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조병풍'...노대가의 절묘한 필력과 생동감 있는 운치가 느껴져

【뉴스퀘스트=정형렬 갤러리피코 대표 】

원앙새(138-70 1986년)
원앙새(138-70 1986년)

▲ 원앙새(138-70 1986년)

최근 미국에서 어느 조류학자가 미국의 호수에서 세계적인 희귀조 원앙새 1마리가 발견되었다고 반가움을 표시한 기사를 보고 의아해한 적이 있다. 그런데 최근 국내에서도 중랑천변에 원앙새 200여마리(100쌍)가 떼로 모여 노닐고 있어 매우 보기 드문 광경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강변이나 실개천 혹은 호수 등지에서 원앙새 한두쌍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이렇게 많은 무리가 집단 서식하는 것은 굉장한 장관일 거라는 생각이 미친다.

원앙새는 그 부리와 머리 모양부터 전후좌우 신비롭고 오묘한 색깔과 좌우 날개와 등 위로 솟은 깃과 꽁지 날개 등이 매우 희한한 모양새를 하고 있어 마치 봉황새의 축소판인 듯한 인상을 심어준다. 보면 볼수록 매우 섬세하고 고귀한 실크 수예실로 짠 옷을 입혀 놓은 듯한 귀공자 같고, 그 형상은 명장 예술인의 조각작품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나 수컷 원앙이 그렇고 암컷도 차분하면서 고상한 회갈색조의 고운 멋을 지녔다.

원앙새는 그 멋들어진 모습 못지않게 암수 한쌍이 매우 다정하고 금슬이 좋아서 예로부터 그들의 생태가 인간세계에도 귀감이 되어온 조류이다. 원앙새는 대개 한곳에 정착하여 그 주변에서 고요하게 생활하고, 암수가 늘상 붙어다니며 조용하고 단조로운 생활습관을 즐기면서 마치 인간들에게 ‘번거롭게 살지 말고 욕심을 줄이며 한가하게 살지어다.’ 하고 교훈을 주려고 하강한 듯한 기묘한 새라는 상상이 들기도 한다.

한명렬 화가도 원앙새의 이러한 다채롭고 고귀한 자태를 정성어린 채색으로 섬세하게 형상해 놓았다. 달빛어린 강가에 능수버들처럼 늘어진 소나무 아래에서 암수 한쌍이 태평하게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광경에 부러움이 듬뿍 담긴 감정이 이입된 듯하다. 그 부러움은 그 원앙새들의 다정한 금슬과 귀인의 풍모를 풍기며 세속을 초탈한 듯한 여유로움 모두일 것이다.

한명렬 작가는 1세대 화가의 막내군과 2세대의 선두주자들 사이의 낀 세대이다. 그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재학 중에 6.25 전쟁으로 월북한 화가로서 황영준 아래 후배이면서 박제일의 선배 격이다. 이 화폭에서도 그의 농축된 실력과 기초가 번득이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소나무 가지들을 쳐나가면서 필력에 예리한 힘이 실려 있고, 그 옹이의 마디마디에서 싱그러운 기운이 움트고 가지들의 휘어짐과 꺽어짐에서 몰골기법의 정수가 맺혀 있는 기상이 돋보인다.

남북한 관계에서도 이 원앙새들처럼 담백하고 진솔한 몸짓과 교신만 오고가도 다툼 없이 지낼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상호간에 지나치고 과장된 언사들, 과잉되고 떠들썩한 모션들의 반복으로 일촉즉발의 국지전적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세계 각국이 각자의 길을 열심히 살아가며 서로 협조하고 경쟁하고 있는 형국에서 남북한 만이 서로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떠밀려 표류하고 있는 어리석음을 자행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한쪽이라도 의연하게 솔선수범하고 양보하며 이해하는 지혜가 아쉽다.

