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종잡을 수 없는 ‘코시국’에도 어느덧 12월이다. 어김없이 전국의 스키장이 속속 개장 소식을 전한다.

많은 이들이 기다렸던 소식일 테지만 나에게는 그 시즌오픈이 반갑게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생겨난 장소가 스키장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스키장을 만들면서 우리는 그 땅에 살던 침엽수를 너무 많이 죽였다.

침엽수가 누구던가. 편의상 우리는 ‘바늘잎’을 가진 나무를 침엽수, ‘넓은잎’을 가진 나무를 활엽수라고 구분해서 부른다.

그들을 나누는 식물학적 기준은 잎이 아니라 생식기관에 있다.

장차 씨앗이 될 밑씨를 보호하는 기관인 ‘씨방(子房)’이 있느냐 없냐는 것. 밑씨를 꽃잎과 꽃받침이 겹겹으로 단단히 감싸서 보호하고 있는 식물을 묶어서 피자식물이라고 한다.

백합과 장미와 벚나무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꽃이 피는 식물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대로 씨방이 없이 밑씨를 드러낸 채 어떤 다른 방식으로 잉태하는 무리가 나자식물이다.

씨방과 꽃잎과 꽃받침이 없어서 이끼나 고사리처럼 ‘꽃’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관다발식물.

그중에 솔방울 같은 구조를 만들고 그 사이사이에 씨앗을 얹어 번식에 성공하는 식물을 묶어보니 하나같이 바늘잎을 하고 있어서 그들을 침엽수라고 부른다.

나자식물에게는 ‘꽃’이라는 용어를 쓸 수 없고 따라서 암꽃과 수꽃 대신에 암배우체와 수배우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며 깐깐이 따져 말하는 식물학자도 있다. 그 언쟁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그들이 처한 상황이다.

한반도에 저절로 나고 자라는 침엽수 중 68%에 해당하는 19종이 지구에서 멸종의 위기에 처했다. 특히 한반도의 높은 산정에 모여 살던 다양한 종류의 침엽수가 생의 영역을 좁혀가고 있다. 사진은 2018년 5월 지리산 천왕봉 일대에서 항공 조사로 확인한 가문비나무와 구상나무의 고사 모습. 고사목은 점차 더 늘고만 있다. [사진=녹색연합 서재철 전문위원]
한반도에 저절로 나고 자라는 침엽수 중 68%에 해당하는 19종이 지구에서 멸종의 위기에 처했다. 특히 한반도의 높은 산정에 모여 살던 다양한 종류의 침엽수가 생의 영역을 좁혀가고 있다. 사진은 2018년 5월 지리산 천왕봉 일대에서 항공 조사로 확인한 가문비나무와 구상나무의 고사 모습. 고사목은 점차 더 늘고만 있다. [사진=녹색연합 서재철 전문위원]

침엽수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신생대 제3기와 제4기, 지구가 극도로 추웠던, 그래서 메머드가 수북한 털을 방한복처럼 두르고 활동했던 그 시기에 한반도를 비롯하여 전 대륙에 드넓게 자랐던 식물이 그들이다.

다소 춥고 습한 환경을 선호하는 그들의 DNA는 인간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아주 먼 옛날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자꾸만 기온이 상승하는 지금은?

현재 침엽수는 따뜻해진 환경에 맞서며 전 지구적으로 축소의 시기에 진입했다.

그 기류가 심상치 않다는 걸 일찍이 알아차린 유럽(영국왕립식물원의 식물학자들)은 정확히 30년 전에 ‘침엽수보전위원회’를 만들고 그들을 살피는 일에 집중했다.

그 노력으로 전 세계 615종류의 침엽수를 파악하고 그중 34%에 달하는 211종류가 멸종의 위기에 처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한반도에 저절로 나고 자라는 침엽수가 28종인데 그중 68%에 해당하는 19종이 지구에서 멸종의 위기에 처했다는 거다. 이 충격적인 사실을 정작 우리는 잘 모른다.

특히 한반도의 높은 산정에 사는 침엽수가 큰일이다.

우리 반도가 시베리아와 한 몸처럼 춥던 빙하기에 침엽수는 러시아 연해주의 시호테-알린산맥을 타고 남쪽으로 백두대간 하부의 깊은 곳까지 확장했다고 식물학자들은 짐작한다.

빙하기 이후 지구가 좀 더 온난해지는 시기와 좀 더 한랭해지는 시기를 반복하는 동안에 침엽수는 백두대간을 따라 북진하거나 남하하며 한반도에서 그들의 생존을 이어온 것이다.

