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톹리] 김종렬 기자 = “새누리당이 아무리 친재벌, 반서민 정당이라지만 국감장에 기업인 증인채택마저 거부하는 새누리당의 재벌대기업 감싸기 본색에 그저 아연실색할 뿐이다. 새누리당과 권성동 의원의 이러한 재벌대기업 감싸기야말로 척결해야 할 구태 중의 구태, 적폐 중의 적폐다.”

“재벌 기업인 증인채택을 반대하는 새누리당의 행태는 명백한 야당 국감 방해행위이며 이는 국회와 환노위의 사명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포기, 정부 관료들의 재벌 총수 사면 등의 친재벌 드라이브와 맞닿아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야권의 반응이다. 하지만 여권의 생각은 다르다.

“경제가 대단히 어렵다. 기업인들을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부르는 문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고민해보자. 정부예산이 투입됐다든가, 또는 사회적 파장이 있었다든가, 또는 정부정책과 기본적으로 상충된다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당연히 증인이나 참고인 채택이 되어야하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증인채택에 신중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얘기다.

지난 8일 오후에 재개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선 금융지주회장 등에 대한 증인 채택 문제로 여야가 열띤 공방을 벌였다.

국민은행 주 전산망 교체와 과정에서 완력 다툼을 벌이다 불명예 퇴진한 임영록 전 회장과 이건호 전 행장은 이른바 ‘KB사태’의 핵심 당사자들인 까닭에 야당 의원들은 두 사람을 국감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새누리당은 한사코 거부했다. 새누리당 신동우 의원은 “국감의 본질은 삼권분립에 입각해 의회가 행정부를 감시하는 것”이라며 “총수든 누구든 증인채택이 가능하지만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맞섰다. 또 “특정 기업 내부 경영 정책에 의회가 관여한다면 국민이 바라는 국감이 아니”라고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하지만 신 의원의 주장엔 오류가 있다. 지난 반년동안 이어진 ‘KB금융 사태’는 관치 낙하산 인사가 빚은 폐해로 일개 기업의 일로 치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KB 사태의 핵심은 사실상 ‘정치가 판을 치는’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KB금융이 내부인사 기근에 시달리는 실질적인 이유는 ‘낙하산 인사 경영’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그동안 KB금융은 관치금융의 대표 기관으로 불렸다.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외부 인사들이 회사를 쥐락펴락했던 것이다. 정무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증인들은 대부분 기업만의 일로는 볼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새누리당도 자신들의 주장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사실상 야권의 손을 들어줬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8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KB사태와 관련해 임 전 회장, 이 전 은행장을 비롯해 정병기 KB국민은행 상임감사, 김재열 KB금융지주 최고운영책임자, 조건철 KB국민은행 IT본부장, 김종웅 KB이사회 의장을 금융위원회(15일)·금융감독원(16일) 증인으로 의결했다. 부의장을 역임한 새정치연합 박병석 의원은 “국감의 증인은 국민의 상식에 적합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정무위도 문제이지만, 증인 채택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곳이 바로 환노위다.

환노위는 첫 국감부터 이른바 ‘빅3(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를 포함한 기업 총수들의 증인 채택 때문에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둘째날도 증인 채택을 미뤄두고 형식적인 감사만 하고 있을 뿐이다.

새누리당은 어렵게 시작된 국감인 만큼 모범적인 국감이 되어야 한다면서 ‘기업인 망신주기’는 피하자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답안지도 이미 나와 있다. 기업인들은 절대로 국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친기업주의’를 표방하고 나섰다. 기업인들을 부를수록 경제가 위태로워진다는 기괴한 논리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회 환경노동위원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SK하이닉스 대표를 참고인으로, 포스코엠텍 대표를 증인으로 각각 요청했으나 환노위 권성동 여당 간사를 비롯한 새누리당 의원들에 의해 모두 가로막혔다.

오히려 SK하이닉스 대표는 백혈병 문제에 대한 의지를 국민 앞에 피력하고자 당사자가 국감 출석의사를 밝힌 상태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소위 ‘오버’를 하면서 기업들의 방패막을 자처하고 나섰다. 포스코엠텍의 경우는 강릉페놀유출로 인해 지역사회와 주민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힌 바 있고, 이에 대해 지난해 국감에 나와서 약속한 사항들이 지켜지지 않아 이를 추궁하기 위해 증인으로 불렀지만 새누리당은 투혼을 발휘하며 반대하고 있다. 포스코엠텍이 위치한 강릉이 권성동 의원의 지역구이기 때문에 소위 ‘지역구 대기업 감싸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새누리당은 한발 더 나아가 “민간인에 대한 호통국감은 안 된다”며 오히려 야당을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민간인 호통국감’의 원조는 도리어 새누리당이라는 게 중론이다.

