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괴물' 물리치려면 국가간 민관협력 필요...모두 '영웅'이 되어야 할 때

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대구 주한미군 기지 내 캠프워커 마트를 방문한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사진=연합뉴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대구 주한미군 기지 내 캠프워커 마트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선태 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5일(현지시각) 영국 BBC에 출연해 한국에서 코로나19 환자가 극적으로 감소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진행자가 한국의 바이러스 검사 속도에 놀라움을 표하자 강 장관은 “대규모 검사는 조기 진단으로 확산을 최소화하며 확진자를 신속히 치료하도록 돕는다”고 답했다.

강 장관은 그것이 “한국에서 코로나19 치사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라고 보충 설명했다.

강 장관은 이에 더해 “한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원칙은 솔직함과 투명성, 대중에 대한 완전한 정보 공개”라며 “여기에 좋은 의료서비스와 긴밀한 공조 시스템 등이 뒷받침되어 그 효과를 높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16일 로버트 에이브럼스(Robert Abrams) 주한미군사령관이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와 함께 하는 한국의 질병관리본부가 얼마나 대단한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고 적었다.

그는 “(질본이)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협력적”일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지치지 않고 더 강해지는 중”이라고 썼다.

중국 역시 한국의 대응 방식에 관심을 표하고 있다.

16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한국이 중국 같은 봉쇄 조치 없이도 ‘단계적 승리’를 거두는 이유는 정부의 강력한 예방통제 조치와 국민의 협조 덕분”이라고 썼다.

중국 정부가 군대를 동원한 지역 봉쇄나 대대적인 국가 의료진 파견 조치를 취한 것과 대비된다는 것이다.

중국사회과학원 아태·세계전략연구원의 왕쥔성(王俊生) 연구원은 그 차이를 구체화하여 ▲한국 정부가 신천지 종교교단을 엄격하게 통제 조치하면서 전국적 자원을 대구·경북에 투입한 점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외출을 자제하고 대형 이벤트를 피하며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며 협조한 점 ▲하루 2만여 명을 검사해내는 능력과 잠재적 감염자를 추적할 수 있는 최고의 시스템을 들었다.

글로벌타임스는 “이는 한국 정부가 조기에 강력한 예방조치를 취한 때문“이라며 “이미 광범위한 지역으로 감염이 확산된 유럽은 중국 같은 엄격한 봉쇄 조치를 도입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과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 공통된 코로나19 대응 방식은 무엇일까?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은 ‘과학 및 IT 기술력’과 ‘공동체에 대한 민관의 헌신’ 등으로 모아진다.

과학 기술은 한중 양국이 이번 코로나19 대응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한 수단이다.

이는 중국 공산당 이론지 구시(求是) 16일자에 실린 기고문에서 시진핑 주석이 “코로나19 저지전 승리를 위해 강한 과학기술 버팀목을 제공하자”고 주장한데서 잘 나타난다.

기고문에서 시 주석은 “인류가 감염병에 승리하려면 과학 발전과 기술 혁신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며 “연구개발을 한층 가속화하여 강력한 과학기술의 버팀목을 확보할 것“을 주문했다. 

13일 오후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 발열 감지 로봇이 배치되어 있다. 이를 포함한 의료지원 로봇 3종(음악병실 살균 로봇, 발열 감지 로봇, 의료폐기물 운송 로봇)은 한국로봇산업진흥원 등이 코로나19 종식 때까지 서울의료원에 무상 임대할 예정이다.[사진=연합뉴스]
13일 오후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 발열 감지 로봇이 배치되어 있다. 이를 포함한 의료지원 로봇 3종(음악병실 살균 로봇, 발열 감지 로봇, 의료폐기물 운송 로봇)은 한국로봇산업진흥원 등이 코로나19 종식 때까지 서울의료원에 무상 임대할 예정이다.[사진=연합뉴스]

한국, 민관협력으로 IT기술 제고

한국의 경우 감염병 검진의 일등 공신이 된 국내산 진단키트가 대표적인 버팀목이다.

