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로부스타의 편견을 벗겨내다

달랏의 커피농장과 카페. [사진=석태문 선임연구위원]
달랏의 커피농장과 카페. [사진=석태문 선임연구위원]

【뉴스퀘스트=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베트남은 로부스타 커피의 성지이다.

베트남 사람들이 만든 독특한 커피 문화가 로부스타 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아라비카가 커피계의 절대 강자라면 로부스타는 신흥세력이다.

서양 사람들은 로부스타를 불에 탄 타이어(burnt tires) 같다거나, 고무(rubber) 씹는 맛이라고 혹평한다.

스타벅스(Starbucks)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감히 로부스타를 마실 수 없을 것이라고 몰아붙인다.

가까운 미래에 경쟁자로 부상할지도 모를 로부스타를 아라비카 추종자들이 사전 기선 제압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로부스타 커피로 앵글을 조금 돌려 보자. 로부스타는 ‘튼튼한’, ‘건장한’이란 뜻을 가진 로부스트(robust) 단어를 연상시킨다. 실제로 로부스타 커피는 곤충, 질병 저항성이 매우 크다.

카페인 함량이 높아 해충에게는 유독성 물질로 느껴지니, 해충들이 로부스타를 공격하기가 어렵다. 농약이나 비료 등 화학제 투입량이 아라비카에 비해 훨씬 적은 이유이다.

인위적 품종개발도 많지 않아 자연적 특성이 많다. 재배관리기술이 까다롭지 않다. 재배지역도 700m 이하의 저지대는 어디든 잘 자란다.

아라비카가 해발 900~2000m의 고지대만 고집하며, 재배 확장성에 한계가 있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로부스타의 품질은 어떨까? 커피 맛의 원천은 카페인이다. 카페인 함량이 높은 로부스타가 좀 더 커피답지 않을까?

그럼에도 로부스타의 지방, 설탕 함량은 아라비카의 60%에 불과하다. ‘부드럽고 달콤하여 목넘김이 좋다’(mellow and easy drinking)고 평가하는 마니아는 로부스타의 저지방, 저설탕 함량을 애찬한다. 아라비카 추종자들은 이런 평가를 애써 무시하지만.

필자는 커피 품종의 자연적 우월 여부는 관심이 없다.

고유한 품종 특성에 맞는 커피문화에 관심을 가질 뿐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로부스타의 특성에 맞추어 로부스타 커피문화를 만들었다. 드립커피(drip coffee)는 로부스타 커피문화를 대변하는 가장 베트남다운 커피이다.

커피는 원두를 볶고(roasting), 분쇄하고(grinding), 추출하는(drip, brewing) 과정을 통해 맛과 향미가 결정된다. 로부스타 품종의 브루잉(brewing) 과정은 가장 베트남다운 커피, 가장 베트남다운 커피문화가 만들어지도록 하였다.

카페인 함량이 높아 맛이 강한 로부스타 커피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베트남 사람들은 알루미늄으로 만든 드립용 필터(aluminium drip filter)를 사용했다.

우리 돈 1~2만원하는 분쇄커피(grind coffee) 1봉지를 사면 그 안에 드립용 필터가 들어 있다. 집에서든 카페에서든 드립커피를 쉽게 마실 수 있는 것이다.

드립커피는 강하면서도 부드럽다. 그 맛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로부스타는 본래 강한 맛(strong taste)을 가지고 있다, 강한 특성을 유지하기 위해 로스팅도 약간 세게(over roasting)한다. 여기에 브루잉(brewing)까지 진하게 한다. 아라비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맛을 가진 커피가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내린 강한 커피에 연유(condensed milk)를 섞고, 얼음(ice)을 넣어 중화시킨다. 커피(ca phe)에 연유(sua)를 넣어 강한 맛을 부드럽게 하고, 얼음(da)을 넣어 더운 날씨를 견디도록 한 ‘카페스다’(ca phe sua da) 커피가 등장한 것이다.

카페스다를 만든 베트남 사람들은 ‘이 컵 하나에, 모든 것, 심지어 물까지 농축되어 있다‘고 표현한다.

느리고 긴 내림과정을 거치는 드립커피를 마시면서 그들의 대화는 시작되고, 커피와 함께 즐기고 휴식하는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필터를 타고 천천히 내려오는 커피를 보면서 느긋하게 휴식하며, 대화를 즐기는 것이다.

지난 5월 하노이 출장을 갔을 때 그곳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 친구를 만났다.

그는 베트남 커피에 관심이 많아 한창 커피공부에 열중하던 중이었다. 호안끼엠 호수 주변의 올드타운에는 오래된 전통 카페가 많았다. 저녁시간에 친구와 함께 카페투어에 나섰다.