지난 2008년 국회 행안위 국정감사에서 장제원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유모차를 끌고 촛불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국감장에 불려나온 한 아이엄마에게 “말하지 말라”, “묻는 말이나 대답하라”며 버럭 소리를 지르고 호통을 쳤다. 증인이 아닌 참고인 신분의 민간인에게 협박에 가까운 ‘호통국감’을 벌인 전력이 있는 새누리당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로 재벌대기업의 출석을 요청하는 야당에 대해 ‘호통국감은 안 된다’며 지레 막아서고 있는 까닭에 야당의 입장은 곤욕스럽다.

윤영석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야당 측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 23명의 기업인을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면서 “국정감사법의 감사 대상은 정부와 국가예산을 지원받는 공공기관이다. 국정감사는 정부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 기업인 및 일반인을 불러 호통치고 망신주는 자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인들의 증인신청이 계속 반복되고, 그에 대해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 가려는 시도는 잘못된 구태적 행태”라면서 “야당이 증인으로 신청한 기업인 가운데 상당수는 노사분규 및 정리해고 문제와 관련돼 있다. 이들 기업의 노사분규 및 정리해고와 관련해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민주노총의 입장을 비호하기 위해 무리한 증인신청을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는 야당의 반대도 공고하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새누리당의 ‘기업인 증인 배제’와 ‘노사 분규 기업 불개입 원칙’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심 의원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국감에서 “이번 국감 파행을 저는 한마디로 새누리당의 과도한 기업 감싸기라고 본다”면서 “야당의 합리적인 증인 요청조차도 전면 거부함으로써 이렇게 귀중한 국감 시간을 허비한데 대해서 강력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심 의원은 “권성동 간사는 국정감사법을 거론하면서 처음부터 기업인 증인은 안 된다고 말했는데 대한민국 국회와 환노위에서 그 동안 수도 없이 기업인들을 증인으로 채택했는데 그건 불법으로 했단 얘기냐”고 일갈했다.

그는 또한 “증인기준도 없다고 하는데 증인 기준을 왜 새누리당이 정하냐. 증인 기준은 국정감사 권한을 가지고 있는 국회의원 개개인이 자신의 가치와 철학, 소속된 정당의 정책노선에 따라서 정하는 것”이라면서 “요즘 언론에서 국회를 갑질 국감이라 비판하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 새누리당 태도야말로 집권여당의 ‘갑질’ 행태가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야권을 중심으로는 국정감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새누리당이 국감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야당은 세월호 진상규명과 정부의 인사 참사 등을 규정하면서 사실상 이번 국감을 돌파구로 삼고 여당에 대한 따가운 시선을 외부로 돌리고 국회 주도권 잡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면서 “현 정부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원래 취지에 맞지 않는 (증인 채택은) 철저히 배격해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대놓고 기업인을 배제하자는 원칙에서 나온 이야기다.

새누리당의 이 같은 강경 대응 움직임을 두고 ‘경제위기론’을 앞세운 청와대의 ‘기업인 증인 채택 불가’ 지침이 작동하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는 이야기까지 여의도 정치권에서 흘러 나온다.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간사는 “총수를 반드시 모시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해당 기업의 핵심 의사결정권자를 부르지 않으면 누구에게서 책임있는 답변을 들을 수 있느냐”고 개탄했고, 김기식 새정치연합 간사는 “새누리당이 재벌총수·회장·사장·행장 등 ‘장’자 붙은 사람은 증인으로 안 되고, 노사관계 문제가 조금이라고 관련돼 있어도 증인으로 부를 수 없다고 한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새누리당의 주장대로 기업인들을 무더기로 국감장에 불러놓고 제대로 답변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호통만 친 과거 사례는 분명히 문제가 있지만, ‘경제 위기’를 이유로 기업인들의 얼굴조차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의 증인 채택 문제는 사안의 공공성이 핵심이지, 그 대상 기관이 사기업이냐 공기업이냐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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