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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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기까지 며칠 남지 않았다.

선거를 치루면서도 각 후보들의 공약은 명확한 숫자로 대변되기 마련이고, 새로운 정부가 구성되어도 역시 몇 가지 그럴듯한 숫자를 통해 국민들의 머리에 새 정부의 목표를 각인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지속된다. (개인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747 공약은 아직도 기억난다)

기본적으로 숫자는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므로 많이 사용되어야 하지만 때로는 나쁜 의도를 가지고 사용되기도 하고, 의도와 상관없이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며 나아가 숫자가 주는 매력 때문에 만병통치약처럼 여기저기 사용되기도 한다.

오죽 했으면 영국 수상이었던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이런 말을 했을까?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통계.”

그게 다 숫자가 우리 뇌 속에 닻내림 한 결과이다.

우선 의도와 상관없이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기업이든 국가든 간에 어떤 조직에 속해 있을 경우,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성과지표라는 목표를 두게 된다. 그리고, 성과지표는 주로 숫자로 대변되는 정량지표가 대부분이다.

만약 어떠한 일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혹은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달성해야 할 숫자를 제시하고 그것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게 된다면, 원래 목적은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지만 평가당하는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지위와 안위가 걸린 심각한 문제로 변하게 되어 숫자를 달성하는 데에만 모든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러한 현상은 “측정치가 목표가 되면 더 이상 좋은 측정치가 아니다”라고 요약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지난 번에 언급한 ‘굿하트의 법칙’이다.

영국 정부가 응급실에서 환자가 4시간 이내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결정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4시간 내에 치료를 마쳐야 한다는 측정치를 달성하기 위해 환자들은 오히려 그 전 단계인 응급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응급실 다음 단계인 입원 수속을 바로 밟는 상황 또한 늘어났다.

원래 이 제도의 목적은 응급실에서 양질의 치료를 충분히 그리고 신속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4시간이라는 숫자 목표가 주어지자마자 구급차에서의 시간을 늘린다던가 혹은 응급환자가 응급실에 오자마자 바로 입원실로 보내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바로 목표치 달성에만 힘을 쏟게 되어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경우이다.

유사한 사례로 아마 우리나라 경찰에서도 일어났을 법한 일인 네덜란드 교통경찰 사례를 보자. 한 번은 경찰 업무 실적을 경찰이 발부한 벌금의 액수로 판단하고자 했다.

경찰관들은 원래 교통질서를 확립하고 교통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해야 할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벌금의 액수라는 다소 우려가 있는 목표치를 부여함으로써 사소한 교통잡범들을 엄청 많이 만들어 낼 수 밖에 없었다.

안전벨트 미착용 뿐만이 아나라 자전거 전조등을 켜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금 고지서를 받은 사람이 급증했다고 한다. 과연 이것이 최초 의도한 목적에 부합하는 결과였을까?

숫자가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어떠한 합의 과정도 없이 자연스럽게 숫자만 바라보고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 대표적인 수치가 앞으로 새로운 대통령이 구성한 정부에서도 신처럼 떠받들 것이 분명한 GDP이다.

모든 정부에서 GDP를 어느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얘기는 마치 공공선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말 그대로 GDP는 생산과 경제성장과 관련한 지표이다.

GDP라는 단순한 하나의 수치에는 경제 외에 다른 가치는 전혀 반영이 되지 않고, 그 계산 과정에서도 단순화라는 작업 때문에 다양한 측정 방법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GDP를 왜 바라보고 살까?

아마도 단순화된 측정 값, 그리고 숫자로 가능한 비교와 판단, 우선순위화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아주 오래 전부터 다양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하면서 생존해왔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서서 의사결정을 해야 할 가짓 수는 더 많아지고 있다.

내가 운전을 할 때에도 신호가 깜빡일 때 가야 하는지 가지 말아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하고 어떤 음식을 먹어야 내가 더욱 만족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하며, 회사에서는 내가 어떤 상사와 친하게 지내야 더욱 오래 살아 남을 수 있는지도 결정해야 한다.

내 혀와 몸이 행복해 지기 위해서 우리는 한우에 등급을 매기고 있고, 직장 상사들에 대해서도 나름의 기준으로 저 사람이 앞으로 어디까지 승진할 수 있는지를 마음 속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 수 많은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각 상황 중 하나를 선택하는 가장 좋은 기준이 바로 숫자이고, 숫자 때문에 우리는 심사숙고해야 하는 과정과 노력을 줄이면서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기 매우 편해지게 마련이다.

즉, 랭킹과 랭킹으로 인한 닻내림은 우리 진화 과정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산물이다.

다시 GDP 얘기로 돌아가 보자. 어떤 나라 국민이 혼탁한 공기 안에 포함되어 있는 미세먼지에 매일같이 노출되어 있는 불편한 삶을 살고 있을 때 그 나라 GDP가 그걸 반영해 주지 못한다.

또한, 매일 속고 속여야 살아남을 수 있고, 돈이 정의를 지배하는 그러한 나라의 GDP 또한 사회의 공정성을 반영해 주지 못한다.

그러기에 ‘아마르티아 쿠마르 센 (Amartya Kumar Sen)’이라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빈곤과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교육에 대한 중요성까지 고려하여 인간개발지수 (Human Development Index)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 지수 또한 최근 중요한 환경오염, 정의와 공정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담아내지 못할 수 있지만 이러한 노력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일부는 새로운 삶의 기준으로 환영을 받는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정리하자면 단순화된 숫자는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여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숫자가 지닌 매력으로 인해 진실을 가리기도 한다는 점을 꼭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숫자만 보면 앵커링되는 (닻내림효과) 인간으로서는 항상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의기투합하여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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