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잡가(雜歌)’가 무엇이기에 이리 시끄러울까?

경기잡가는 조선 조 말 전문 소리꾼에 의해 생성 전승된 속요(俗謠) 

경기 12잡가 공연장면, 좌로부터 묵계월, 이춘희, 이은주
경기 12잡가 공연장면, 좌로부터 묵계월, 이춘희, 이은주

【뉴스퀘스트=김승국 전통문화칼럼니스트 】 경기잡가(雜歌)는 일반 서민들이 부르는 순수한 민요와는 다른, 조선조 말(19세기 중엽) 서울을 중심으로 전문 소리꾼 사이에서 생성 전승된 속요(俗謠)이다. 그래서 잡가를 능숙하게 부르기 위해서는 상당한 학습 과정과 노력이 필요하다. 

당시 전문 소리꾼들은 ‘12잡가’와 ‘잡잡가’ 그리고 ‘휘몰이잡가’ 외에도 요즘 ‘정가’라 일컬어지고 있는 ‘가곡’·‘가사’·‘시조’는 물론 ‘선소리산타령’도 능숙하게 불렀다. 한가지 장르를 학습하기도 힘에 벅찬 요즘 국악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당시 전문 예인들은 모든 장르를 넘나들며 학습하여 능수능란하게 예능을 구사하였다. 

민속학자 고 임동권 박사는 1982년 서울특별시가 펴낸 「서울의 전통문화」 제1권 제6절 민속예술 편에서 잡가의 범위를 ‘12가사(歌詞)’, ‘12잡가(雜歌)’, ‘잡잡가(雜雜歌)’, ‘휘몰이잡가’, ‘선소리(立唱)’로 분류하고 있으나, 요즘에는 ‘‘가곡(歌曲)’과 ‘가사(歌詞)’, 그리고 ‘시조(時調)’를 통틀어 ‘정가(正歌)’라 지칭하여 ‘경기잡가’에서 분리하여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기잡가는 12잡가, 잡잡가, 휘몰이잡가로 구분

경기잡가 중 ‘12잡가’는 ‘긴잡가’ 또는 ‘경기좌창(京畿座唱)’이라고도 하며 조선조 말엽 당시에는 ‘8잡가’라 하였으나, 후에 ‘잡잡가’ 중 4곡이 추가되어 ‘12잡가’로 지칭하게 되었다. ‘8잡가’란 <유산가(遊山歌)>·<적벽가(赤壁歌)>·<제비가>·<집장가(執杖歌)>·<소춘향가(小春香歌)>·<선유가(船遊歌)>·<형장가(刑杖歌)>·<평양가(平壤歌)> 등이다. ‘8잡가’의 내용을 보면 판소리로부터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으며, 남녀 간의 사랑과 유락(遊樂)과 산천경개를 노래한 것들도 있다. ‘8잡가’ 중 <소춘향가>, <집장가>, <형장가>는 판소리의 <춘향가>로부터, <적벽가>는 판소리 <적벽가>로부터, <제비가>는 판소리 <흥보가>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유락(遊樂)과 산천경개를 노래한 <유산가>와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에 대해 노래한 <선유가>, <평양가>가 있다. 

삼강(三江)은 수전(水戰)이요 적벽(赤壁)은 오병(鏊兵)이라 난데없는 화광(火光)이 충천(沖天)하니 조조가 대패(大敗)하여  <적벽가>

화란춘성(花爛春城)하고 만화방창(萬化方暢)이라 때 좋다 벗님네야 산천경개(山川景槪)를 구경을 가세 <유산가>

‘잡잡가’는 ‘8잡가’보다 한 등급 낮은 소리 곡으로서, 19세기 말 조선조 말엽에 기녀 중 기생조합에도 등록되지 않고 ‘잡가’만 부르고 다녔던 삼패기생(三牌妓生)들과 남자로는 서울 용산구 청파동과 만리동 일대에 살던 사계축(四契軸)의 전문 소리꾼들이 주로 불렀다. 선율은 경토리와 수심가토리가 섞여 있다. 사설의 내용은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판소리의 한 대목을 묘사한 것들이 많다. 음악적으로도 비교적 민요에 가깝다.

‘잡잡가’에는 <달거리>·<십장가(十杖歌)>·<방물가(房物歌)>·<출인가(出引歌)>, <풍등가 (豐登歌)>·<금강산타령>·<토끼화상>·<자진방물가>·<변강쇠타령>·<범벅타령>·<장기타령>,<혈죽가>·<낭군가> 등이 있는데, 그 중 <달거리>·<십장가>·<방물가>·<출인가>가 12잡가로 통합되어 1975년 국가무형문화재로 ‘경기민요’로 종목 지정되어, 나머지 ‘잡잡가’의 전승 기반은 크게 약화하였다.

천하명산 어디메뇨 천하명산 구경갈 제 동해 끼고 솟은 산이 일만이천 봉우리가 구름같이 벌였으니 금강산이 분명쿠나  <금강산타령>

국태민안(國泰民安) 시화연풍(時和(年豐) 연년(年年)이 돌아든다 황무지 빈터를 개간하여 농업보구(農業報國)에 증산(增産)하세  농자(農者)는 천하지대본이니  <풍등가>

해학과 익살이 뒤섞인 ‘휘몰이잡가’는 요즘 ‘랩’가수의 노래와 닮아

‘휘몰이잡가’는 ‘12잡가’와 같이 서울지역의 삼패기생(三牌妓生)과 남자 소리꾼 사이에서 널리 불린 소리로, 예전에는 소리꾼들이 모이면 제일 먼저 ‘긴잡가(12잡가)’를 부르고, 다음에 ‘선소리’를 부르고, 마지막으로 판이 끝날 무렵에 해학과 익살이 뒤섞인 ‘휘몰이잡가’를 부름으로써 웃음으로 놀이판을 마무리 지었다 한다. 그 사설을 요즘의 랩 가수의 노래처럼 휘몰아치듯 빨리 불렀다고 하여 ‘휘몰이잡가라 하였다. 

