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치황 베이징대학 총장. 베이징대학을 글로벌 10위권 대학으로 올려놓을 경우 차기 교육부장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베이징대학 홈페이지.
궁치황 베이징대학 총장. 베이징대학을 글로벌 10위권 대학으로 올려놓을 경우 차기 교육부장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베이징대학 홈페이지.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학자를 꿈꾼다면 누구나 대학 교수가 되는 것을 가장 선호한다. 가능할 경우 좋은 대학에서 학계의 인정을 받는 학문적 성과를 올린 다음 최종적으로는 최고 책임자로서 경영까지 진두지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 하지만 누구나 다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학자들이 하늘의 별처럼 많은 중국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해야 한다. 시쳇말로 고전 맹자(孟子)에 나오는 것처럼 천시(天時. 하늘의 때), 지리(地利. 지리적 이점), 인화(人和. 사람 간의 화목) 등을 모두 허락받은 복을 타고난 노력파 학자에게만 주어지는 행운이 아닌가 싶다.

이 점에서 보면 중국 최고 명문 대학 중 하나인 베이징대학의 궁치황(鞏旗煌. 60) 총장은 학자로서 누릴 수 있는 행운을 그야말로 타고난 이라고 해도 좋다. 진짜 절묘하게 모든 타이밍이 맞아 총장 자리에 오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부임한지 채 2년이 안 되는 이학 전공의 궁 총장은 부부장(차관)급으로 당 중앙후보위원의 자리도 겸임하고 있다. 언제든지 부장(장관)이나 정원이 200여 명 남짓한 중앙위원으로 올라설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해야 한다. 실제로 차기 교육부장으로도 거론되고도 있다.

이처럼 중국 교육계의 진정한 파워 엘리트인 그는 푸젠(福建)성 푸톈(莆田)시에서 1964년 출생했다. 현재 위상으로 볼 때 당연히 어릴 때부터 청출어람이었다고 해도 좋았다.

런민르바오(人民日報)를 비롯한 매체들의 최근 보도를 종합하면 거의 천재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이력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고향 일원에서도 최고 명문으로 손꼽히는 셴유(仙游)일중을 3년 월반한 후 이뤄낸 수석 입학, 졸업의 스펙이 장난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15세의 나이이던 1979년 푸톈시 이과 수석의 성적으로 베이징대 물리학과(현재는 물리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동갑인 리수레이(李書磊) 당 정치국 위원 겸 중앙서기처 서기가 1년 앞선 1978년 14세의 나이로 도서관학과에 입학하는 기염을 토하기는 했으나 전공으로 볼 때 그가 훨씬 더 주목받았던 천재라고 할 수 있었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그는 천재성을 잃지 않았다. 19세에 학부를 졸업한 후 광학 전공으로 석, 박사 학위를 가볍게 따낸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27세에 부교수, 31세에 정교수가 된 것 역시 마찬가지 아니었나 보인다.

이 기간 그는 영국과 일본으로 각각 유학과 연수를 떠나 국제적 감각도 익혔다. 국내용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입증한 것이다. 더구나 그는 다른 천재들이 현지 대학이나 연구소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현지에 슬며시 정착하는 행태와는 달리 당당히 귀국하는 선택까지 했다.

당시 우수칭(吳樹靑) 총장이 눈물까지 흘리면서 그의 귀국에 감동했다는 전설 같은 소문이 지금까지 전해져오는 것은 다 이유가 있지 않았나 싶다. 이에 대해 그는 훗날 “나는 모교의 은혜를 등에 업고 유학과 연수를 갈 수 있었다. 모교가 나를 진정으로 필요로 했던 것이다. 돌아오는 것이 당연했다. 더구나 나는 모교에 있으면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낀다.”면서 담담하게 술회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베이징대에서 조용히 연구에 진력했다. 각종 실험실 주임 등의 자리에서 후배와 제자들을 이끌면서 국제 학술계가 주목할 만한 성과도 많이 올렸다. 2007년과 2010년 영국왕실물리학회와 미국광학학회에 각각 거의 만장일치로 입회한 것은 다 까닭이 있었다.

이 바쁜 와중에도 2008년에는 독일 최대 장학재단인 DAAD의 연구비를 받고 뷔르츠부르크대학에서 연구하는 부지런함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2013년에는 49세의 젊은 나이에 이례적으로 중국과학원 정보과학원 원사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그는 40대 중반부터는 적극적으로 학교 행정에도 관여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0여 년 동안 물리학원 부원장, 발전계획부 부부장, 대학원 상무부원장, 학술위원회 주임 등을 차례로 역임할 수 있었다.

2017년 7월에는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부총장에도 올랐다. 총장 자리에 오르는 것은 목전의 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예상대로 약 5년 후인 2022년 6월 총장 자리를 거머쥐었다. 이어 10월에는 여세를 몰아 제20차 전국대표대회(매 5년마다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중앙후보위원으로도 선출될 수 있었다.

그는 흔히 이공학계의 천재들이 가지기 쉬운 일반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 근엄한 것이 특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학자치고는 상당히 상냥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그것도 모든 이들에게 다 그렇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2022년 베이징대 물리학원을 졸업한 왕츠톈(王次天) 씨의 설명을 들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궁 총장은 늘 시종여일하신 분이다. 마치 아버지처럼 학생들을 잘 챙기기로 유명하셨다. 우리가 졸업할 때에 부총장으로 있다 바로 승진하셨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이상했을 터였다. 앞으로는 더 큰 일을 하실 것으로 믿는다. 진정한 스승이셨다.”

그는 또 부지런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학교 발전을 위한 기부금 모금이나 대외 협력 문제 등과 관련한 일이 있을 때면 불원천리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중국의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 설)를 앞둔 올해 2월 초에도 전국을 마치 옆집 드나들 듯 다수 방문한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그가 취임한 직후인 지난해 기부금 모금이 전년에 비해 30% 이상 늘어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추진력도 학자치고는 정말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주도 하에 앞으로 더욱 강화될 조짐을 보이는 촘촘한 전국 및 해외의 동창회 조직은 이 사실을 무엇보다 확실하게 증명한다고 해야 한다. 청렴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출장 시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반드시 숙소를 저렴한 곳으로 잡는다거나 항공권을 이코노미로 구입하는 게 아예 버릇이 됐다고 해도 좋다면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다.

당연히 그 역시 비판의 대상인 단점이 있다고 해야 한다. 예컨대 사람을 너무 좋게만 평가한다거나 50대 이후 거의 학문 세계를 떠나 정치적 행보를 걷는다는 비판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학교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만큼 그는 베이징대 총장으로서는 거의 완벽하다고 해도 괜찮지 않나 싶다.

그에게는 현재 남겨진 숙원들이 몇 개 있다. 우선 모든 면에서 칭화대를 완전히 따돌리고 진짜 명실상부한 중국 내 부동의 원톱 대학으로 베이징대를 더욱 성장시키는 목표를 꼽을 수 있다.

이어 내친 김에 글로벌 톱10 대학으로 진입시키는 것 역시 그가 총장 재임 시절 이뤄내야 할 숙원이 아닌가 보인다. 만약 이 숙제들을 원만하게 풀 경우 그는 진짜 중국 교육계의 수장이라는 다음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전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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