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운평리 청간정 은행나무

대한민국에는 약 1만5000그루의 보호수가 있습니다.

마을에 오래 살아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한 나무입니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는 각자 스토리가 있습니다.

나무와 관련된 역사와 인물, 전설과 문화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문화콘텐츠입니다.

나무라는 자연유산을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킨 예입니다.

뉴스퀘스트는 경상북도와 협의하여 경상북도의 보호수 중 대표적인 300그루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연재합니다. 5월 3일부터 매주 5회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상주 운평리 청간정 은행나무는 옛 선비들이 정자의 운치를 돋우기 위해 심어 키운 나무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상주 운평리 청간정 은행나무는 의암고택에서 300m쯤 떨어진 곳에 놓인 청간정(聽澗亭)이라는 이름의 정자 곁에 있다.

청간정 건축물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높이 솟아올라서 아담한 청간정 위로 나뭇가지를 드리운 은행나무다.

청간정은 1650년 즈음에 마을 입향조인 조정의 후손인 가곡(柯谷) 조예(趙秇:1608~1661)가 지은 정자다.

운곡마을 형성 초기에 지은 정자로,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청간정 앞 골목길이 비좁아서 문 앞에서는 축대 위에 있는 청간정을 올려다보게 된다.

청간정의 건축주인 조예의 아들로 원윤, 진윤 형제가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조선 후기의 서예가이자 사상가인 미수(眉叟) 허목(許穆)의 제자였다고 한다.

그 인연으로 원윤과 진윤은 허목으로부터 청간정의 현판을 받아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청간정(聽澗亭)’과 ‘익암서당(益巖書堂)’이라 편액의 글씨가 허목의 글씨와 차이가 있어 편액은 제외하고, 청간정만 문화재자료로 지정됐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청간정을 지은 조예는 곧바로 정자 곁에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그 뒤로 운곡마을의 선비들은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청간정을 후손의 교육장으로 쓰기도 했고, 영남 지역의 여러 유학자와 함께 모여 시국을 논하기도 했으며, 때때로 시를 짓고 낭독하는 모임 장소로도 활용했다.

청간정 곁에는 은행나무가 두 그루 있다.

그러나 그 두 그루가 같은 시기에 심어 키운 나무로 보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조예가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었다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한 그루는 이미 오래전에 수명을 마치고, 그 곁에서 다른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자란 것으로 보아야 한다.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도 한 그루뿐이다. 

보호수 기록에는 운평리 청간정 은행나무의 수령이 536년으로 기록돼 있다.

청간정을 지은 때가 1650년이니 계산이 맞지 않는다.

청간정을 짓고 건축주 조예가 은행나무를 심은 게 맞는다면 은행나무의 나이는 370년쯤이어야 한다.

보호수 기록과는 150년 이상의 차이가 생긴다.

그러나 536년의 수령이 맞는다면 대략 1400년대 후반에 처음 뿌리내린 나무여야 한다.

536년의 수령이 맞는다면 이 나무는 청간정을 세울 때 이미 큰 나무였을 것이다.

정확한 기록을 확인할 수 없어 어느 쪽이 맞는지 알 수 없지만, 풍광이 좋은 자리를 골라 정자를 세우기도 했던 옛사람들의 관습을 떠올리면, 이미 150년쯤 된 큰 은행나무 곁에 청간정을 세웠을 가능성도 있다.

풍양조씨 호군공파의 중시조인 조사충이 이곳에 마을을 일으킨 때가 14세기 후반 무렵이니, 그때 누군가가 이 자리에 은행나무를 심어 키웠고, 나무가 잘 자라자 그 곁에 정자를 세운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운평리는 ‘운곡(雲谷)마을’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아침이면 구름처럼 안개가 자욱하게 밀려오는 골짜기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운평리에는 풍양조씨의 역사를 담고 있는 문화재가 여럿 있다.

운곡마을에 남아있는 문화재로는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53호로 지정된 의암고택을 비롯해 송동재(松東齋), 경모재(敬慕齋), 만송재(晩松齋) 등의 재실(齋室), 유신당(維新堂), 양교당(養敎堂), 경신당(敬愼堂) 등의 고택이 여전히 옛사람들의 향기를 담고 남아있다.

운평리는 공동우물, 막돌 담장, 초가, 서낭당 등 옛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전통 마을이기도 하다.

이곳에 처음으로 마을을 일으킨 입향조는 조선 시대의 문신인 검간(黔澗) 조정(趙挺)으로 알려졌는데, 그는 안동에 있던 처가 문중의 아흔아홉 칸 집을 이곳 운곡마을로 옮겨와 지었다.

그 살림집이 지금 보물 제1568호로 지정된 양진당(養眞堂)이다. 풍양조씨 세거지(世居地)의 중심이랄 수 있는 양진당에서 개울을 따라 3km 정도 언덕을 오르면 한적한 운곡마을 한가운데에서 조선 후기의 건물인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53호, 의암고택(依巖古宅)을 만나게 된다.

의암고택은 1800년쯤에 현재의 소유주인 조준희(趙浚熙)의 7대 조모인 모임당(慕任堂) 연안이씨(延安李氏)가 지은 건물로 알려져 있다.

의암이라는 당호는 조준희의 고조부인 의암(依巖) 조범구(趙範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붙였다고 한다.

의암 조범구는 병인양요 때 상주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킨 유학자로 인근에서 추앙받은 인물이다.

운평리 청간정 은행나무는 한 가문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유서 깊은 나무다.

<상주 운평리 청간정 은행나무>

·보호수 지정 번호 11-24-4
·보호수 지정 일자 1982. 10. 26.
·나무 종류 은행나무
·나이 500년
·나무 높이 15m
·둘레 3.5m
·소재지 상주시 낙동면 운평리 153
·위도 36.377749, 경도 128.09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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