침엽수뿐만 아니라 더 많은 북방계 출신의 동식물이 그 산맥을 따라 살아왔고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백두대간을 한반도의 ‘생태축’이라고 말한다.

기후변화와 함께 침엽수는 점차 북위도로, 동일한 위도에서는 최대한 꼭대기로 생의 영역을 좁혀가고 있다.

그들이 걸어온 시간에서 알 수 있듯이 다양한 종류의 침엽수가 숲을 이루며 살 수 있는 땅이 국내에서는 백두대간의 일부 산정에 고립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 지점들을 골라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은 발왕산, 가리왕산, 태백산, 덕유산 등지에 스키장을 만들고 확장하고 치장했다.

그러니까 서양에서 우리 땅에 사는 침엽수가 멸종의 위기에 처했다는 연구를 이어가던 그 시간에 정작 우리는 그들이 사는 땅을 개발하는 일에 몰두했고 그들을 멸종의 위기로 내몬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축제의 장인 스키장이 언젠가부터 내게는 침엽수를 추모하는 공간이 되었다. 백두대간의 드넓은 면적을 점했던 구상나무는 덕유산에서, 분비나무는 강원도 산지에서 특히 타격이 컸다.

세계자연보전연맹에서 심각한 멸종위기종으로 평가하는 구상나무. 열매가 성게를 닮았다고 제주 방언 ‘구살낭’에서 구상나무라고 부른다. 고지대에 적응해서 키가 작게 자라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앙증맞은 모양이고, 바늘잎이 풍성하게 달려 서양에서 정원소재나 크리스마스트리로 사랑받고 있다. [세밀화 제공=국립수목원_서지연 작가]
세계자연보전연맹에서 심각한 멸종위기종으로 평가하는 구상나무. 열매가 성게를 닮았다고 제주 방언 ‘구살낭’에서 구상나무라고 부른다. 고지대에 적응해서 키가 작게 자라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앙증맞은 모양이고, 바늘잎이 풍성하게 달려 서양에서 정원소재나 크리스마스트리로 사랑받고 있다. [세밀화 제공=국립수목원_서지연 작가]
분비나무. 분을 칠한 듯이 수피가 흰 편이라 ‘분피나무’가 변해 ‘분비나무’라고 부른다. 형태가 비슷한 구상나무에 비해 교목성으로 높이 자라고 소백산을 기준으로 그 이북에 산다. 변화하는 기후 조건에서 남한에는 분비나무가 살 수 있는 땅이 자꾸만 줄어들고 있다. [세밀화 제공=국립수목원 이주영 작가]
분비나무. 분을 칠한 듯이 수피가 흰 편이라 ‘분피나무’가 변해 ‘분비나무’라고 부른다. 형태가 비슷한 구상나무에 비해 교목성으로 높이 자라고 소백산을 기준으로 그 이북에 산다. 변화하는 기후 조건에서 남한에는 분비나무가 살 수 있는 땅이 자꾸만 줄어들고 있다. [세밀화 제공=국립수목원 이주영 작가]

구상나무는 소백산 이남 지역인 덕유산, 지리산, 한라산 등지에 자생하는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이들 산지에서 구상나무가 소멸하면 지구상의 한 생물이 멸종한다는 사실에서 세계자연보전연맹은 구상나무를 심각한 멸종위기종으로 평가한다.

구상나무는 영국 식물학자 윌슨(Ernest Henry Wilson)에 의해 일제강점기에 세상에 알려졌다. 1917년 미국의 보스턴에서 한반도로 식물채집을 왔던 그는 10월 말에 한라산에 올라 구상나무를 채집했다.

그 표본을 분석하여 전에 없던 새로운 식물을 그의 이름을 명명자로 달아 ‘신종’으로 발표한 것이다. 그래서 구상나무의 이름은 영어로 ‘Korean fir’고 학명은 ‘Abies koreana E. H. Wilson’이다. 그 이후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구상나무는 서양에 건너갔고 오늘날 그 개량종은 크리스마스트리로 사랑받고 있다.

우리 이름 구상나무는 나무의 솔방울이 성게를 닮았다고 해서 성게의 제주도 방언 ‘구살’에서 왔다. ‘구살낭’이 한라산과 지리산과 덕유산에서 최근 들어 급격하게 고사하고 있다.

덕유산만 지켰더라면 하는 생각을 나는 월봉산 구상나무 아래에서 했다.

