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병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현행 징병제가 군대 폭력의 악순환을 키웠다

육군 28사단 윤 일병 집단구타 사망사건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같은 사단 소속 관심병사 2명이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충격을 더해주다. ‘부대 생활이 힘들다’고 적혀 있는 다이어리 낱장이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윤 일병을 죽음으로 몰고 간 군대 내 폭력이 자살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차라리 윤 일병이 부럽다”는 복무 중 사망한 장병들의 유가족들의 외침은 군대 내 폭력문화 그로 인한 의문사가 얼마나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군대 내의 폭력문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삼엄했던 군부독재 시절 모든 국민들은 군대 내의 폭력을 알고 있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면 누구나 무용담처럼 폭력을 당한 경험, 폭력을 행한 경험을 이야기했고, 듣는 사람 역시 농담처럼 그 이야기를 들어 넘기는 시절이 있었다.

재생산되는 군대의 폭력문화, 실효성 없는 각종 대책들

한국 사회의 민주화 열풍과 함께 사라졌을 것으로 기대했던 군대 폭력 문화가 다시 부활하고 있는지 아니면 폭력 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어 왔는지를 밝히는 것도 중요한 과제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군대 폭력 문화의 근절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국방부에서는 폭력사건, 총기 난사 사건 등이 발생할 때마다 폭력근절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여론이 수그러들면 ‘없던 일’로 되풀이되는 관행을 보여왔다. 2011년 김포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 때 국가인권위원회가 ‘병영생활 협의체’ 구성을 권고했으나 법률 제정은커녕 훈령조차 개정되지 않았다. 2005년 28사단 GP 총기난사 사건 때 국방부가 추진하려했던 ‘옴부즈맨’도 흐지부지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와 같은 일시적이고 즉흥적인 대책으로는 군대 내 폭력행위를 포함한 잘못된 병영문화가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모병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모병제 전환의 필요성

헤럴드경제는 ‘사설’을 통해 모병제로의 적극적 검토를 주문하고 있으며, 한국경제, 중앙일보 등은 기자 의견 형식으로 모병제 검토를 주문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모병제 전환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기도 하다. 국책연구기관인 ‘외교 국립외교원’ 역시 “2040년 통일한국 비전 보고서”에서 모병제로의 전환을 주장하기도 했다.

국회에서도 최근 모병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비록 ‘중장기적으로’라는 단서가 붙긴 하지만, 새누리당의 손인춘, 송영근 의원, 새정치민주연합의 진성준, 문재인, 김광진 의원 등이 모병제로의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이 모병제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병제로 전환되어야 사병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령이 차면 자동적으로 들어오는, ‘값싼’ 사병들은 군대에서 인간 취급보다는 소모품 취급을 받아왔던 것이 한국 군대의 실상이다. 간부들이 사병들을 자신의 수족 부리듯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간부의 가족들까지 상관으로 모셔야 하는 현실이 반복되었다.

군대의 폐쇄적인 조직문화 역시 모병제가 되면 달라지게 된다. 길게는 3년 짧게는 2년의 군대 생활은 군대에서의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회피하게 만들었다. 이같은 점을 이용하여 간부들은 군대 내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을 은폐하기에 바빴다. 사병이 죽으면 철저한 진상규명보다는 ‘자살’이라는 손쉬운 결론을 내려도 그 어떤 외부의 조사나 감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이같은 폐쇄적인 조직문화는 간부 및 고참들에게는 폭력을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고, 신병 및 하급병들에게는 조금만 참으면 고참이 되어 이 고통을 되돌려 줄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었다.

극단적 상황에 처한 사병들의 선택은 둘 중의 하나였다. 현실을 회피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서의 자살 그리고 폭력을 되돌려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의 총기난사 사건이 그것이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군대는 문제의 원인도 폭력이 되고, 문제의 해결도 폭력을 선택하는 극단적인 폭력 사회가 되었던 것이다.

인간은 자존감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다. 자존감을 인정받지 못한 사람은 자신 혹은 남을 극단적으로 취급하는 경향성을 갖게 된다. 입대 첫날부터 제대 마지막날까지 소모품 취급을 받는 현행 징병제 하에서는 집단구타, 자살, 총기난사 등의 군대 내 폭력은 반복될 뿐이다. 
 
모병제 시기상조론 비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위협론과 세금폭탄론은 이같은 모병제 전환의 발목을 잡는다. 각기 달라 보이는 두 가지 논리는 사실은 하나로 연결된다. 북한의 위협은 안보 태세의 강화를 요구한다. 모병제가 바뀌면 아무도 군대를 오려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안보에 공백이 생기게 된다. 모병제 하에서 이같은 공백을 메우는 유일한 길은 사병의 월급을 올리는 것인데, 이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요구하기 때문에 증세가 불가피하다, 즉 서민들은 세금폭탄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구차하기 그지없는 논리이다. 이미 군대는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 모병제이기 때문에 기피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징병제 하에서 반복되는 고질적인 폭력 사건과 사망으로까지 이르게 하는 집단 구타 문화가 군대를 기피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가고 싶은 군대, 인격이 보장되고 자존감이 인정받는 군대가 되면 군대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물론 모병제가 되면 사병의 월급은 올라가게 마련이다. 현재 상병 기준 월급이 15만 5천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병 연봉 2,000만원으로 모병제를 운영한다고 하면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단순 계산에는 두 가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첫째, 모병제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의 평화체제가 구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재의 65만명에 달하는 거대한 군대는 필요없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30만 정도의 병력이면 충분하다. 간부와 사병의 비율이 25:75인데 비해 이들의 인건비 비율은 99:1이다. 따라서 전체 병력을 30만으로 줄인다면, 설령 간부와 사병의 비율을 40:60으로 조절한다고 해도 모병제 전환에 따른 인건비 부담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지는 않는다.

둘째, 현재 국방예산에서 차지하는 방위력개선 비용 즉 전력투자비용과 전력유지 비용을 합치면 연간 20조원에 달한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수립될 경우 최소한 1/4가 줄어든다고 해도 연간 5조원 이상의 비용이 절감된다. 이렇게 절감된 비용을 모병제 운영 비용으로 전환한다면 세금폭탄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금폭탄론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미동맹 유지비용이다. 총 10조원 중 한국 정부 부담이 5조원을 차지하는 기지 이전 비용은 논외로 치더라도, 매년 1조원 넘게 지출되는 방위비분담금만큼은 세금폭탄론에서 제외되는 기형적인 논리를 접한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들어선다면 방위비분담금은 사라지게 된다.

이같이 한반도 평화체제가 되었을 경우 절감되는 예산만으로도 모병제 운영에 따른 재정 부담은 충분히 보충할 수 있다. 세금폭탄론은 모병제 전환을 막기 위한, 아니 군대 내 폭력문화를 재생산하는 징병제를 유지하기 위한 근거없는 주장일 뿐이다.

모병제 전환, 적극 검토해야

‘참으면 윤일병, 못참으로 임병장’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군대 내의 폭력 문화는 근본적인 병역제도의 전환 없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교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병을 싸구려 소모품으로 취급하고,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자존감 말살 제도라 할 수 있는 현행 징병제로는 군대 내의 폭력을 근절할 수 없다. 모병제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이유이다.

장창준 진보당 진보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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