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지'...풍경화지만 낭만파적 사조에서 벗어난 포스트모던 경향 돋보여

【뉴스퀘스트=정형렬 갤러리피코 대표 】

'룡당포의 봄'(20호 1969년)
'룡당포의 봄'(20호 1969년)

▲'룡당포의 봄'(20호 1969년)

조선역대미술가편람에서 인물의 성격 있는 형상이나 주제에 대한 메시지를 다룬 작품 외에 백두산 등의 특정 유명 소재를 풍경으로 다루지 않은 일반 풍경화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리병효의 풍경화들은 도판상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듯하면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다수이다.

이 그림의 배경인 룡당포는 황해남도 해주시 용당반도에 있는 포구로서 수심이 깊지만 물결이 잔잔하여 배가 정박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어 항구로 각광 받았다. 리병효는 해주와 여러모로 인연이 깊다. 그는 1950년대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로 해주시멘트공장에서 창작생활을 하였다.

위 그림은 가을날 해주시의 도시풍경을 그린 것으로서 이 시기 그림 가운데서 인상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리병효는 1916년 함경북도 청진시 어물행상인의 가정에서 태어나 청진상업보습 학교에 들어갔으나 학비를 대지 못하여 1년만에 퇴학당하고 열다섯살되던 해 철공소에서 소년노동을 하다가 부상을 입어 일자리에서 쫓겨나 서두수 강에서 뗏목을 탔다.

굽이굽이 계곡을 따라 흐르는 서두수강은 절기에 따라 변하는 아름다움으로 하여 감수성이 빠른 청년이었던 그에게 깊은 정서적 충동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위 편람에서는 ‘그가 일제의 학대와 착취 속에서도 조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화폭에 담아보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짬짬이 그림공부를 하였다. 근 10년간 자습으로 그림공부를 해보았으나 도시와 멀리 떨어진 림산지대에서 보는 것도 없고 지도도 받지 못하는 형편에서 그의 실력은 좀처럼 올라가지 못했다. 1944년에 서울로 가 영락정에 있던 배운성의 미술연구소에 들어가 처음으로 소묘가 무엇이며 어떤 순차를 밟아 작품을 창작해야 하는가 하는 기초를 배우게 된다.’고 전한다.

리병효는 북한에서의 리쾌대와 인연이 아주 깊다. 리쾌대는 1953년부터 리병효의 집에서 살다가 그의 주선으로 1957년에 다시 결혼을 하였다.

리병효는 연령상으로는 리쾌대와 동시대 1세대 작가이지만 서울에서 리쾌대의 제자였고 따라서 홀몸으로 들어온 그를 의리적으로 자기 집에 생활거처를 잡아주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들이 건설성 미술제작소에서 초기창작생활을 같이 하였던 것과도 관련이 된다. 그때 리쾌대가 그린 리병효 본인과 그의 딸 초상 등은 살아 숨쉬는 것 같다고 편람은 평가하고 있다.

룡당포 해안가 주변에서는 공장의 굴뚝 연기가 힘차게 피어오르고 있다. 연보라빛의 하늘과 연두색의 바다, 초록의 해안가와 아련한 파란섬들 너머의 창공에는 한결같이 부드럽고 노을 비낀 환상적인 오로라빛의 색조가 머리 위에 펼쳐지면서 굴뚝 연기가 피어나는 생동감을 조화롭게 받쳐주고 있다. 인공미의 상징인 굴뚝과 그 연기는 항구의 활력을 상징하면서 깊은 운치를 드리우고 있는 주변의 자연미와 어울림의 미를 선사하면서도 선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바다와 함께 하늘과 산은 황금분할의 구도를 펼치고 있는데, 산의 언덕길 주변에서는 봄의 배꽃이 점점이 흐드러지게 만발하며 봄기운을 왕성하게 퍼뜨리고 있다. 대기중에 퍼지는 하얀색 굴뚝 연기의 흩날림은 부지런히 돌아가는 공장의 일꾼들이 분주히 쏟아내는 땀방울을 연상시킨다.

 '유원지'(41.5-30.5 1968년)
 '유원지'(41.5-30.5 1968년)

▲ '유원지'(41.5-30.5 1968년)

1950년대 '아놀드 토인비'가 처음으로 사용한 문화적 개념인 포스트모던은 1960년대 들어서 활발하게 나타난 사회적, 문화적, 학문적 현상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이 사조는 고전적이고 우아함을 바탕으로 한 기존 미술계에 대한 반감으로 모더니즘 자체가 이미 낡아빠진 구시대적 유행이며 대중속으로란 대명제하에 "어디서든 어떤것이든 어느누구든 무엇이든지간에 예술이 될 수 있다." 라고 하는 소명의식이 바로 오늘날 '포스트모던 아트'의 기틀이라 할 수 있겠다. 미술계에서는 팝아트의 한 개념으로 흘러 영향을 주었으며 설치미술, 행위예술 등과 연대하며 상통하는 맥락을 유지해왔다.

68년작인 본작의 느낌은 풍경화임에도 낭만파적인 사조에서 완전히 벗어난 리병효만의 간결하면서도 단순화된 포스트모던의 사조적 경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72년작 '두인물이 있는 풀장( Pool with two figures)'의 수목을 표현한 기풍과도 매유 유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두인물이 있는 풀장( Pool with two figures)'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두인물이 있는 풀장( Pool with two figures)'

이처럼 리병호의 유원지는 색감과 표현기법, 전체적 흐름의 방향성을 봤을 때 전위적(Progressive)이고 개방적인 사고가 잘 조화된 굉장히 독특한 풍경화임에 틀림없다. 대동강변에 위치한 한적한 정원과 누각을 품고 있는 공원에서는 사람들이 한가로이 산책과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그 옆에는 강물의 대교 아래에서 조정 경기의 배들과 조각배를 타고 있는 이들이 수면 위를 분주히 움직이며 활력과 낭만의 공간미를 창출하고 있다.

원형 호수를 사이에 두고 근경의 잔디밭은 황토와 잔디가 반분하고 있고, 나무 빛깔의 그림자들이 푸근한 자연미를 안겨주며, 모네풍의 인상주의 회화의 잔상을 짙게 드리우고 있다. 초록의 나뭇잎들은 햇빛에 반사되어 노란 별빛처럼 반짝거리며 미려한 회화미를 선사하고 있다.

그 공원 정원과 수림 지대 사이에는 주변에 원형 띠의 연못이 포근하고 운치 있게 둘레를 감싸고 있다. 그 연못 위에는 보랏빛깔의 연꽃 군상들이 넓적한 녹색의 연잎들과 물 위를 다투어 장악하다시피 풍성하게 피어서 이 풍경화에 월계관을 씌워주고 있다.

대동강(大同江)은 한반도에서 다섯 번째로 큰 강으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평안남도 대흥군의 랑림산맥의 한태령(1,356m)에서 발원하여 황해로 흐른다. 하류에는 평양직할시가 위치해 있으며, 강 유역에는 고구려 유적지가 많고, 유역 형상은 평행형 유역이다.

리병효 화가 
리병효 화가 

◇리병효(1916. 3. 20. ~ 1981. 3. 30.)는 누구인가?

● 1916년 3월 20일 함경북도 청진시 신암동 출생

● 1931년 청진상업보습학교 1년

● 1944년 서울 영락정배운성 미술연구소

● 1950년 서울시미술연구소, 서울간부학교 사업

● 1951년 8월이후 문예총, 중앙미술제작소 부원, 미술가

● 1960년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

● 대표작: <벽돌공장>, <청류벽>, <꽃>, <해주풍경> 등 여러점의 작품을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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