그 중 한곳이 1946년에 오픈하여 74년의 역사를 카페 지앙(Cafe Giang)이다. 달걀과 요구르트를 넣어 만든 커피로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크림 설탕을 넣거나, 휘핑크림, 헤이즐넛 시럽을 넣은 커피도 있고, 치즈나 버트를 넣은 커피도 있었다.

로부스타의 강한 특성은 살리면서 부드러운 맛을 가미한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베트남의 카페 문화는 드립커피로 인해 느리고, 여유가 넘치며, 달달하기까지 하다.

베트남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그 묘미를 잊지 못하고 찾는 이유이자, 베트남 시장에서 이방 브랜드가 고전하는 까닭일 것이다.

달랏, 베트남의 아라비카 명산지 그리고 위즐

베트남의 커피사에서 로부스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지만, 아라비카 커피의 독특한 자취도 무시할 수 없다.

아라비카 커피는 베트남에서 재배면적은 6%, 생산량은 4%를 차지한다. 남부 고원지대인 람동성(Lam Dong)과 북부 고원지대인 디엔비엔-손라성(Dien Bien-Son La)이 아라비카 커피의 주산지이다.

람동성은 베트남의 커피생산 2위 지역이자, 아라비카 커피 생산량 1위 지역이다. 특히 달랏시(Da Lat)는 해발 1500m 고원지대로 아라비카 커피 생산의 최적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전원의 고원지대에 자리한 달랏은 베트남 커피를 최초로 생산에서 소비까지 원스톱 체계를 확립한 지역이다.

커피농장과 레스토랑, 카페를 겸한 메린커피가든(Me Linh Coffee & Farm)은 산허리와 언덕, 주변이 모두 커피농장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아직 외국인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인지 대규모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이 많이 찾아왔다. 커피농장 위로 구름다리를 설치하고 레스토랑과 카페, 전망대를 연결하여 전원의 여유와 낭만이 넘치는 곳이었다.

베트남 커피의 품질은 위즐커피(Weasle coffee)가 대변한다. 족제비가 커피 체리를 먹고 배설한 것이 위즐콩이다.

위즐케이지의 위즐(족제비). [사진=석태문 선임연구위원]
위즐케이지의 위즐(족제비). [사진=석태문 선임연구위원]

홍보용으로 전시해둔 족제비 똥콩이 대바구니에 펼쳐져 있었다. 달랏의 위즐커피 생산농장에는 족제비 사육장(Weasle cages)도 있다. 레스토랑 1층의 커피농장 옆에 마련된 사육장에는 십여 마리의 족제비가 작은 사육장에 한 마리씩 들어있다. 잠자는 녀석들이 태반이고, 겨우 한 녀석이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본다.

커피 체리를 먹는 족제비는 보지 못했다.

2층 레스토랑과 카페에서 판매되는 위즐콩의 량에 비해 십 수 마리의 위즐(족제비)들이 생산하는 똥콩이 과연 얼마나 될까, 똥콩이 가진 맛, 향미는 일반 원두와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사람의 욕심이 무엇이기에 죄 없는 족제비가 사육장에 갇혀 커피 체리를 먹어야 하는 것일까?

나를 쳐다보는 족제비는 나의 그런 맘을 알고 '날 여기서 보내줘'라고 호소하였을지도 모른다.

베트남에는 또 하나의 동물 똥커피 브랜드, 콘삭커피(Con Soc)가 있다.

귀여운 다람쥐 이미지가 풍기는 브랜드로 인해 소비자들은 이를 위즐커피로 착각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콘삭커피는 일반 원두로 만들어 다람쥐 배설콩과는 무관하다. 설치류인 다람쥐가 커피 체리를 먹으면 어떻게 될까?

강한 이빨을 가진 다람쥐는 커피 체리를 충분히 갈고 쪼개 먹을 수 있다. 분해되지 않은 채 배설되는 커피콩을 얻을 수가 없다. 족제비 똥콩은 가능해도 다람쥐 똥콩은 가능하지 않은 이유이다.

동물이 커피 체리를 먹고 싼 똥으로 만든 커피는 더 있다. 인도네시아 자바에는 사향고양이가 커피 체리를 먹고 배설한 콩으로 만든 코피루왁(Kopi Luwak)이 있다.

인도와 태국에는 코끼리가 커피 체리를 먹고 배설한 똥콩으로 만든 아이보리 커피가 있다. 예멘에도 원숭이가 배설한 콩으로 만든 커피가 있다고 한다.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동물이 커피 체리를 먹고 배설한 똥 묻은 콩으로 만든 커피가 유명세를 떨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희소성이 유명세를 얻는 것은 수요공급 법칙이니 당연하다. 문제는 그만한 대가를 지불한 만큼 맛과 향미가 일반커피와 비교할 때 차별적인가 하는 점이다.

