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동서독 통일의 상징물인 브란덴부르크문에서 독일 통일 30주년 기념 축제가 열렸다.[사진=연합뉴스]
지난 2020년 동서독 통일의 상징물인 브란덴부르크문에서 독일 통일 30주년 기념 축제가 열렸다.[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 독일 베를린과 뮌헨은 참 다르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를 뿐만 아니라, 정치·역사적으로도 차이가 크다. 어느 쪽이 어디라고 할 수 없지만, 마치 우리의 영·호남에 비견된다.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1871년 비스마르크의 독일 통일에 가장 늦게까지 거부한 것이 바이에른이었다. 베를린에서 공부한 뒤 뮌헨에서 직장을 얻기가 힘들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란 ‘썰’(設)조차 있을 정도다.

유학 시절 1986년부터 1989년 간 베를린과 뮌헨을 오갈 때 딱 하나 동일한 목소리를 체험했다. 양 지역 대학생 가운데 동독과 통일을 원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동독이 서독과 다른 새로운 사회주의민족이며 별개의 주권국가라 주장하는데 굳이 통일해서 마찰을 겪을 이유도, 그들을 위해 돈을 낭비할 필요도 없다는 의견들이었다. 이성과 합리성을 강조하는 독일인, 독일 철학의 당연한 귀결이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 붕괴를 현장에서 지켜볼 때 가슴에 절실하게 다가온 것은 민족이었다.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는 동서독 주민 사이에 터져 나온 것은 하나의 민족이라는 감성이었다. 하나였다 나뉘어졌던 것이 다시 하나가 되는 기쁨이 온 몸에 전해왔다.

곧 동독 주민의 서독 이주가 늘어나자 “맥주잔이 넘쳤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통일이 되고 통일비용이 급증하고 길어지자, 서쪽에서는 부담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동쪽이 감사할 줄 모른다고, 동쪽에서는 서쪽이 너무 생색내고 자신들을 2등 국민 취급한다고 서로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통일 8년이 되는 해에 60대의 동쪽 부부, 70대의 서쪽 부부를 큰 배를 타는 여행에서 만났다. 6명이 둘러앉으면 화기애애했다. 동서쪽 부부 가운에 어느 한 쌍이 빠지면 분위기는 자못 심각해졌다.

동쪽의 남편은 동독 시절 아주 큰 체제선전 출판사 사장이었고, 부인은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맑스-레닌주의를 강의했다. 철저한 공산당원들이었다.

이들의 통일 비난이 시작되었다. 통일 이후 둘 다 직업을 잃었다, 이전에는 베를린에서 큰 아파트를 아주 싼 값으로 제공받았는데 이제는 작은 아파트에 비싼 임대료를 내어야 한다, 동독 시절 자신들이 받은 소득에 따른 연금을 받아야 하는데 통일 이후 동독 노동자 평균 연금을 받아 부당하다 등 끝이 없었다. 그러면서 이런 여행이 세 번째이고, 아들이 슈투트가르트 벤츠 본사에서 회계사로 일한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들이 마음껏 누리는 자유, 단 한 푼도 서독 연금체제에 기여하지 않았음에도 둘 다 받고 있는 연금, 통일이 되었기에 아들이 서쪽에 오고 굴지의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던 통일 편익(便益)에 대한 감사·고마움은 표현하지 않았다.

서쪽 할머니는 남편이 목수로 평생 일했고 자신은 전업 주부여서 남편만 연금을 받는다, 우리는 생애 처음으로 이런 여행을 하는데 저 동쪽 부부는 이른바 완전고용 사회라는 사회주의체제에서 둘 다 직업을 가져 둘 다 통일 이후 연금을 받고 그것으로 여행을 즐긴다, 여행사들이 동쪽 연금 생활자들에 의해 먹고 산다, 그러면서 감사할 줄 모른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할아버지는 몸이 아파 생애 처음 가진 멋진 여행도 마치지 못하고 들 것에 실려 내렸다.

통합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지 독일 통일을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이유가 되었다. 통일 25년인 2015년의 독일 여론조사기관 ‘Statista’에 의하면 구동독 주민의 77%와 구서독 주민의 84%가 “독일 통일이 타국에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고, 구동독 주민의 66%와 구서독 주민의 76%가 “종합적으로 볼 때 통일은 성공적이었다”고, 다만 구동독 주민의 77%와 구서독 주민의 64%가 “통일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Statista의 최신 발표(2024.01.02)에 따르면 정체성과 관련해 구서독 주민의 78%가 자신을 독일인으로, 16%가 서독인으로 느낀다고 응답했다. 구동독 주민은 55%만이 자신을 독일인으로, 41%가 아직까지 동독인으로 느낀다고 밝혔다.

40년 지속된 분단의 극복에 40년 이상의 시일이 소요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눈여겨 봐야할 것은 길거리에 뛰쳐나가 분단 시절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독일인, 특히 구동독 주민이 없다는 사실이다.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이러저러 불만을 토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들 스스로 선택했던 길이기에 감수해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의로 서독으로 행진했고, 서독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 체제를 1990년 3월 18일 전 세계 지켜보는 가운데 동독 40년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시된 자유총선거에서 투표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어려움을 겪고 비용을 쏟아야 했지만, 통일된 독일은 정치 강국이자 군사 주권국이 되고, 분단 시기와 비교할 수 없는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간격이 여전히 있지만 동서 주민들은 함께 통일된 조국을 힘을 합쳐 건설하고 있다. 동독 출신이 연방대통령, 연방수상, 연방의회의장, 축구국가대표팀 주장과 감독이 되었다. 독일인 근본에 내재한 더 큰 이성·합리성으로 통일 이후의 어려움을 헤치고 돌파했다.

동서 주민 간 갈등과 차이를 부각해 독일 통일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이 있다면, 우리의 뿌리 깊고 좀체 사라지지 않는 지역갈등을 돌아봐야 한다. 그 속에서도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든 대한민국 국민을 되새겨야 한다.

긴 서설(序說)의 요지는 동서독이 통일, 서독 및 통일 독일의 헌법인 ‘기본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독일 통일은 성공적이란 사실이다. 이후 세계정세 변화와 독일의 대응에 문제가 있어 현재 독일은 전 세계와 마찬가지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통일과는 별개이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헌법4조에 명시한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민은 통일을 실현해야 한다. 대통령은 헌법66조 3항과 69조에 따라 통일을 의무로 받아들여야 하며, 국회법에 따라 통일 의무를 선서해야만 하는 국회의원들도 통일을 추진해야 한다.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이 상식과 양식을 점검해야만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김정은이 우리와 동족임을 거부해도 반만년 함께해 온 우리 민족, 한 민족의 역사는 부정될 수 없다.

북한 애국가 ‘아침은 빛나라’에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 반만년 오랜 역사에 찬란한 문화”가 버려지지 않는 한, 우리가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을 잊지 않는 한, 김정은이 뭐라 우기고 혀를 놀려도 북한 주민이 우리와 한 민족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게 우리가 만들어야 하고, 한 가족임과 더불어 한 민족임도 깊숙이 깨닫는, 통일에의 의지도 되새기는 갑진년 한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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