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이기은 기자 = 최근 한 트위터리안의 과자 구매 후기가 화제가 됐다. "어제 허니버터칩 살 때 없어서 편의점을 두리번거리다가 그걸 본 점원이 "몇 봉지 필요하세요?(소곤)" 그러길래 내가 "한봉지요(소곤)" 대답했더니 "따라오세요(소곤)"하고 창고에서 버터칩 슬쩍 꺼내주심. 사재기 때문에 숨겨서 팔고 계신다는데 무슨 마약거래인 줄 알았다"라는 일화가 이내 온라인을 장악한 것이다.

스타들마저 허니버터칩 열풍에 동참했다. 엄정화는 최근 자신의 SNS에 "밤 촬영에 배고플 때쯤. 분장팀이 꺼내주며. 지훈이가 이거 꼭꼭 전해주라고 했다고 신신당부를 했대요. 우리 귀여운 꼬맹이 아역배우 정지훈 군이 전해준 요즘 핫한 과자. 내 마음이 더 핫해졌네요. 고마워 귀염둥이"라는 글을 올렸다.

다비치 강민경도 자신의 SNS에 "편의점을 다섯 군데 마트를 두 군데. 어디에도 너는 없다. 환상 속의 과자일 뿐이다. 음모가 있어"라는 글을 올렸고, 소이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허니버터칩 한 봉지에 삶의 희망을 보았다"는 글과 함께 허니버터칩을 먹고 있는 사진을 게재하며 열풍에 동참했다.

대개 스타들이 명시한 상품은 홍보 효과가 생기게 마련이라서 연예인들은 기업들부터 상품을 협찬받는 일이 허다하다. 그런데 허니버터칩은 아예 반대다. 허니버터집의 화제성에 도리어 스타들이 숟가락을 얹어가야 할 판국이다. 요즘 같아서는 허니버터칩을 먹는 무명의 연예인들도 스타가 될 수 있을 정도다. 과자에 얽힌 이같은 일련의 풍경들은 실소를 유발하지만 모두 사실이다. 한낱 감자과자가 대한민국 트렌드의 중심에 섰다.

 

봉지를 뜯으면 달콤하면서 짭쪼롬한 시즈닝의 향기가 후각을 자극한다. 평범한 감자칩처럼 상아색을 띠며 얇고 가벼운 자태를 자랑하는 허니버터칩의 반전은 물론 '맛'에 있다. 감자는 대개 소금 등의 염분, 공장 나트륨과 결합한 것이 일반적이지만 허니버터칩은 이러한 우리들의 미각 학습 효과를 뒤집는다. 감자에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달콤한 자극을 씌워버린 것. 

공식적으로 국내 대기업이 달콤한 감자튀김을 시중에 도입한 것은 최초다. 그런 점에서 허니버터칩은 "새로움이 곧 '간지'"라고 여기는 젊은 층에게 기세 좋은 스피드와 자신감으로 어필한 구석이 있다. 실제로 제조사 해태제과는 해당 과자의 출시 단계부터 SNS 마케팅 체험단 포스팅 등을 활용해 허니버터칩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에 주력했다. 중독적인 시즈닝의 맛에 더해, 온라인 세대이기도 한 오늘날의 젊은층은 허니버터칩을 금세 인터넷의 '뜨거운 감자'로 승격시켰다.

자연스럽게 허니버터칩의 '품귀' 현상이 나타났다. 입소문이 야기한 무서운 결과론이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과자, 내 꺼인 듯 내 꺼 아닌 내 꺼 같은 허니버터칩이 온 국민과 '썸'을 벌인다. 온라인 중고사이트에서는 허니버터칩 실제 가격에서 3~4배 뻥튀기된 5000원가량의 고가로 해당 제품을 재판매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광풍의 기저에는 물론 군중의 소비심리가 제대로 작용했다. 남들이 맛있게 먹었다면 나도 안 먹어볼 수가 없는 게 사람 심리다. 너도 나도 동네 슈퍼나 편의점을 이 잡듯이 뒤지는 이러한 소비 대란의 저변에는 오기가 내포돼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씁쓸하게도 허니버터칩을 한 봉지라도 손에 넣어보려는 경쟁 열풍은, 자본주의 사회 구성원들이 삶을 영위하는 전쟁 같은 태도와도 절묘하게 직결된다. 마치 우리 아이에게 좋은 과외강사 한 명이라도 더 붙이려는 탐욕스러운 사교육 광풍과 마찬가지다. '남들 다 하는데 나도 뒤처질 수 없다'는 생존본능이 과자 한 봉지를 사는 행위에도 반영되는 격이다.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지난 9월 28일 한강에서 대학생들이 독특한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들은 '질소과자'라는 별명이 붙은 국내 봉지 과자들을 수 백 개가량 테이프로 이어붙여 비닐을 씌운 '질소과자 배'를 탄생시켰다. 배를 탄 대학생들이 한강을 횡단했고 이는 물론 소비자를 기만해온 국내 대기업들의 과대포장 행태를 향한 풍자였다.

대학생이란 의미심장한 계층이다. 생계를 꾸리는 사회에 입문했지만 수중에 돈은 별로 없는, 자본주의 시대의 상징적 서민 같은 존재다. 이들이 자본주의의 정점에 선 대기업 앞에서 아이디어로 무장한 퍼포먼스를 벌인 것은, 결과적으로 다수의 프롤레탈리아와 소수의 부르주아 사이의 대립항적인 사회 풍경을 드러낸 일이다. 즉 최근 대한민국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강타했던 질소 과자 사건은 노동계급들의 2014년형 '시위'에 가까웠다는 말이다.

실제로 오늘날 편의점 도시락이나 과자 등 공장제 인스턴트 식품들을 소비하는 주구매층을 생각해보자. 현대사회에서 돈이 많고 좋은 교육을 받은 이들일수록 건강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고 그들은 대개 '웰빙(Well-being)'을 지향한다. 그에 반해 서민들의 식품 선택권은 좁고 품질이 떨어진다. 허니버터칩보다 비싸고 희귀한 것은 사실상 자연의 식량이 맞다. 결국 서민들이 그나마 손쉽게 경쟁 구도를 벌일 수 있는 시장은 한낱 과자시장, 즉 공장제 제품이 산처럼 쌓인 대형마트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허니버터칩을 향한 소비자들의 대란과 대학생들의 과자배 퍼포먼스는 단순히 웃고 넘길 에피소드만은 아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대기업들은 소비자들의 눈을 교묘하게 속일 것이며 과자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를 전망이다. 한낱 과자 한 봉지에도 이렇듯 자본주의의 스산한 본질이 서려 있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믿고 먹어야 할까. 허니버터칩의 시즈닝은 달콤하지만, 이내 부대끼고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것은 그래서인가 보다.

사진=해태제과, 소이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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