월봉산은 남덕유산 동남쪽에 바짝 붙은 해발고도 1280m의 산이다.

덕유산에서 뻗은 산줄기가 남덕유산과 월봉산을 지나 그 이남의 지리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덕유산과 월봉산은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하지만 스키장은 덕유산에만 있다.

덕유산과 남덕유산을 잇는 능선 중에서 구상나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북쪽 사면과 서쪽 사면의 특히 더 추운 골짜기로 이른 봄까지도 잔설이 오래 남는 장소다.

그곳을 스키장 최적지로 지목하고 무주리조트 착공을 허락한 인물은 전두환이다. 개발이라는 명목에서 그 많던 구상나무를 삽시간에 폭력으로 제압하고 없애버린 것인데, 남한에서 구상나무보다 드물게 자라는 가문비나무와 주목도 함께였다.

리조트는 1987년에 착공해서 1990년에 준공했고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개최로 스키장 슬로프와 구조물을 무리하게 늘렸다. 착공부터 확장까지 그야말로 구상나무 대학살이 일어난 곳이 무주리조트다.

월봉산 산정의 구상나무 서식지. 이러한 입지를 가진 구상나무 서식지가 덕유산에서는 스키장 슬로프로 대거 개발되었다. 덕유산에서 뻗은 산줄기가 남덕유산과 월봉산을 지나 그 이남의 지리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덕유산과 월봉산은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손상되지 않은 구상나무림의 원형과도 같은 장소가 월봉산에 있다. [사진=허태임]
월봉산 산정의 구상나무 서식지. 이러한 입지를 가진 구상나무 서식지가 덕유산에서는 스키장 슬로프로 대거 개발되었다. 덕유산에서 뻗은 산줄기가 남덕유산과 월봉산을 지나 그 이남의 지리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덕유산과 월봉산은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손상되지 않은 구상나무림의 원형과도 같은 장소가 월봉산에 있다. [사진=허태임]

월봉산에는 다행히 인간에 의해 손상되지 않은 무주리조트의 원형과도 같은 장소가 있다.

이 순결한 침엽수림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단서와도 같은 것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나는 몇 명의 연구진과 팀을 이뤄 올해만 수차례 월봉산에 올랐다.

식물이 사는 특정 장소의 현 상황을 얼마간 지켜보며 꼼꼼히 기록하여 그 추이를 살피고 다가올 환경을 예측하는 서식지 모니터링 조사.

기후위기라는 새로운 환경에 접어든 구상나무를 앞에 두고 지금 그들의 상태를 조목조목 ‘야장(野帳)’에 받아적고 분석하는 일련의 과정은 주치의가 환자의 병을 추적하기 위하여 ‘진료차트’를 작성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를테면 구상나무가 어떤 식물과 어떤 토양에서 어떤 방식으로 모여 사는지, 서식지에 머무는 빛과 수분과 양분의 상태는 어떠한지, 수분기작은 무엇이고 생활사는 어떠한지, 그들 몸에 기대어 사는 곤충과 미생물은 누구인지 등을 파악하여 진단과 치료를 위한 단서를 모으는 일. 생물은 변화하는 환경에 순응하며 얼마간의 시간을 두고 적응해서 살기 때문에 그들의 현상을 짧은 시간의 어떤 단편만을 보고 해석할 수는 없는 일이다.

수학 문제 풀듯이 주어진 시간 내에 딱딱 답을 내는 건 더 어렵다. 그래서 장기간에 걸쳐 그 현상을 분석하는 모니터링 조사를 우리 분야에서는 아주 중요한 연구 방식으로 다룬다. 앞으로 몇 년간은 묵묵히 월봉산에 오를 예정이다.

식물이 사는 특정 장소의 현 상황을 얼마간 지켜보며 꼼꼼히 기록하여 그 추이를 살피고 다가올 환경을 예측하는 서식지 모니터링 조사.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단서와도 같은 것을 월봉산 구상나무 서식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장기간에 걸쳐 서식지를 관찰하고 데이터를 축적한다. [사진= 허태임]
식물이 사는 특정 장소의 현 상황을 얼마간 지켜보며 꼼꼼히 기록하여 그 추이를 살피고 다가올 환경을 예측하는 서식지 모니터링 조사.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단서와도 같은 것을 월봉산 구상나무 서식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장기간에 걸쳐 서식지를 관찰하고 데이터를 축적한다. [사진= 허태임]

소백산 이북의 산정, 그러니까 태백산, 함백산, 오대산, 설악산 등지에서 구상나무와 똑같이 생긴 나무를 만났다면 그건 분비나무다.

