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이승진 기자 = 정상회담마다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던 방송사들은 7일 있었던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똑같은 행태를 보였다. 회담 직후 있었던 “북핵·미사일 도발에 대해 한미일 3국이 강력하게 공조해 잘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는 청와대의 자평을 그대로 받아 쓴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7일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는 한일 양국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라며 한러, 한중, 한미 회담에 이어 재차 대북제재 공조를 강조했다. 아베 총리 역시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며 화답했다.

하지만 이번 회담에서 정작 중요한 문제는 4강 정상회담마다 반복한 ‘대북제재’가 아니라 위안부 문제였다. 박 대통령은 한·일 정부 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를 ‘양국관계의 긍정적 모멘텀’이라고 평가하면서 “한·일 양국 국민들의 상호 인식이 점차 우호적으로 나아지고 있어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아베 총리는 “화해·치유재단’에 10억엔 송금을 ‘완료’했다”고 강조하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불가역적 해결됐음을 못 박았다.

심지어 “(한국) 정부에서도 소녀상의 문제를 포함해, 계속 합의의 착실한 실시를 위한 노력을 부탁한다”며 소녀상 철거까지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해자인 일본이 피해자인 한국에 의무 이행을 압박하는 초유의 상황이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다.

방송사 모두 ‘협력’과 ‘공조’를 부각한 제목 뽑기

 

한-일 정상회담을 보도하는 방송사들의 태도는 이번에도 참담한 수준이다. 보도가 없었던 채널A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방송사가 정상회담 보도의 제목을 ‘협력’과 ‘공조’로 뽑았으며 내용 역시 청와대의 브리핑 자료를 그대로 보도한 수준에 그쳤다. 방송사들은 한·일 정상 간에 있었던 위안부 문제에 침묵했을 뿐 아니라 4강 정상회담에서 현실화된국제적 사드 갈등도 은폐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의 가장 큰 문제는 단연 아베 총리의 ‘위안부 소녀상 철거’ 언급이다. 그동안 정부는 ‘소녀상 철거’ 조건이 한일 위안부 합의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설명해왔다. 동시에 위안부 소녀상은 민간소관이기 때문에 정부는 철거와 관계없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7일 정상회담 자리에서 “화해·치유재단에 10억 엔 송금을 완료했다”며 일본의 합의 이행을 주장했고 이어 “소녀상의 문제를 포함해 착실한 실시를 위한 노력을 부탁드리고 싶다”며 한국의 소녀상 철거 이행을 공개적으로 청원했다. 기존 정부의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일본의 ‘억지 주장’이라면 그 자리에서 반박하면 됐을 일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위안부)합의 이행은 중요하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회담 자리에 동석했던 하기우다 고이치 일본 관방 부장관은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소녀상의 사항을 포함한 대답이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일본 언론에 밝히기도 해 논란이 예상된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野 3당은 현안 브리핑에서 열고 작년 12월 있었던 위안부 합의안에 소녀상 철거라는 ‘이면계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런 중대한 내용을 전혀 브리핑하지 않았다. 한·일 회담 직후 개시된 청와대 브리핑에서는 “12·28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를 계기로 양국 관계에 긍정적 모멘텀이 형성된 만큼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라고 한·일 관계의 긍정적인 전망을 평했을 뿐 소녀상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베 총리의 발언에 대해서는 일절 침묵했다.

위안부 문제의 전적인 가해자인 일본이 오히려 ‘10억 엔을 줬으니 소녀상을 철거하라’라는 적반하장 식 여론전을 펼치면서 피해자인 한국을 압박하는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소녀상 철거 사실을 은폐하려 한 것이다. 심지어 청와대는 사실 확인을 요구하는 기자들의 요청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청와대의 ‘불편한 침묵’은 방송 보도로 고스란히 반영됐다. 7일 한-일 정상회담을 보도한 9개 방송사의 보도 중 소녀상 철거에 대한 아베 총리의 발언을 보도한 방송사는 단 한 곳도 없다. 위안부 합의 문제를 언급한 방송사 역시 SBS와 TV조선, MBN뿐이다.

나머지 방송사는 한·일 정상회담 보도에서 위안부 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나마도 TV조선과 MBN의 보도는 “5개월 만에 만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북핵에 대한 공동 대응 방침을 확인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협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행을 계기로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발전시키자는 평가” 등 청와대의 브리핑 수준의 내용을 간단히 보도했을 뿐이다. 일본의 소녀상 철거 압박을 은폐한 청와대도 문제지만 그런 청와대 입장을 그대로 ‘받아 쓴’ 보도 역시 문제다.

심지어 SBS는 <한일 정상회담‥"北 위협 대응 협력">에서 “양국정상은 지난해 말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에 한일 관계가 개선되고 있어 협력의 토대가 생긴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라며 타사 보도에는 나오지 않은 ‘긍정적 평가’까지 언급했다.

민언련은 논평에서 “TV조선과 MBN이 청와대 브리핑을 그대로 받아쓴 반면, SBS는 자체적인 해석을 달면서 위안부 합의를 ‘긍정 평가’한 청와대 입장을 더 강조한 것”이라며 “악의적인 보도가 아닐 수 없다.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부정하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국민의 목소리를 감안한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보도”라고 비판했다.

민언련은 “일본 정부는 화해·치유재단에 송금한 10억 엔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사업 지출’일 뿐 배상금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어 아베 총리는 정상회담 자리에서 ‘소녀상 문제를 포함한 합의를 이행하기 바란다’고 말했다”며 “‘굴욕 합의’에 이은 ‘굴욕 외교’가 벌어졌고, 정부는 나아가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를 비판하고 진실을 보도해야 할 방송사들을 모두 불편한 침묵에 빠졌다”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베 총리 앞에서 말했던 ‘합의 이행은 중요하다’는 발언을 해명하고 12·28 위안부 문제 합의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글 도움말 = 민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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