 수 있다. 시쳇말로 돌팔이 의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러나 비록 정식 면허를 가진 의사는 아니었어도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나중에 이 경험이 그녀의 작품에도 적지 않게 반영됐다면 허송세월을 했다고는 할 수 없을 듯하다.

이후에도 그녀의 삶은 지난하기만 했다. 적각 의사 생활을 그만두고 결혼 후 차린 작은 봉재공장이 쫄딱 망한 사실 하나만 봐도 좋다. 이 정도 되면 그녀는 완전히 좌절해야 했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인 상태에서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현실에 직면했다면 분명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실오라기 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평소 소질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온 글씨기에 도전하는 결단도 곧 내릴 수 있었다. 나이 32세 때인 1985년에는 드디어 문단에 데뷔할 수도 있었다. 자녀까지 둔 주부로서는 진짜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해도 좋았다.

문단의 평가도 나름 상당히 괜찮았다. 이후 그녀는 창작에 마치 미친 듯 매달렸다. 이 노력은 엄청난 성과로 이어졌다. 거의 매년 한두 편의 작품을 발표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장편 11편을 비롯해 수십여 편의 중단편과 산문 평론은 최근 두 질의 문집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현재는 오랜 활동의 결과 마침내 노벨상까지 바라보게 됐다.

그녀의 작품 세계는 작가로 데뷔하기 이전 질풍노도와 같은 험난한 인생을 살아와서 그런지 밝고 긍정적인 것과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어떻게 보면 조금 음울한 느낌을 준다. 굳이 비교하자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대계 소설가인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에서 느낄 법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스웨덴의 평론가들이 그녀를 ‘중국의 카프카’라고 부르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해야 한다.

중국 내에서도 비슷한 평가를 받고 있다고 봐도 좋다. 전통문화를 반대하는 이른바 선봉파(先鋒派) 문학의 대표주자로 꼽힌다는 평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분명 작가로서 일가를 이뤘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국제적 명성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유명세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위화(余華. 63), 류전윈(劉震雲. 65), 옌롄커(閻連科. 65) 등과 같은 엄청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은 아예 언감생심이라고 해도 좋았다. 나이는 한참 어려도 문단 경력은 선배인 톄닝(鐵凝. 66) 작가가 유명세를 바탕으로 작가협회 회장 직위를 유지한 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국회에 해당)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는 것과 비교할 경우는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정 반대라고 해야 한다. 괜히 ‘중국의 카프카’로 불리는 것이 아니다. 노벨문학상에 필수적이라고 해도 좋을 번역된 작품들도 상당히 많다. 한국에서도 최근 수년 동안 다수의 책이 출판되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그녀는 올해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떠올랐으나 고배를 마셨다. 노르웨이의 희곡작가 욘 포세에게 간발의 차이로 밀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올해 각종 노벨상 예측 사이트들에서 수상 가능성 5:1로 1위를 차지한 것에서 보면 앞으로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봐야 한다. 

물론 노벨문학상이 요술 방망이는 아니다. 그녀 역시 수상에 목을 매지는 않고 있다. 중국 내외 문단의 그녀에 대한 평가만 봐도 그녀는 이미 성공한 작가라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소프트 파워가 간단치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웅변하고 있다고도 봐야 한다.

현재 그녀는 70대에 접어들었음에도 왕성하게 필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미 정치인이 돼버린 톄닝 전인대 부위원장과는 가는 길이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노벨문학상 수상에 그 누구보다 바짝 다가서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불우했던 인생 전반기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의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해야 한다.

또 수상에 성공할 경우는 중국의 소프트 파워가 간단치 않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다시 한 번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녀가 유명세와는 거리가 다소 있기는 하나 중국 문단의 대표적 파워 엘리트로 꼽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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