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계의 대표적 젊은 피로 불리는 왕강 국무원 중앙선전부 부부장. 당정 최고위급 지도자가 될 역량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사진=런민르바오]
중국 정계의 대표적 젊은 피로 불리는 왕강 국무원 중앙선전부 부부장. 당정 최고위급 지도자가 될 역량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사진=런민르바오]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중국 정계에는 지난 세기 말부터 암묵적으로 용인된 불문율이 하나 있었다. 최고 지도자가 미래 후계자를 격세지정(현재의 지도자가 차기가 아닌 차차기 후계자를 지명해 키우는 것)하는 관례가 그렇다고 할 수 있었다. 전, 현 총서기 겸 국가주석인 후진타오(胡錦濤)와 시진핑(習近平)은 모두 이런 관례에 의해 발탁돼 최고 지도자로 올라설 수 있었다. 권력의 안정성 확보나 차차기 후계자가 장기적으로 효율적 집권 훈련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모범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 권좌에서 내려올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장기 집권의 길로 들어선 시 주석에 의해 이 관례는 완벽하게 폐기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지금 중국 정계에서는 차차기는 커녕 차기도 거론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있다. 후진타오 전 주석 시절 차차기 후보로 유력했던 후춘화(胡春華. 61)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이 지금은 거의 실각 상태에 직면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해야 한다.

그렇다고 유망주들의 이름이 전혀 거명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언제일지 모르는 미래에 당정 최고위급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지난 세기 70년대에 출생한 이른바 치링허우(七零後) 세대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대부분 당정 부부장(차관), 부장조리(차관보)급 직위에서 활동하는 젊은 피 세대로 곧 부장급으로 승진할 재목들이라고 단언해도 좋다. 국무원 중앙선전부의 왕강(王綱. 52) 부부장도 이 부류에 해당한다. 아니 그 누구보다 주목받는 강력한 젊은 피라고 해야 한다.

저장(浙江)성 우이(武義)현에서 1972년에 출생한 그는 고향 인근의 명문 항저우(杭州)대학 신문학과를 졸업했다. 기자가 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처음 직장은 항저우에 본사를 둔 유력지인 저장르바오(浙江日報)였다. 이곳에서 부주임(차장)까지 된 후 항저우 인근의 자싱(嘉興)시 지사의 지사장도 지냈다.

이어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에 소재한 신장두스바오(新疆都市報)로 옮겨 부총편집(부사장급)을 지냈다. 이후 저장르바오와 진르짜오바오(今日早報) 등 여러 매체들을 옮겨 다니면서 커리어를 아주 단단하게 쌓았다. 마지막에는 친정이라고 해도 좋을 저장르바오의 홍콩 자매 매체 회사의 사장까지 지냈다. 이 경력을 바탕으로 40대 초반의 나이이던 2015년에는 정치권에도 투신할 수 있었다. 일거에 저장성 정부 부비서장이 돼 주위를 놀라게 한 것이다. 이후 판공청 주임을 거쳐 저장성 후저우(湖州)시 시장과 서기를 거친 다음 2022년 성 선전부장으로 영전했다. 언론계에서 활동하다 정계로 말을 갈아탄 다음 쉴 새 없이 부지런하게 커리어를 쌓았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저장성 일대의 언론에서만 주목하는 그저 그런 젊은 피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2023년 4월 국무원의 중앙선전부 부부장으로 전격 발탁되면서부터는 일약 전국구 인물이 됐다. 하기야 일거에 두 직급이나 뛰어 승진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현재 분위기로 볼 때 수년 내에 부장급으로 승진하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언론계와 정계에서 두루 활동하면서 보여준 능력이나 자질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선 기자답게 판단과 분석력이 뛰어나다. 기자에게 통상적으로 부족하기 쉬울 경영과 조직 장악 능력도 상당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아무래도 여러 회사를 옮겨 다니면서 고위 간부를 지낸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봐야 한다.

방송 기자를 해도 크게 성공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말도 조리 있게 잘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당정 최고위층으로부터는 대단한 호소력을 가진 웅변가라는 칭찬도 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저장성 선전부장 국무원 선전부부장은 괜히 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 역시 약점이나 단점이 없지는 않다. 정계 경험이 10여 년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그가 언론계에서 20여 년 동안 활약하면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라고 해야 한다. 역시 시간이 해결해줄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선전 부문 이외의 일과 관련한 감이 다소 떨어질 것이라는 주변의 선입관 역시 그가 빨리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당 기관지 런민르바오(人民日報)의 평양과 서울 특파원을 두로 경험한 쉬바오캉(徐寶康) 대기자의 설명을 들어봐야 할 것 같다.

“그는 아직 젊다. 현재로서는 언론 분야 이외의 일은 별로 해보지 않았다고 단언해도 좋다. 하지만 이는 당정 최고 지도부가 그를 키우려고 작정하면 별로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 다양한 분야의 일을 맡기면 그동안 그의 행보로 볼 때 대단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는 50대 초반의 평균적인 당정 젊은 피들에 비해서는 한두 걸음 더 앞서 가는 선두 그룹에 속해 있다고 봐야 한다. 이는 외신에서 그의 최대 라이벌이 후진타오 전 주석의 아들인 동년배의 후하이펑(胡海峰. 52) 민정부 부부장이라고 평가하는 것을 봐도 분명히 알 수 있다.

현재의 정치 구도로 볼 때 시 주석은 빠르면 2027년, 늦어도 2032년을 전후해서는 권좌에서 내려올 가능성이 높다. 그가 커리어를 더 쌓을 시간은 아직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고 해도 괜찮다. 더불어 그동안의 승진 속도는 시간이 그의 편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수년 내에 부장급으로 올라선 후 60세가 되는 2032년 경에는 국가급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그 중간에 만에 하나 부패나 비리에 연루되는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는 포스트시진핑 시대의 가장 강력한 젊은 피가 될 수 있다고 단언해도 좋다. 중국 내외의 매체들이 최근 들어 그를 예의 주시하는 것은 절대 괜한 게 아니다.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