구상나무에 비해 분을 칠한 듯이 수피가 흰 편이다. 그래서 ‘분피나무’였다가 ‘분비나무’라 부르게 되었다.

열매를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구상나무와 너무 닮아서 헷갈리지만 둘은 사는 영역이 정확하게 구분된다.

소백산을 기준으로 그 이북에 살면 분비나무, 반대로 그 이남에 살면 구상나무다.

분비나무는 중국 동북부 지역과 러시아 동부지역에도 자라기 때문에 구상나무에 비하면 분포 면적이 넓은 편이다.

그래서 세계자연보전연맹은 분비나무가 구상나무보다 멸종의 위험이 다소 낮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한반도만 놓고 보면 변화하는 기후 조건에서 분비나무가 살 수 있는 땅은 꾸준히 줄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나는 분비나무 서식지 250여 곳을 다니며 그들 서식지의 쇠퇴 현상을 관찰하고 있다. 남한에서 분비나무가 살 수 있는 최북단인 강원도 양구군 접경지역의 대암산부터 최남단인 경북 영양군 일월산까지.

내가 목격한 곳 중에 분비나무가 가장 시련을 겪고 있는 곳은 발왕산이 아닌가 싶다.

거기에는 1975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현대식 스키장 시설을 갖추고 개장한 용평리조트가 있다. 1999년 동계아시안게임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로 그간 용평리조트는 발왕산을 너무 많이 망가뜨렸다.

원래 살던 분비나무를 밀어내고 리조트 시설물과 스키장 슬로프가 들어선 발왕산 산정. 그대로 두었더라면 엄청난 규모의 분비나무림이 울울창창 우거져서 한계령풀과 백작약과 나도옥잠화와 같은 더 많은 희귀식물을 지켜냈을 그곳에서 나는 이런 질문을 했다.

그 시설에서 생기는 수익금의 일부는 희생당한 이들을 기억하고 남은 이들의 생존을 지키는데 써야 하지 않겠냐고.

스키장이 들어서며 분비나무의 서식지가 대규모로 사라진 발왕산 정상(왼쪽). 분비나무 군락이 손상되지 않은 방태산 풍경과 대조적이다(오른쪽). 산정의 침엽수가 주로 사는 곳은 북쪽 사면과 서쪽 사면의 특히 더 추운 골짜기로 이른 봄까지도 잔설이 오래 남는 장소다. 이는 스키장 개발을 위한 적지로 지목되는 환경이기도 하다. [사진=허태임]
스키장이 들어서며 분비나무의 서식지가 대규모로 사라진 발왕산 정상(왼쪽). 분비나무 군락이 손상되지 않은 방태산 풍경과 대조적이다(오른쪽). 산정의 침엽수가 주로 사는 곳은 북쪽 사면과 서쪽 사면의 특히 더 추운 골짜기로 이른 봄까지도 잔설이 오래 남는 장소다. 이는 스키장 개발을 위한 적지로 지목되는 환경이기도 하다. [사진=허태임]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다면 서서히 일어났을(날) 일들이 지금 남한에서는 급격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들 구상나무와 분비나무의 소멸이 현실이 되어 그 숲에 사는 더 많은 종류의 식물들이 함께 위협받고 있다는 우려에서 최근에 우리 산의 침엽수 7종을 지켜내겠다는 정부(산림청)의 정책이 수립되기도 했다.

그들 가운데 구상나무와 분비나무보다 더 큰 종말의 위기에 놓인 건 ‘눈측백’이다.

‘눈측백’은 다소 낯설지 몰라도‘측백나무’와 ‘서양측백나무’는 일반인들에게 비교적 익숙할 것이다. 건물이나 울타리 주변에 둘러서 심는 조경수인데 전자는 한반도를 비롯하여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자라고 후자는 북미 원산의 도입종이다.

재배품종으로 개발되어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지만 둘 다 실제 원종의 서식지는 자꾸 줄고 있어서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지정한 멸종위기종이다.

그나마 그 둘은 지구상에 드넓게 퍼져 살지만 눈측백은 오로지 한반도 백두대간을 따라서만 자란다.

그래서 세계자연보전연맹은 측백나무나 서양측백나무보다 눈측백이 더욱 심각한 멸종의 위기에 놓였다고 2011년에 공식 발표했다.