희소성으로 포장된 인간의 탐욕이 애꿎은 족제비, 사향고양이만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달랏 시내에서 만난 아라비카 커피 수확 및 가공체험 카페·레스토랑인 라비타 커피(La Viet Coffee)의 솔직함이 마음에 든다.

아라비카 커피 전문 판매점도 겸하는 라비타 커피는 위즐커피를 생산도 판매도 하지 않는다. 카페에서 체험활동을 진행하는 전문가도 아라비카 위즐커피와 아라비카 일반커피의 차이를 모른다고 했다.

인도네시아 코피루왁의 사례이지만 전 세계에서 자연산 사향고양이가 배설한 똥콩을 1년간 수집해서 얻을 수 있는 총량이 겨우 1000kg에 불과하다. 족제비, 사향고양이 똥콩의 브랜드에 취해 동물 학대를 자행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과 자연, 동물이 공존하는 친환경유기농커피 브랜드로 소비자의 심성을 자극하는 것이 더 나은 마케팅이 아닐까.

마무리 – 공정무역, 지속가능한 커피산업을 위하여

미국과의 전쟁으로 중단된 베트남의 커피 경제는 1986년 도이모이 정책으로 재가동되었다.

전쟁 이전 커피산업의 높은 부가가치를 경험하였던 농민들은 커피 경작에 매달렸다. 중부 고원지대를 중심으로 커피농장이 발달한 지역에는 엄청난 노동력 부족을 겪었다.

전국에서 약 400~500만의 노동력이 대거 주산지로 이주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전쟁을 마친 베트남이 커피 경제를 재개한 뒤, 짧은 기간에 전 세계 2위 커피생산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국내·외에서 베트남 커피는 열풍이지만, 생산의 주체인 커피 재배 농민이 얼마나 수혜를 입었는지는 모르겠다. 커피 가격은 매년 요동쳤다.

가격이 하락하면 농민들은 식사량을 줄였고, 자녀들은 휴학으로 대응했다. 커피 가격이 회복하면 자녀들은 다시 학교로 갔고, TV 등 가전제품을 구입할 정도였다고 한다.

달랏시내의 아라비카 커비전문점, 라비엣. [사진=석태문 선임연구위원]
달랏시내의 아라비카 커비전문점, 라비엣. [사진=석태문 선임연구위원]

커피 경제가 농가 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핵심 소득원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가격파동으로 커피재배 농가의 경제를 위협하는 현실은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

다민족 국가 베트남에서 민족별로 느끼는 커피 경제의 실상도 차이가 많다. 인구의 85% 이상을 점하는 낀(Kinh)족은 다수의 소수민족 보다 재배면적과 생산농가가 많지 않지만, 얻는 소득에서 소수민족보다 우위를 누리고 있다. 커피 경제의 민족 간 사회적 불평등이다.

커피 경제 활성화로 대규모 노동력의 산지 이동현상을 낳았다. 커피생산 부적지에도 무리하게 커피농장을 만들었다.

커피 생산이 계속 확대되자, 커피 농장과 주변은 적지 않은 환경 문제가 일어났다. 무분별한 산림 벌채, 커피 단작경영으로 생물다양성 훼손도 엄청났다. 베트남의 커피산업에 가한 환경적 반작용을 극복할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베트남 정부는 2010년 ‘농업의 새 비전(’New Vision for Agriculture) 10년 계획을 수립하였다. “지속가능한 대규모 농업생산성, 품질경쟁력 향상”이란 두 가지 목표를 제시하였다.

베트남의 커피산업은 농업분야에서 최고의 수출전략분야이다. 생산한 커피의 85% 이상을 수출하고 있다. 로부스타 커피 최고 생산국이자, 전 세계 커피 생산량 2위의 대국이다.

무리한 커피 작물 단작화 폐해를 경험한 뒤 베트남은 생태농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최근에는 한 단계 더 진화된 공정무역커피를 인증받기 위해 노력 중이다. 공정무역커피를 만들려면 생산자와 소비자의 협력이 필요하다.

생산자 농민은 소비자의 안전을 고려해야 하고,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책임지는 상생이 필요하다.

베트남 커피는 현재 춘추전국 시대이다.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동물 학대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며, 생산과 소비가 유기적으로 연결해야 한다.

베트남의 커피 경제가 지속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는 정지작업을 구축해야 한다. 친환경유기브랜드 권장,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커피산업 육성을 위한 소비자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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