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일과 3일 남부지방산림청(청장:조병철)과 사회적협동조합 모천이 함께 주관한 ‘산불 피해 현장 답사’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에는 시인 이하석, 송재학, 송찬호, 안도현, 안상학, 장석남, 손택수, 김성규와 소설가 황현진, 이주란 등이 참가했다.

본지 하응백 문화에디터도 동참했다.

3회 원고로 소설가 이주란의 원고를 게재한다.

이주란은 2012년 <세계의 문학> 소설 당선로 등단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작품집으로『모두 다른 아버지』, 『한 사람을 위한 마음』등이 있다. /편집자주

안동 산불 피해 현장
안동 산불 피해 현장

나무꾼은 아버지에게서 배웠어.

오직 사람만이 숲을 사라지게 한다는 것을.

로시오 마르티네스 『나무는 숲을 기억해요』중에서

【뉴스퀘스트=이주란 소설가】 여기저기 가을 단풍이 서서히 물들기 시작할 무렵이었으나 그곳은 마치 겨울과도 같았다.

그날은 햇빛과 기온만 놓고 보자면 덥다고도 느낄 정도. 하지만 보이는 것들은 그렇지 못했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 그렇지 않을 수 있었다.

지난 2월 발생한 산불의 피해지역인 안동시 임동면 망천리의 야산. 그곳엔 10월 한낮의 밝은 햇빛과 대비되어 더욱 처참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나무가 검게 탄 채로 서 있는 것이 안쓰럽게 보였고, 말하자면 사실상 숲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가슴 아픈 모습이었다.

눈앞에 온통 새카만 나무들뿐인데도 실감이 나지 않아 직접 만져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 끔찍한 재난이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8개월 전 그날의 상처 그대로를 말해주듯, 내 손엔 검고 검은 재만이 남아있었다.

누구든 한 번이라도 그곳에 서 있게 된다면 아, 라는 긴 탄식을 뱉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난 2월 21일 오후 3시 20분경, 2020년 안동시 풍천면을 시작으로 무려 47시간이 넘게 계속된 화마가 남긴 상처가 채 치유되기 전에 임동면 풍천리에서 또다시 산불이 발생했다.

산림청은 매년 2월 2일부터 5월 15일까지(봄철), 11월 1일부터 12월 15일까지(가을철) 산불방지 대책본부를 운영하고 그 중 특히 3월 13일부터 4월 18일까지는 대형산불 특별대책기간을 운영한다.

야간대비도 물론이다.

비단 3월의 특별대책기간이 아니더라도 이제 어느 때고 방심할 수 있는 날은 없다.

빼곡한 푸른 숲은 입산자의 실화와 수확이 끝난 후의 논밭두렁 및 쓰레기 소각, 건조일수 증가 및 강수량 감소, 잦은 강풍으로 인해 어쩌면 늘 인간을 두려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의 산불피해 면적은 179ha, 그리고 2020년의 산불피해 면적은 무려 2590ha로 집계됐다.

피해 면적은 여의도 면적의 몇 배, 축구장 몇백 개에 달한다는 식으로 전해진다.

여의도의 면적은 대략 87만평, 축구장 100개가 대략 30만 평이라고 하니 일단 여의도에 빗대어보면 내가 사는 방 면적의 8만7000배다.

87,000배라니. 20평 기준으로 하면 4만3500배, 30평 기준으로 하면 2만9000배, 40평 기준으로 하면 21,750배고 여기에 또 몇을 곱해야 제대로 된 피해 면적을 알 수 있다.

실감하기 쉽지 않다. 그렇게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정도의 면적을 하루 이틀 만에 잃는 끔찍한 재난. 그리고 잃는 것은 면적뿐만이 아니라 그곳이 품고 있던 모든 것이었다.

나는 임하호가 내려다보이는 망천리 야산을 걷던 중, 불에 탄 새의 깃털을 발견하곤 그 자리에 얼마간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죽어서도 어딘가로 날아가지 못한 것일까. 소중한 것은 지켜야 한다는 걸 모르는 이 없을 텐데, 허망한 마음을 숨길 길이 없었다.

나무는 타도 풀는 파랗게 돋는다
나무는 타도 풀는 파랗게 돋는다

11월이다.

아름다운 단풍을 홍보하는 여행 광고와 함께 산불 예방 홍보 기사나 활동 소식도 전보다 자주 보인다.

언제고 중요하지 않은 날이 있겠냐마는 모두가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인 것이다.

산림청에서는 산불 진화 훈련은 기본이고 원인별 선제적 대응을 준비함과 동시에 드론과 ICT 기술기반 차량 등을 활용한 스마트한 대응을 위한 준비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목숨을 건 것이나 다름없는 산불재난특수진화대의 활동에 깊은 존경심이 듦과 동시에 산불의 최선의 대책은 무엇보다 예방이라는 그 한 마디가 간절하게 들렸다.

그 한 마디면 되는 것, 그것만 지키면 되는 것 아닌가.

안동에서 소실된 산림이 원래 모습을 되찾기까지는 최소 100년이 걸린다고 한다. 물론 몇백 억원의 비용까지 쏟아부어야 하고.

피해현장을 답사하는 동안, 사실상 어디서도 알려주지 않았고 부끄럽지만 나 또한 알려고 한 적 없었던 산림청 산불재난특수진화대의 산림소방활동을 비롯한 산불재난시 대응과 그 후 대책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들, 그리고 함께 피해현장을 올랐던 선생님들이 전해주신, 그곳에서 새로 싹을 틔운 생명들에 대한 이름을 듣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도 희망 없는 절망에 더 오래 머물러있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책의 말미, 숲은 기적이며 오직 사람만이 숲을 사라지게 하고 또 그 숲을 살릴 수 있다는 글귀에 오래 머문다.

소중한 것들은 지켜져야 마땅하다고 다시금 생각하며, 숲을 살릴 수 있는 건 사람과, 또한 숲일 거라고 깊게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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