눈측백은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지정한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이다. ‘측백나무’를 닮았지만 누워서 자란다고 ‘눈측백’이라고 부른다. 척박한 환경에 적응해서 사느라 키가 작아졌지만 환경에 따라서는 곧게 자라서 10m까지 높이까지 크기도 한다. 백두산에서 시작해서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등 북위 35° 이북하고도 해발고도 700m에서 1800m 사이가 눈측백의 서식지다. 변화하는 기후 속에서 눈측백의 고사가 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서식지가 급격히 줄어든 가장 큰 원인은 인간의 개발 행위라고 평가한다. [사진=허태임]
눈측백은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지정한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이다. ‘측백나무’를 닮았지만 누워서 자란다고 ‘눈측백’이라고 부른다. 척박한 환경에 적응해서 사느라 키가 작아졌지만 환경에 따라서는 곧게 자라서 10m까지 높이까지 크기도 한다. 백두산에서 시작해서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등 북위 35° 이북하고도 해발고도 700m에서 1800m 사이가 눈측백의 서식지다. 변화하는 기후 속에서 눈측백의 고사가 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서식지가 급격히 줄어든 가장 큰 원인은 인간의 개발 행위라고 평가한다. [사진=허태임]

‘측백나무’를 닮았지만 누워서 자란다고 ‘눈측백’이라고 부르는 이 나무는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서 활동했던 식물학자 나카이(Takenoshin Nakai)가 금강산 일대에서 채집하고 신종으로 발표하며 1919년 세상에 알려졌다.

백두산부터 금강산, 묘향산, 낭림산 등을 거쳐 남한의 설악산, 계방산, 가리왕산, 태백산 등 북위 35° 이북하고도 해발고도 700m에서 1800m 사이가 눈측백의 서식지다.

학명은 ‘Thuja koraiensis Nakai’, 영어로는 ‘Korean arborvitae’, 중국어로는 ‘朝鲜崖柏’. 부르는 이름에 하나같이 한국이 들어간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주듯이 한때 국내외 식물학자들은 눈측백을 한반도 특산식물로 여겼었다.

하지만 백두산의 중국 영토에 해당하는 땅에서 자라는 눈측백은 어쩌냐는 주장에서 지금은 한반도 백두대간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자라는 나무로 인식된다.

어떻게 보면 중국의 정치적 행보 같기도 하지만 눈측백을 지키겠다는 중국의 노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중국령의 백두산에 자라는 눈측백을 희귀식물로 지정하고 멸종의 위험도를 아주 높게 평가하여 지난 20세기 말부터 서식지 보전 연구를 진행하였기 때문이다.

눈측백을 대하는 국내의 사정은 그간 조금 달랐다.

눈측백이 자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리를 허물고 들어선 스키장을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그중 최고는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조차 눈 질끈 감고 뭉개버린 가리왕산 알파인경기장이다.

강원도 정선군과 평창군에 걸쳐 있는 가리왕산은 국내에서는 드물게도 원시림 수준의 숲이 잘 보전되어 있고 눈측백과 분비나무와 주목과 같은 침엽수가 숲을 이루는 곳이다. 그 이유에서 가리왕산이‘산림유전자원호구역’으로 지정된 것은 2008년의 일이다.

하지만 평창에서 개최되었던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하여 가리왕산이 알파인경기장 건설 적지로 지목되며 2013년 보호구역의 일부가 해제되었다.

산의 남쪽 봉우리인 하봉을 정수리까지 싹 다 밀고 알파인 슬로프를 만들 수 있었던 명분은 복원이라는 조건이었다.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 복원은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지지부진하던 복원 대책을 수립하기 위하여 정부는 ‘가리왕산의 합리적 복원을 위한 협의회’를 구성하고 수차례 협상 테이블에 모인 후 서둘러 복원에 착수하겠다는 계획을 지난 6월에 발표했다.

훼손되기 이전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 ‘복원’인데 빼앗긴 침엽수의 숲에 살던 그 많은 생물이 돌아오기까지는 인간의 셈법을 적용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기후위기라는 난제에 가뜩이나 위험에 처한 그들이 근 수십 년간 대한민국에서 대규모 학살을 당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당신은 알아주었으면 한다.

지금의 기후위기는 곧 침엽수 종말의 위기.

우리가 지켜야 할 그들과 그들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그들을 구할 해법을 찾기 위하여 침엽수들의 서식지를 찾아가는 이 일을 나는 계속해서 밀고 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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