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퀘스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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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이규창 경제에디터] 정부가 경제 활력을 높이겠다며 재정 조기 집행에 집중하고 있고,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금리인하 카드를 만지작대고 있다.

언론은 금리인하가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그 시기를 놓고 갖가지 전망과 해설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또, 기업은 성장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풀어야 한다며 협회, 연구소, 언론을 통해 아우성이다.

정부가 재정을 조기에 집행하고 많은 규제를 풀며 한은이 금리를 한 차례가 아닌 여러 차례 인하하면, 경제가 과연 활력을 되찾고 낙수효과든 분배든 기업과 가계 살림이 과거보다 훨씬 나아질까.

먼저 금리를 살펴보자.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광풍이 몰아친 후 전 세계는 금리를 낮춰 경제를 살리려고 했다.

이 역사적인 저금리 시대는 10년이 지난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각종 통화지표를 봐도 우리나라뿐만 아니고 전 세계가 유동성 과잉 상태에 놓여 있다. 때마침 중국에 이어 인도, 동남아 국가들이 디플레이션을 ‘수출’하고 있는 덕분에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안정적인 물가 지표에 자신감이 붙은 선진국은 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끌고 가는 중이다.

하지만, 10년 지옥을 경험한 일본 등 극소수 국가를 제외하고 각국의 경제성장률은 신통치 않다. 넘쳐나는 시중 유동성은 지대(地代)만 잔뜩 올렸지 실물 경제를 화끈하게 자극시키지 못했다.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의 통화유통속도(일정기간 한 국가경제에서 생산되는 모든 재화 및 서비스 거래의 통화 한 단위가 사용된 횟수)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것도 그 하나의 증거다.

돈이 제대로 돌지 않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도 장사해서 번 돈을 투자하지 않고 곳간에 쟁여두고 있다. 사상 최대의 유보금이라는 뉴스 제목이 이 뜻이다.

따라서 금리인하 카드는 간신히 잡아놓은 주택 등 부동산 가격만 높일 가능성이 크다. 낮은 금리의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미분양이 점차 해소되면 건설 경기의 파급력을 놓고 볼 때 경제가 활성화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금리인하 전에도 금리 수준은 충분히 낮다는 점에서 효과는 의심스럽다. 만약 금리인하가 그 효과든 기대심리든 부동산 가격을 다시 자극하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대기업처럼 쌓아둘 유보금 여유조차 없는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금리 수준과 관계없이 애초에 대출을 받지 못하거나 금리 부담 때문에 대출 엄두를 내지 못하는 중소기업은 금리를 인하해도 마찬가지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재정 조기 집행이나 추경 편성도 성장률 수치를 반짝, 그리고 약간 높일 수는 있지만 과거 경험으로 볼 때 경제를 지속적이고 극적으로 되살리기 어렵다. 정부가 미래 먹거리에도 투자를 하고 있지만, 사실 기존 굴뚝 산업에 땜질식 지원이 더 많다.

정부 예산 집행처는 온갖 지역 민원의 산물이라고 불린지 오래다. 결국, 집행된 예산은 몇몇 굴뚝 기업이 얼마씩 갈라먹으면서 짧은 수명을 다하게 된다.

대기업과 언론이 주장하는 규제 해소는 분명 필요하다. 적잖은 규제가 부처의 밥그릇 때문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규제가 나쁘다는 시각은 잘못됐다. 대기업이 그동안 법의 허점을 이용해 하청업체를 착취하거나 대기업 스스로 탈법, 위법을 저지른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또, 과거 닷컴 버블에서 경험했듯이 느슨한 규제는 더 큰 경제, 금융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섣부른 규제 해소는 경제 집중을 심화시키고 빈부격차를 확대시키며 나아가 경제 전체에 충격을 가져다준다.

[그래픽=뉴스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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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방향이 문제다. 여기서 말하는 방향은 정부와 기업, 가계가 어느 곳에 집중해야 하느냐의 문제다.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경제 불황이라는 문제에 압도되면서 한 때 모든 논의의 중심이었던 4차 산업혁명에서 눈을 떼는 분위기다.

택시 산업을 놓고 벌어지는 갈등은 미래 산업 구조의 변화의 아주 작은 부분인데, 정부는 여기저기 눈치를 보고 있다. 정부는 물론, 국회에서도 아무도 감히 기존 산업 구조의 변화와 반드시 수반되는 구조조정을 제대로 언급하지 못하고 있다.

구조조정이라는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과거처럼 정부가 빅딜을 통해 일방적이고 급하게 산업 구조를 바꾸자는 게 아니다.

정부가 방향을 명확히 정하고 판을 깔아주면 산업 구조조정은 저절로 이뤄진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 예산을 집중하면 기업과 인재는 따라오게 마련이다.

자금의 여유가 있는 대기업은 유보금도 써가며 선점하려고 할 것이고 흐름을 읽은 중소기업은 정부의 예산 지원 하에 체질을 바꿀 것이다. 이런 선순환 틀이 만들어지면 정부는 고용 창출 효과가 과거 굴뚝산업보다 떨어지는 미래 신산업을 어떻게 다양하게 펼칠 것인가를 고민하면 된다.

무엇보다 시대에 뒤처지고 사양길로 접어든 산업이나 기업에 말 그대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공무원이 큰 틀의 방향에 맞게 예산을 집행했다면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풍토도 조성해야 한다.

때만 되면 은행 등에 요구하는 ‘중소기업 금융지원 확대’라는 두루뭉술한 말의 성찬보다는 정부가, 때로는 정부와 대기업이 우리 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보이고 밀어붙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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