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발전’ 공언하며 곳곳에서 착공식
김정은 “자체 원료 의거 생산” 지시
집권 초 내놓은 경제특구도 물거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 28일 올해 '지방발전 20×10 정책'의 시작을 알리는 착공식에서 첫 삽을 뜨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 28일 올해 '지방발전 20×10 정책'의 시작을 알리는 착공식에서 첫 삽을 뜨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북한의 정치・사회를 지배하는 게 주체사상이라면 경제에선 ‘자력갱생’이 최고의 화두다.

오랜 경제난에 시달리다보니 원료부터 생산까지 모든 걸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얘기가 당연한 원리처럼 굳어진 것이다.

북한 관영 선전매체에는 “알아서 대주면 좋고 아니라도 자력갱생의 정신으로 난관을 돌파해 나가자”는 격문이나 구호가 단골로 등장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노동당이 경제 기관이나 공장・기업소 등을 비판할 때 자주 쓰는 표현도 “스스로 알아서 할 생각은 않고 위만 바라보면 조건타발이나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저런 조건이 맞지 않고 원료나 전기・유로 등이 부족하다고 불만(타발)만 쏟아낸다는 질타다.

올 초 김정은이 들고 나와 주민들의 마음을 부풀게 했던 ‘지방발전 20×10 정책’도 마찬가지 모양새로 돌아가고 있다.

‘20 승(乘) 10’으로 북한이 부르는 이 정책은 해마다 20개 군에 공장을 지어 10년 동안 200개 지방공업 생산시설을 갖추겠다는 김정은의 지역발전 구상이다.

지난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그는 “전국 인민들의 초보적인 물질문화 생활수준을 한 계단 비약시키고자 한다”며 이를 선보였다.

김정은은 이어 열린 노동당 제8기19차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지방인민들에게 기초식품과 식료품, 소비품을 비롯한 초보적인 생활필수품조차 원만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오늘날 우리 당과 정부에 있어서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심각한 정치적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평양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지방의 경우 기본적인 생활조차 어려울 정도로 문제라는 걸 김정은이 인식하고 있는 듯한 이 발언에 시골이나 지역에 사는 주민들로서는 ‘어려움을 풀어주려나’하는 기대에 솔깃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지시에 따라 요즘 북한은 온통 지방공업 발전으로 들썩이는 모습이다.

20개 군에서 동시에 착공행사가 열렸고 북한군 건설인력 4만명도 투입됐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 가운에 눈치 빠른 일부는 착공행사에서 나오는 당 간부들의 발언이나 노동신문 등 선전매체의 보도 행간에서 이상기류를 감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김정은과 노동당이 지방경제 발전과 관련해 별다른 지원책이나 방도 없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대목이 꺼림칙하다는 얘기가 흘러 나온다.

김정은은 “시・군들에서 지방공업 공장들을 현대적으로 건설하고 자체의 원료에 의거해 생산을 정상화 할 것”을 지시하면서 “경제적 조건을 구실로 지방공업 발전을 위한 중대조치를 취하지 못할 아무런 근거나 이유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런저런 구실을 대지 말고 공장이나 생산시설 건설에 필요한 비용이나 원료조달 등을 모두 자체적인 힘으로 해내라는 지시인 것이다.

김정은은 집권 13년 차에 접어든 자신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집착과 도발로 체제 내부의 자원이 고갈되고 민생을 챙기기 위한 여력이 소진된 점이나 대북제재를 자초함으로써 빚어진 문제점 등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이런 책임을 쏙 빼버린 채 자력갱생을 강요하는 언급을 내놓는 건 자가당착이란 말이 나온다.

집권 13년차에 이르도록 핵과 미사일 도발에 올인하는 바람에 대북제재를 자초했고 북한 경제와 민생은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라는 점에서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인 2013년에도 13개 지방급 경제개발구를 지정하는 조치를 취했다.

또 2017년 평양에 강남경제개발구를 설정하는 등 경제특구와 경제개발구를 23개나 만들었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개성공단 가동이나 금강산 관광 사업 등의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한국 측 기업의 자산을 압류하는 등의 조치로 파국을 맞게 했으니 해외 투자가들이 엄두를 낼 리가 없다.

북한은 개성공단 설비나 생산라인, 원자재를 이용해 공산품을 생산하고 있다.

2016년 2월 가동 중단에 들어간 업체의 무단 가동 사례는 2023년 말 기준 30개 기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우리 기업의 재산인 공단 시설의 무단가동은 명백한 남북 합의 위반이자 범죄행위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에도 북한 군인들까지 대거 투입하는 명령까지 내리면서 야심차게 20×10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나섰지만 전망은 암울하다.

북한 경제의 현실을 외면한 채 허황된 설계도만 자꾸 내놓는다는 비판이 또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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