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있는 북장단에 맞추어'...노동현장의 휴식시간에 벌어지는 흐드러지는 춤판 묘사
'금강산의 가을'...실감나는 자연산천의 현장성을 만끽

【뉴스퀘스트=정형렬 갤러리피코 대표 】

찬란한 민족문화의 력사를 더듬어(274-106 2016년)
찬란한 민족문화의 력사를 더듬어(274-106 2016년)

▲찬란한 민족문화의 력사를 더듬어(274-106 2016년)

“아! 고수진 화가님, 참으로 대단하고 훌륭하십니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 그림은 조선시대의 역사적 위인들과 시대적 중심의제들을 한 눈에 조망해 볼 수 있도록 파노라마화(전경화)로 꾸며진 조선시대 일대기 역사화라고 할 수 있다. 마치 고대 그리스 시대 철학자들을 망라한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에 비견되는 대작이자 명작이다.

다인물 군상을 거침없이 그려나간 작가의 뛰어난 실력에도 찬사를 보낼 뿐만 아니라, 역사적 고증을 토대로 한 세밀하고 섬세한 시대적 배경과 심층적 장치들에 대한 식견도 놀랍다. 한편 이런 그림을 구상했다는 발상 자체가 진심어리게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과 역사를 움직였던 위인들에 대한 존경심이 흠뻑 묻어나 있다. 이조시대를 봉건시대라고 폄하만 하는 북한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여 보게 된다.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의 열정적인 애민정신과 노인과 어린이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열중해서 바라보는 장면이 우선 중앙에서 강렬하게 시선을 흡인한다. 그 옆에 ‘지식광명, 무식암흑’이라고 적힌 펄럭이는 깃발도 시사적이다. 이조백자 도자기를 어루만지며 살피고 있는 도공들의 장인정신, 신기전과 화포들을 점검하는 장군들과 병사들의 환한 표정들을 보면서 혜안 깊은 선혈들의 노고가 가슴뭉클하게 다가온다,

기중기를 어루만지는 다산 정양용의 땀방울, 음악의 거성 박연의 고아한 품격, 방랑시인 김삿갓의 청렴한 자태, 대동여지도를 바라보며 여정 채비를 차리는 김정호, 한약 조제에 몰입하는 허준의 모습도 감명적이다. 전투태세로 돌진하는 판옥선과 거북선, 숭례문, 첨성대, 측우기 등도 장엄하게 그려지고 있다.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한 자랑스런 역사들을 한편의 그림으로 율동적으로 구성하고 정교하게 집약한 대하드라마 그림이다.

힘 있는 북장단에 맞추어(217-140 2008년)
힘 있는 북장단에 맞추어(217-140 2008년)

▲힘 있는 북장단에 맞추어(217-140 2008년)

1953년생인 고수진은 이미 2000년대 초반에 공훈화가 타이틀을 달고 있었고 줄기차게 작품 활동을 하였기에 지금쯤은 충분히 인민화가의 영예를 획득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그의 풍경화는 아늑하고 고요하며 색채상으로는 은은하고 미려하다. 그리고 이렇듯 감미롭고 정적인 분위기의 풍경화 일색인데다가 이름에서 주는 인상 때문에 여성적 취향의 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인물화에서는 풍경화와는 달리 전반적으로 역동적 품새가 두드러지고 활달한 기상이 무르녹아 있다. 인물화에서의 은근하고 살가운 표정이라든가 거침 없고 자유자재한 형상 처리 및 과감한 사선 구도와 동선의 간결한 붓질은 김성민의 경지와 별반 차이가 없는 실력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2008년 북한의 국가미술전람회 수상작으로 북한 발행 도록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다. 한편의 삽화같은 이 작품에서는 그들의 일상적인 노동현장의 휴식시간에 벌어지는 흐드러지는 춤판을 묘사하고 있다. 북한의 국경일과 명절, 기타 가족 친지간의 행사장에서는 이러한 흥겨운 춤판이 다반사이다.

그들이 가벼운 놀이하듯 서로 어울리며 광장에서 신명나게 춤추는 광경은 공중파 화면에서도 익히 볼 수 있다. 그들만의 비정형화된 군무 문화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체질화되어 있는 점이 한편으로 부럽고 어려운 시기를 훈훈하게 이겨나가는 훌륭한 방편처럼 보여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개성공단 체험기를 보면 그들은 휴식시간에 한편으로 배구 등 단체 운동경기를 즐긴다고 한다. 북녘 동포들의 화색이 이 그림처럼 밝아지고 그들의 삶에 즐거운 활력이 감돌기를 고대한다.

힘 있는 북장단에 맞추어(217-140 2008년)
힘 있는 북장단에 맞추어(217-140 2008년)

▲ 금강산의 가을(120호 2004년)

고수진의 이 금강산 풍경화는 북한의 금강산 명화 중에 열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그림이다. 그 중에서 수위에 꼽혀도 손색없는 명작이다. 신령스럽고 아련한 원경의 첩첩산중과 함께 중경의 협곡 사이에 놓인 우아하고 안정감 있는 폭포수, 좌우의 웅장한 기암괴석의 바위 질감, 근경의 흐르는 연못 담수들이 시릴 정도로 푸르러 실감나는 자연산천의 현장성을 만끽하게 해준다.

원경 부분에서는 겹층의 산등성이와 계곡 및 운해들의 아스라한 측면들을 준법과 몰골기법으로 절묘하게 녹여내는 정창모의 묘법이 살아 있다. 좌우 양 날개와 기둥처럼 솟아 있는 산봉우리들은 선우영의 고밀도의 바위 질감들이 정성스럽고 우직하게 재현되어 있다. 한편 근경 풍경과 시원스런 계곡물은 최계근의 예리하고 감각적인 풍경화와 정영만의 예전 구상 풍경화에서 보이는 정교함과 입체스러움이 담겨 있다.

이처럼 후배 화가가 선배들의 고유한 장점들을 큰 가마솥에 뒤섞어 혼합, 용해, 집대성하여 자기화한 사례들은 매우 귀감어린 양상으로 여겨진다. 선배들의 특출한 개성들을 종합하여 자신의 중심을 잡아가며 자기만의 특화된 개성으로 도약시키는 실력과 능력은 어지간한 내공과 겸허한 수용성이 아니면 이뤄내기 어렵다. 이제는 원로화가 반열에 오른 고수진은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꾸준한 입상 경력을 보이며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하는 절차탁마 대기만성형의 대가이다.

이 그림은 은은하면서도 수려한 색채미를 마음껏 구사하면서 금강산의 가을 풍경을 신비롭고도 화미하게 화폭에 섬세한 수를 새겨 놓고 있다. 그러면서도 구도에 있어 균형감각이 빼어나고 웅장한 산맥과 운해들을 모자이크하듯 자유자재하게 효과적으로 배치한 노련미도 돋보인다. 아마도 금강산 풍경화 수작들 중 누가 그렸는지 작가 이름을 가려놓고 많은 사람들에게 어느 그림이 가장 잘 되었느냐를 묻는다면 최고 순위를 차지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그림이다.

고수진 화가
고수진 화가

◇고수진(1953 ~ )은 누구인가?

1953년 평양시 평전구역 출생

1975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졸업

-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창작가

- 공훈예술가

1984 국가미술전에 조선화 <밭갈이하는 농민들을 찾으시며> 출품

1992 국가미술전에 조선화 <농업열성자들화 담화...> 출품

1989~98 일본에서 개최전 통일미술전에 2차례 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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