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노동운동가 다시 거리로…2012년 정리해고 투쟁에 동참

[트루스토리] 윤한욱 기자 = “40년이 흘러도 노동자의 현실은 변한 것이 없다.”

1970년대 박정희 개발독재와 유신독재를 뚫고 노동조합 민주화 투쟁에 나서며 목숨까지 내놓아야 했던 노동운동가들이 다시 투쟁의 거리로 나선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일요일은 쉬게 해라!” 1970년대 노동자들의 요구이자 현실이었다.

그리고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신지 42년이 지났지만 2012년 그늘진 곳의 노동현실은 변한 것이 없다. 여전히 거리와 송전탑 위에는 해고 중단과 법을 지켜달라는 현수막이 내걸리고 선거일 날 남들처럼 쉬고 싶다는 호소가 들린다.

이렇듯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자본과 정권의 반노동정책과 노동탄압, 정리해고의 현실을 시민들에게 직접 알리고자, 이제는 ‘늙어 버린’ 70년대 노동운동가들이 정리해고 사업장의 후배 노동자들과 함께 해고중단을 호소하는 선전활동에 나선다.

28일 민주노총에 따르면 이들 늙은 노동운동가들(청계피복, 원풍모방, YH, 동일방직, 콘트롤데이타 등)과 정리해고 사업장의 후배 노동자들(쌍용차, 시그네틱스, 풍산마이크로텍, 대우자판 등)은 매주 수요일 서울 시내 주요 지역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유인물을 나눠주며 ‘정리해고 없는 세상 만들기 선언’ 서명도 받고 거리공연, 동영상상영, 선전방송도 진행할 예정이다.

청계피복노조는 전태일 열사 분신을 계기로 결성, 정부와 자본의 노조해산 시도에 맞서 농성과 단식 등 투쟁으로 노동조건 개선에 앞장 선 바 있으며, 당시 노동탄압에 대해 최근 법원으로부터 ‘국가는 노조원들에게 손해배상 하라’는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원풍모방노동조합은 1972년 8월9일 회사 측의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고 직장 폐업 맞서 명동성당에서의 농성 등의 협의로 노조간부 2명이 국가보위에관한특별조치법위반으로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민주적 노동조합으로 다시 태어났으며, 이는 1970년대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노동조합이 됐다.

또한 원풍모방노동조합은 회사가 1973년 6월 45억 원의 부채를 안은 채 부도상태가 되자 수습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회사의 재건과 노동자의 생존권 유지를 위하여 각고의 노력 끝에 회사를 정상화 시켰으며 회사운영 방식도 노사공동경영방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는 국내에서 최초의 근로자 경영참가를 시도한 의미 있는 실험적 사례다.

 
YH는 1966년 자본금 1백만원에 10명 규모로 설립됐지만 4년 후에는 4000명의 노동자를 거느리고 12억7000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순이익을 냈다. 이것은 모두 ‘여성 노동자들의 등골을 뽑아’ 이룬 결과였다.

노동자들이 해고를 감수하며 싸운 끝에 드디어 민주노조가 건설됐다. 노조가 최초로 조직한 잔업거부 운동은 생전 처음 감동적인 추석보너스를 안겨줬다. 조합원 전원이 함께한 일요일 연장 거부는 이틀 만에 해고된 동료들을 원직복직 시켰고, 여성들에게는 보장되지 않던 ‘부모사망 5일 휴가’를 요구해 여성차별적인 관행에도 맞섰다.

이를 통해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이 힘 없는 존재가 아니고 단결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YH는 당시 신민당사 점거농성으로 역사 속에 기억되고 있으며,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김경숙 조합원이 숨지기도 했다. 이 사건은 29년 만에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조작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으며, 야당 총재 의원직 박탈과 부산·마산 시민들의 민주화운동, 유신정권의 붕괴로 이어진 도화선이 됐다.

동일방직 민주노조운동은 1970년대 한국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다. 전체 조합원 1393명 중 88%인 1214명의 여성노동자들이 임금착취와 차별대우에 항의해 민주노동조합을 세웠다.

1976년 노조는 조합원 매수 등 노조파괴에 맞서 항의농성과 파업을 벌이던 조합원 수백 명이 경찰의 강제연행에 맨몸으로 저항하는 알몸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78년에는 노조 선거를 하러 오던 조합원들을 향해 회사가 똥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여성노동자 124명은 불순분자, 빨갱이라는 누명을 덮어쓰고 직장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이 때부터 명동성당과 노총회관에서의 단식농성 등 해고자들의 기나긴 복직투쟁은 시작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컨트롤데이터, 반도상사, YH무역 등 비조직 여성노동 사업장에는 노동조합 결성 바람이 거세게 불었으며 동일방직 노동운동은 향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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