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동계올림픽 일정에도 버젓이 미사일 발사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말 북한 군수공장을 시찰하고 있다.[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

【뉴스퀘스트=이영종 전략문화연구센터 연구위원 】 지난달 5일 북한이 자강도 지역에서 극초음속 미사일이라 주장하며 시험발사를 하자 정부 당국과 전문가 그룹에서는 “한 두 차례 도발에 그칠 것”이란 관망이 우세했다. 베이징 동계 올림픽(2월 4~20일) 일정이 잡혀있는 만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스타일을 구기는 몽니를 계속 부리지는 못할 것이란 분석이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북한은 지난달 11일 미사일 시험발사를 또 진행했고, 이후 사나흘 간격의 미사일 도발을 벌였다. 30일에는 올 들어 7번째로 화성-12형으로 불리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쏘아 올렸다. 베이징에서 선수단 입단 행사가 이어지고 올림픽 분위기 띄우기가 한창인 상황인데, 개막식 코앞까지 김정은의 도발 행보는 이어진 것이다.

한반도와 주변 상황은 냉랭해졌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1일 북한의 IRBM 시험발사에 대해 “모라토리엄(핵ㆍ미사일 유예선언) 파기이자 유엔 안보리의 결의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ㆍ미 정상회담이 열린 2018년 4월 북한이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폐기하고 미사일 시험발사를 유예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깼다는 판단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북제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파산위기를 맞았다는 경고가 나온다. 무엇보다 당혹스러운 건 시진핑 주석과 중국 당국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 압박으로 잔치 분위기가 뒤숭숭한데 김정은 위원장이 상을 뒤집어엎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올법하다.

북ㆍ중 관계는 흔히 ‘산과 물이 잇닿은 인방(隣邦ㆍ이웃 국가)’으로 표현된다. 순망치한의 혈맹으로도 불린다. 1940년대 후반 중국 공산당과 북한 노동당의 건립 시기부터 이어져온 전통적인 관계는 마오쩌둥(毛澤東)과 김일성 시기부터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다는 게 북ㆍ중 양측의 공통된 인식이다. 6.25 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한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毛岸英)의 유해를 중국으로 가져가지 않고 평북 회창군에 묻어 둔 건 북ㆍ중 친선의 각별함을 상징하는 일로 회자된다.

물론 북한과 중국이 대등한 입장에서 정치ㆍ외교적 교류나 경제 교역을 해온 것은 아니다. 특히 북한이 김일성 주석 사망(1994년 7월) 이후 수 년 간에 걸쳐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대기근 사태를 맞으면서 대중 경제 의존도는 커졌다. 노동당의 배급체계가 무너지면서 장마당을 통한 식량ㆍ생필품 조달이 자리 잡았고, 거래 물품 가운데 70~80% 가량이 중국산이란 탈북민 증언이 나올 정도다. 코로나19 창궐 직후 북ㆍ중 교역로를 전면 차단했던 북한이 최근 화물열차 운행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대외교역에서 중국 물량이 90%를 차지하는 현실 때문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중국에 마냥 휘둘리거나 끌려 다닌다고 보면 오산이다. 북한은 핵 실험이나 탄도미사일 도발에 따른 유엔 대북제재에 중국이 동참하자 “책임 있는 유관국이 미국에 휘둘리고 있다”는 비난을 중국 지도부에 퍼부었다. 또 2017년 9월 6차 핵 실험 직후에는 중국 시진핑 주석의 북한 정권수립 기념일(9.9절) 축전을 전하면서, 맨 먼저 소개하던 관계를 깨고 후순위로 미루는 등 불만을 나타냈다.

2018년 5월 7일 중국 다롄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

썰렁하던 북ㆍ중 관계가 복원 수순에 들어간 건 2018년 3월 김정은 위원장이 전격 방중해 시진핑 주석과 첫 정상회담을 가지면서다. 집권 7년 만의 일이다. 당시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ㆍ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던 김정은으로서는 중국 지도부와의 조율이 긴요했다. 중국 측이 공개한 정상회담 영상을 보면 시진핑과의 첫 대면에서 김 위원장은 매우 긴장한 듯 상기된 채 눈맞춤을 못하고 어색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북한 체제에서 핵심적 지위에 있다가 탈북한 고위 인사들을 만나보면 예상보다 중국에 대한 친밀도가 떨어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이 북한을 정치ㆍ경제적으로 예속시키려 한다는 인식과 그에 대한 경계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간부들과의 비공개 대화에서 중국을 ‘돼지’에 빗대면서 비판한 적이 있다는 얘기도 꺼낸다. 한ㆍ중 수교(1992년 8월) 때 북한이 느낀 충격과 중국 지도부에 대한 배신감이 오랜 상처로 남았다는 점도 거론된다.

한반도와 주변 정세의 격랑 속에 북ㆍ중 관계도 출렁이며 변화하는 모습이다.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의 중국에 대한 인식도 다층적 성격을 더해간다. 중국도 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에 따른 제재에 형식적으로 동참하면서도, 자신들의 대북 영향력 확대나 과시에 은근히 공을 들인다. 때론 한계를 느끼고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런 미묘한 국면이나 엄혹한 현실을 외면한 채 ‘북한은 중국의 속국이나 다름없다’는 고정관념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자칫 중국 역할을 과신하는 바람에 북한의 행동을 예측하거나 통제하는 데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 이영종 

전략문화연구센터 연구위원(현)
중앙일보 북한전문기자
미 우드로윌슨국제센터(WWICS) 초빙연구원 
고려대 북한학 박사
저서 :'후계자 김정은'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