초기에 중합효소연쇄반응(PCR) 검사를 통해 결과 확인에 1~2일이 소요되던 것이 지금은 실시간 중합효소연쇄반응법(RT-PCR) 진단키트를 이용해 6시간 이내로 줄였다.

의료 체계에서 산업 지원에 이르기까지 IT 기술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것도 양국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2월 중순 기업 회생을 돕기 위한 ‘10대 업무복귀 지침’ 발표했는데, 그 주요 내용이 IT 기술을 활용해 온라인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코로나19로 재택 업무와 온라인 거래가 폭증 추세를 보이자 중국 정부는 이를 뒷받침하는 IT 기술을 적극 후원했고 그로 인해 ‘자택 경제’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다만 한국의 경우는 국가 주도가 아니라 민간이 정부와 협력하는 방식이 주류를 이룬다는 점에서 대의제 민주주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 전형적인 사례로 코로나19 전담병원인 서울의료원이 민간에서 무상 임대한 의료지원 로봇으로 시민의 발열을 자동으로 감지하고 음압병실을 살균하게 된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발열감지로봇’과 의료폐기물 처리에 필요한 ‘운송로봇’ 등을 도입하고자 서울디지털재단이 나서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서울의료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해냈다.

지자체들도 같은 방식으로 코로나 방역에 IT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전주시는 한글과컴퓨터·네이버비즈니스플랫폼이 무상 지원한 인공지능(AI) 콜센터를 가동한다.

AI가 자가격리자에 직접 전화를 걸어 코로나19 바이러스 증상 여부를 체크하면 진단 속도를 높이고 인력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경기도 성남시에서는 네이버의 AI 플랫폼 ‘클로바’가 같은 역할을 수행중이다.

AI가 능동 감시자(지역보건소와 소통하는 자발적 격리자)와 상담한 결과는 보건소에 전달되어 방역에 활용된다.

민간 IT기술의 참여는 이밖에도 곳곳에서 확인된다.

한국공간정보통신은 자사 지리정보시스템(GIS)을 기반으로 확진자의 동선과 선별진료소 정보를 담은 종합상황 지도서비스를 제공한다.

"바이러스는 종교에 관용 베풀지 않아"

어찌하여 너희는 큰 소동을 일으켜서 너희 손으로 불행을 만들어 내기를 즐겨하는가. 죽음은 하늘을 나는 자신의 말을 끌고서 자신이 정한 속도로 다가오는데도 너희는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는구나.(‘철학의 위안’, 보에티우스, 현대지성, 213쪽)

종교개혁의 선구자 마르틴 루터(‘루터의 밧모섬’, 제임스 레스턴 저, 이른비출판사, 표지 일부)
성직자가 전염병 퇴치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한 마르틴 루터
(‘루터의 밧모섬’, 제임스 레스턴 저, 이른비출판사, 표지 일부)

한국의 경우 중국 이외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나라에 속하지만 그 대처가 빨라 대통령이 자신감을 드러낼 정도로 조기 방역이 점쳐졌다.

하지만 신천지 교인인 31번 확진자가 등장하면서 사태는 급변해 결국 대구-경북 지역의 광범위한 확진으로 이어졌다.

이로써 한국은 사교 집단 내부의 발병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방역망이 뚫린 흔치 않은 선례를 남겼다.

문제는 종교로 인해 전염병이 창궐한 경우가 역사적으로 흔히 반복되어 왔지만 인류가 그로부터 확고한 교훈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찍이 종교개혁의 선구자 마르틴 루터가 이 문제를 엄중히 경고했다.

루터가 대학원생이던 1505년 초에 흑사병이 창궐했는데, 당시 교회는 “믿음이 강한 사람은 떠나지 않으리라”는 성서의 말에 근거하여 성직자가 수도원을 떠나지 못하게 했고 그 결과 유럽은 일상이 마비될 정도로 참담한 피해를 입었다.