화조병풍 (8폭 2002년)
화조병풍 (8폭 2002년)

▲ 화조병풍 (8폭 2002년)

왼쪽부터 꽃나무 이름을 나열하면 동백꽃, 매화꽃, 소나무, 대나무, 등꽃, 포도, 석류, 감나무이다. 매화와 등꽃에만 한쌍의 벌들이 날아다니고 나머지 꽃과 나무에서는 한결같이 밀화부리 한쌍이 나란히 앉아 있거나 다정하게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화조화는 고려시대 공민왕이 처음 그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꽃과 나무의 아름다움과 기상을 표현하면서 한쌍의 새와 벌, 그리고 종종 닭과 병아리들을 등장시켜 부부와 가족간 화목을 기원하는 의미도 담아왔다.

고상한 꽃잎의 색감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흘러나와 가득 퍼지고, 가지와 줄기가 꺽어지고 휘어지며 자연스럽게 뻗어나간 맵시에서는 노대가의 절묘한 필력과 생동감 있는 운치가 느껴진다. 작가는 좌측으로부터 가장 이른 봄에 피는 꽃부터 계절 순으로 차례로 배열시켰다.

우리나라 남쪽에는 동백나무가 있어 겨울과 작별하는 시기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매화와 함께 봄빛을 자랑한다. 매화는 그림에서와 같이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나란히 세폭의 병풍이 합쳐진 송죽매 그림에서는 매화와 대나무가 소나무를 감싸 안고 서로의 기상을 추켜세우고 있다.

소나무 꽃인 송화는 5월경에 피고 대나무의 죽순이 나는 시기는 보통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까지이다. 등꽃도 비슷한 시기인 5월에 피고 포도는 7~8월, 석류는 9~10월, 감은 10월에 익는다.

한명렬 화가 
한명렬 화가 

◇ 한명렬(1926~작고)은 누구인가?

조선역대미술가편람에서 언급한 한명렬에 대한 설명이다. “그는 홍익대학에 입학하여 학비난을 겪었으나 월북화가로 당시 홍익대학 교수진이었던 배운성, 유진명과 리응로 등의 도움으로 간신히 공부를 이어갔다. 그는 전문미술교육은 1년밖에 받지 못하였으나 그림에 남다른 소질을 가지고 있었고 또 어려서부터 고생하면서 자기 앞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생활론리를 깊이 깨달았기 때문에 이악하게 노력하여 미술가로 자랐다.

그는 조선미술가동맹에서 세차레에 걸치는 미술기량강습에 참가하여 유능한 미술가들로부터(리석호, 정종여 등) 조선화에 대한 전문실기 교육과 창작 강습을 받았다. 그는 수채화 <장다리꽃>(1956년)을 내놓았고 연이어 수채화들인 <기술협조>, <정성을 들여>, <보모와 어린이> 들을 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성과를 거두었다.

1959년에 이르러 자신감을 가지고 조선화 작품을 내놓기 시작했는데 이로써 자기의 전도문제를 확정하게 되었다. 그의 대표작들은 다음과 같다. <첫솜씨>(1963년 국가미술전람회 3등상), <대동교 복구>(1965년 국가미술전람회 3등상), <백두산의 만병초>(1977년), <화조병풍>(1978년)이다.

그는 조선화 화가로서 많은 주제화를 창작했고 말년에 이르러 화조몰골을 주로 그렸다. 그의 필법은 조용하고 부드럽다. 조선화기법에 정통한 그는 몰골그림에서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명렬 약력

1926년 2월25일 전라북도 익산군 오산면 영만리에서 출생.

1937년 오산소학교 입학, 그후 중국 오산현 안가소학교 졸업.

1949년 서울 홍익대학 미술과입학 및 졸업. (배운성, 유진명, 리응로 등의 도움으로)

1954년 신의주 법랑철기공장 미술가

1955년 – 1956년 미술기량강습참가 (리석호, 정종여 지도)

1976년부터 평안북도 미술창작사 미술가로 활동.

1988년 공훈예술가 칭호, 송화미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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