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 블로그 '따뜻한 지방남자']
[사진=네이버 블로그 '따뜻한 지방남자']

【뉴스퀘스트=권태오 예비역 육군 중장 】 군에 라면이 급식용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 70년대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60년대 말 월남전 참전용사들이 라면을 먹어봤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못 들어봤으니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과문(寡聞)인지도 모르겠다.

당시 라면은 일요일 아침에 급식되었으니 지금처럼 간식 수준이 아니고 완전한 주식으로 활용되었다. 군용 라면은 커다란 봉지에 열 개씩 넣어 보급되었는데 1인 기준은 두 개씩이었다.

라면의 조리는 밥을 만드는 커다란 무쇠 솥에 끓인 물에 면을 넣어 살짝 익힌 다음 이것을 건져내서 식판에 놓고 식기를 들고 줄지어 선 장병들에게 집개로 적당량을 집어서 올려주면 그것을 받은 장병들이 옆에 놓인 스프 물을 국자로 떠서 그 위에 붓고 식탁에 가서 둘러않아 먹는 형태였다.

그러다보니 줄을 잘못서서 끓인 지 오래된 면을 받게 되면 떡처럼 굳어서 스프국물을 부어도 잘 풀어지지 않고 숟가락으로 잘라먹어야 되는 경우도 있었다.

병영 내 밥을 하는 조리기구가 무쇠 솥에서 증기 조리기로 바뀌고 나서도 이런 현상은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아예 증기 찜질기에서 라면이 푸욱 퍼져버리기 때문에 더욱 약간 이상한 모습이 되어 급식되곤 하였다.

소량을 끓여서 뜨거울 때 먹어야 제 맛인데 다수가 함께 생활하는 병영에서 제한된 시간에 식사를 마치기 위해서 감수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모습이었다. 휴가 다녀온 장병이 “라면도 사제(私製) 라면이 제 맛이지”하는 소리를 농담처럼 하던 시절이었으니 확실히 같은 재료라도 조리하는 방법에서 맛이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군대에서 먹는 라면이 꿀 맛 같던 때가 있었다. 열심히 일하고 끼니를 놓쳤을 때는 취사장에서 라면을 끓여 주곤 했었는데 이때 먹는 라면 맛은 휴가 나간 장병이 먹었다고 자랑하던 사제 라면이 절대 따라오지 못할 꿀맛이었다.

겨울철에 병영을 따뜻하게 덥혀주던 페치카(벽난로)에는 항상 밤만 되면 어슬렁거리는 그림자가 있었다. 몰래 라면 끓여 먹으려는 병사들이 왔다 갔다 하는 광경이었다. 훈련장에서도 눈치껏 라면을 끓여먹는 병사들이 있었는데 마른 소나무와 싸리, 솔방울은 화력이 좋으면서도 연기가 나지 않아 들킬 염려가 없다는 지혜(?)도 이런 과정에서 터득되었다.

미군들 야외 훈련장이 위치한 곳의 상점에서는 미군들이 라면으로 바꿔가고 넘겨준 미제 전투식량을 팔곤 하였는데 이미 그 옛날에 우리 라면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현장이 아니었겠는가.

젊은 간부들 중에 간 큰 친구들은 아예 독신자 숙소에 등산용 버너를 가져다 놓고 라면을 끓여먹곤 하였는데 불시에 들이닥친 상급부대의 검열 때 화재유발 도구를 숙소에 두었다고 지적을 받고 벌칙으로 군장 매고 연병장 도는 경우도 심심찮게 벌어지곤 하였다. 그래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며칠 지나면 또 다시 라면 냄새가 복도에 퍼졌었다. 그렇게도 라면이 좋았던 것이다.

한미연합연습을 할 때 훈련하던 지하 방카 속에서는 미군을 위해 항상 양식이 배식되었었다. 희한하게도 평소에 그렇게 먹고 싶던 양식도 세끼를 내리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하고 입안엔 느끼한 맛이 남곤 했다.

권태오 예비역 육군 중장
권태오 예비역 육군 중장

이럴 때 라면을 한번 먹고 나면 어느새 다시 산뜻하게 입맛이 돌아오고 또다시 양식을 먹을 준비가 되곤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라면은 우리 군인들에게 고마운 존재였으며 많은 이야기꺼리를 안겨주었다.

우리 장병들의 사랑을 받던 라면이 전 세계 90여개 국가에 수출되며 K-푸드의 열풍을 이끌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업적의 한편에는 우리 장병들의 지독한 라면 사랑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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