’휘몰이잡가‘의 사설 내용을 보면 ’12잡가‘에 비하여 소박하고 해학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같은 내용의 말들을 겹쳐서 표현하고, 대화체로 솔직하게 표현되어있고, 서울을 중심으로 여러 지방의 이름이 많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전해져 부르는 노래로 <바위타령>·<만학천봉>·<병정타령>·<곰보타령>·<맹꽁이타령>·<비단타령>·<곰보타령>·<생매잡아>·<육칠월흐린날>·<한잔부어라>·<순검타령>·<기생타령> 등이 있다.

칠팔월 청명일(晴明日)에 얽은 중이 시냇가로 내려를 온다 그 중이 얽어 매고 푸르고 찡그리는 장기 바둑판 고누판 같고     <곰보타령>

배고파 지어 놓은 밥에 뉘도 많고 돌도 많다 뉘 많고 돌 많기는 임이 안 게신 탓이로다 그밥에 어떤 돌이 들었더냐      <바위타령>

서울시의 「서울잡가」 통합 · 확대 결정, 조선 조 말 전승 환경을 21세기에 적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지금 서울시가 기존에 무형문화재 예능 종목으로 지정되어 있던 「휘몰이잡가」 종목에 「12잡가」 · 「잡잡가」를 더하여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서울잡가」 라는 종목으로 통합 · 확대 지정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예능 종목 보유 단체인 ‘휘몰이잡가 보존회’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서울시의 입장은 “조선 후기 서울 소리꾼들은 가사 · 시조로부터 긴잡가와 휘몰이잡가까지 모두 학습하여 활동하였기 때문에 기존에 무형문화재 예능 종목으로 지정되어 있던 「휘몰이잡가」 종목뿐만 아니라 「12잡가」 · 「잡잡가」를 포괄하여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종목으로 「서울잡가」 라는 종목으로 통합 · 확대 지정한다”라는 입장이다. 

이에 반발하고 있는 ‘휘몰이잡가 보존회’ 입장은 ‘12잡가’는 이미 1975년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로 종목 인정이 되어있어 전승 기반이 견고하고, ‘12잡가’와 ‘잡잡가’, ‘휘몰이잡가’가 모두 서울·경기 지방을 기반으로 한 성악이라고는 하지만, 가사의 내용이나 창법이 서로 다른데, 기존 서울시 예능 종목 보유 단체인 ‘휘몰이잡가 보존회’와 상의 없이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무리하게 종목을 통합·확대 지정을 발표하였고, 서울시의 논리 방식이라면 가사·시조까지 묶어서 통합 · 확대 지정해야 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의 논리가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19세기 말 당시 소리꾼들은 장르를 넘나들며 소리 학습하여 연행했으나, 1960년대 무형문화재 제도가 시행된 이후 종목별로 무형문화재 예능 종목으로 지정되어 전승 기반이 구축되어 전승자들은 자신의 종목에만 전념하여 학습하기 때문에 전승 환경이 확연히 달라진 것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기에 ‘휘몰이잡가 보존회’가 강력히 반발하는 것도 당연하다. 

「서울잡가」의 출발, 전승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해결책 제시해야  

무형문화재 제도가 도입된 1960년대 이후 ‘선소리 산타령’은 1968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종목 지정되고 김태봉, 유개동, 김순태, 이창배, 정득만이 예능 보유자로 인정되어 전승 기반이 만들어졌고, ‘12잡가’는 1975년 ‘경기민요’라는 명칭으로 종목 지정되고 묵계월, 이은주, 안비취가 예능 보유자로 인정되어 전승 기반이 만들어졌고, ‘잡잡가’와 ‘휘몰이잡가’는 변방에 내몰려 있다가, 1999년 서울시가 ‘휘몰이잡가’를 종목 인정하고 박상옥을 예능 보유자로 인정하면서 ‘휘몰이잡가’의 전승 기반이 마련되었다. 

그러니까 잡가 중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잡잡가’만 소멸 단계에 머물렀다가 이번 서울시 발표로 소생의 전승 기반을 얻게 되는 기회가 찾아왔으나, 그동안 ‘휘몰이잡가’ 전승에만 죽으라고 전력을 쏟았던 ‘휘몰이잡가 보존회’ 전승자들 처지에서는 ‘12잡가’와 ‘잡잡가’를 통합한 ‘서울잡가’로 종목변경에 크게 반발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현실이 그러하니 서울시가 ‘서울잡가’라는 종목 이름으로 통합하려면, 예능 보유자 인정 심사 시 기존의 예능 보유 단체인 ‘휘몰이잡가 보존회’ 쪽에서 1명, ‘12잡가’ 쪽에서 1명, ‘잡잡가’ 쪽에서 1명으로 복수 인정하는 안으로 출발하고, 향후 예능 보유자 인정 시에는 ‘12잡가’, ‘잡잡가’, ‘휘몰이잡가’ 예능을 모두 겸비한 전승자를 인정할 것이라고 서울시가 전승자들에게 제시한다면 ‘서울잡가’ 종목 지정의 명분도 살리고, 기존의 ‘휘몰이잡가 보존회’ 전승자들이 받아드릴 수 있는 해결안이 될 것이다. 반발을 무시하고 그냥 밀어붙이려면 계속 불씨를 안고 갈 수밖에 없다. 원만하게 해결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민원을 불식시킬 수 있는 지혜로운 방안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