이에 1509년 갓 사제 서품을 받은 루터가 나서 “경솔하게 병에 노출되는 것은 일종의 자살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전염병은 나무와 장작 대신에 생명과 몸을 먹어치우는 불길”이라며 병을 옮기는데 무심한 성직자들을 질타했다.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그런 사람들이 눈에 띈다면 판사들은 계획적이고 노골적인 살인범으로 판결하여 형 집행인에게 당장 넘겨 사형에 처해야 한다.”(‘루터의 밧모섬’, 제임스 레스턴, 이른비, 172쪽)

오늘날 고의든 아니든 “다른 사람들에게 병을 옮기는 것에 신경 쓰지 않는” 신천지를 비롯한 일부 성직자와 교인들은 루터의 말처럼 종교적 관점에서도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한국 기업, 소소한 영웅이 될 때”

반면 자신을 희생하며 코로나19와 싸우는 이들이 도처에서 나타나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중국 우한시에서 신종 바이러스에 의한 폐렴을 알리고 의료 활동에 헌신하다 2월 7일 사망한 리원량(李文亮)은 세계인을 울린 경우다.

중국인들이 리원량을 애도하며 그를 영웅이라 부르기 시작하자 3월 5일 중국 당국이 그에게 ‘방역 모범 인물’이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우리의 경우 코로나19 대응이 거듭 성과를 내는데 질본 관계자와 방역 최전선에 선 의료진들, 구급대원과 경찰‧군인들의 기여가 크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군간호사관학교 60기 졸업생들이 예정된 임관식을 앞당겨 마친 뒤 곧장 대구로 향해 치료에 헌신하는 모습에 국민들은 영웅이라 부르며 감동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기초생활 수급자이면서 없는 돈을 아껴 7년 동안 부은 암보험을 중도해지해 환급받은 금액 118만7360원을 코로나19 성금으로 내놓은 강순동 씨(62)가 있다.

그 금액은 크지 않지만 그 행위는 영웅의 그것이라 불러 손색이 없다.

우리 사회가 재난에 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고,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 하며, 감사하고 기억할 줄 안다는 점을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 재난에 조력하는 기업에게서도 영웅의 모습은 찾을 수 있다.

연수원을 환자용 치료센터로 제공하거나 그룹사 의료진을 긴급 파견하는 기업들, 자사의 차량을 내놓고 방호복과 생필품을 내놓은 기업, 경영진이 앞장 선 가운데 임직원 단체 헌혈을 독려하는 기업들이 그렇다.

17일 오후 201 특공여단 장병들이 대구시 남구 봉덕동 앞산공영주차장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시내버스 내부 방역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7일 오후 201 특공여단 장병들이 대구시 남구 봉덕동 앞산공영주차장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시내버스 내부 방역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알베르 까뮈의 소설 ‘페스트’에는 많은 인물들이 중요한 역할을 맡아 영웅적 활약을 펼친다.

하지만 정작 작가는 일개 보건대 서기를 맡은 그랑을 두고 “보잘것없고 존재도 없는, 가진 것이라고는 약간의 선량한 마음과 아무리 봐도 우스꽝스럽기만 한 이상밖에는 없는 이 영웅을 여기에 제시하고자 한다”고 썼다.

영웅이란 어떤 존재일까? 신화학자 조셉 켐벨은 고대 영웅 신화의 단골인 ‘인간을 위협하는 용’을 들어 이를 설명한다.

즉 “용은 현상(Status Quo)이라는 괴물 바로 그것이니, 괴물은 쇠사슬 같은 과거의 옹호자이다.” 이제 그 용을 파멸로 몰아넣는 비밀을 아는 자가 출현하는데 그가 영웅이다.

캠벨에 따르면 “영웅의 기본적인 임무는, 괴물과 폭군을 퇴치하고 인간의 삶의 무대를 정화하는 것이다,”(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조셉 켐벨 저, 이윤기 역, 민음사 간, 423쪽)

국가 시스템이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때 사람들은 그것을 대체할 시스템을 찾는다.

WHO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하면서 지구상에 안전한 국가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 지금, 민간과 국가의 협력은 다른 어떤 수단보다 강한 방역 대책이 될 수 있다.

이때 민간은 개인으로도 이웃으로도 기업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그가 누구이건 아무리 소소한 역할을 맡건 그는 바이러스라는 용을 퇴치하고 우리 삶의 무대를 정화시킬 영웅이다. 지금이야말로 ‘소소한 영웅’이 필요한 때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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