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뇌의 활동

【뉴스퀘스트=이철형 와인 칼럼리스트 】 “풍부한 지식과 충분한 감각 교육을 받은 사람은 와인으로부터 무한한 즐거움을 이끌어낼 것이다. (A person with increasing knowledge and sensory education may derive infinite enjoyment from wine.)”-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

지난 컬럼에 이어 이번 컬럼에서는 뇌과학자인 고든 세퍼드(Gordon M. Sherper) 박사의 연구를 바탕으로 필자가 이해한 방식으로 와인 한잔에 담긴 뇌 과학을 풀어보았다.

술 중에 새로운 종류일 경우를 제외하고 마시기 전부터 그 술에 대해 기대하고 고민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적어도 필자의 경험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와인의 경우는 다르다.

우선 우리가 어떤 와인을 마시려고 고르고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뇌에서 반응을 하기 시작한다.

첫째 기대의 단계이다.

와인을 고를 때는 물론이고 와인을 오픈하여 잔에 따를 때까지 일어나는 심리 현상이고 이 역시 뇌활동과 관련이 있다.

어떤 와인을 마시지? 이 와인은 맛이 어떨까? 내가 예전에 마신 와인과 같은 향과 맛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와인과 유사할까? 하는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설레게 된다.

약간의 두려움도 있다.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쩌지? 라는.

와인 초보자일 경우에는 훨씬 적은 정보의 흐름이 머리 속에 존재하기에 애호가나 전문가에 비해서는 좀더 감정이나 기억 부분의 활성화가 적을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되지만 그래도 기대감과 호기심에서 오는 행복 물질은 분비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번째는 오픈하여 잔에 와인을 따르는 소리를 즐기는 단계이다.

대개 우리가 별 생각없이 하는 동작이지만 알게 모르게 첫 번째 청각작용이 작동하는 단계이다. 물론 코르크 마개를 ‘뽕’ 하고 따는 소리나 스파클링 와인을 ‘피식’하고 따는 소리도 있기는 하다.

이 때 뇌에서 청각과 관련한 부위가 작동을 한다.

여기까지 앞에서 이야기한 설레임과 기대감은 지속된다. 사실 오픈해서 따르는 단계에서 후각이 발달한 사람에게는 벌써 와인 향이 날아서 다가온다. 좋은 와인일 경우에는 코르크 마개를 오픈하면서부터 다가오는 꽃향기와 과일향기가 느껴지게 마련이다. 예민한 사람의 경우에는 후각과 관련한 뇌 부위가 벌써 반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번째는 잔에 들어 있는 와인을 눈으로 살펴보는 단계다. 바로 눈으로 마신다고 하는 단계다.

이 때 우리 뇌에서 시각과 관련한 피질 부위가 활성화되고 있을 것이다. 눈을 통해서 색깔도 보고 밝기도 보고 탁도도 보면서 음미하게 되니 머릿속 어딘가에서는 분석이 쉴새없이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일반 와인 초보자도 가능하다.

그런데 와인 애호가나 전문가쯤 되면 한걸음 더 나아가 원래 그 품종의 색을 간직하고 있는 지, 다른 품종의 와인들과 비교해볼 때 어떻게 유사한 지 혹은 다른 지를 머리 속으로 비교까지 해본다. 기억의 창고에서 과거에 마신 와인 정보들을 꺼내보는 것이다.

만약 블라인드 테이스팅이라면 몇 년도 빈티지일 지, 어느 지역이 이런 색인 지, 빈티지는 얼마나 되었을지 까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 뇌의 시각, 청각 등 감각 관련 부위●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Human_brain#/media/File:1604_Types_of_Cortical_Areas-02.jpg
● 뇌의 시각, 청각 등 감각 관련 부위●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Human_brain#/media/File:1604_Types_of_Cortical_Areas-02.jpg

네번째는 잔에 따른 상태로의 정지향을 맡아보고 나서 잔을 돌린 후 향을 풍부하게 숨을 들이쉬면서 맡아보는 단계이다. 유쾌한 향인지 불쾌한 향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향이 나는지를 본인의 경험치에서 알고 있는 향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느껴보고 생각해보게 된다. 뇌에서는 후각관련 부위가 가장 활성화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만약 여기서 마시기 전에 건배를 하게 된다면 잔 진동에서 전해오는 촉감과 청각에 의해 다시 한번 뇌의 이 관련 부위가 활성화되는 단계이기도 하다.

다섯번째는 드디어 가장 기다렸던 그리고 어찌 보면 하일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는 맛보기 단계다.

입 한가득 머금고 혀를 굴려가면서 입안 구서구석 돌려보면서 입안에서의 촉감과 함께 산도, 탄닌감, 신맛, 짠맛, 단맛, 쓴맛, 감칠맛 등을 섬세하게 느껴보려고 노력하는 시간이다.

그러면서 맛 간의 균형은 맞는지, 지나치게 도드라지거나 날카로운 맛은 없는지, 같은 신맛이라도 다른 품종과는 어떻게 다른지, 온도는 적당한지, 어떤 음식과 먹으면 좋은지 등을 생각하게 된다. 만약 음식과 함께 마시고 있다면 그 음식과 어울리는지 여부도 따져볼 것이다.

입안에서 이렇게 여기저기 와인을 굴려보는 사이에 침샘에서 분비된 침과 섞이게 되고 와인에 있는 휘발성 향 성분들이 주는 향도 있지만 이 성분들이 침과의 화학작용에 의해서도 추가로 분해되거나 합성되어 나오는 향 분자들이 인후를 타고 다시 올라와서 보다 풍성한 향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그 동안 침과 와인의 상호 작용에 대해 이루어진 연구가 많지 않았으나 고든 쉐퍼드 박사는 이에 관한 부분도 그의 저서에서 언급했다. 코에 있는 350여개의 냄새 수용체의 숫자도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침은 개인마다 분비량도 다르고 하루 중에도 시간대와 개인의 감정기복에 따라 그 양이 달라지고 그리고 나이와 성별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같은 와인에 대해 사람마다 서로 다르게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왜 동일한 와인이 어떤 때는 맛이 없다가 다른 상황에서 마시면 맛있는 지도 일부는 이해되게 된다.

이 짧은 순간에도 애호가나 전문가라면 입을 오므리고 공기를 한껏 입으로 빨아들여서 인후를 통해 올라오는 향을 한번 더 확실하게 느껴보려고 할 것이다. 단순히 잔에서 코로 향을 맡을 때에 비해 새로운 향은 없는지 더 강하게 느껴지는 향은 없는지, 변화는 없는지 등을 살펴보고 음미하는 것이다. 뇌의 가장 많은 부위가 동시에 사용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여섯번째는 삼키고 나서 뒷맛과 여운을 즐기는 단계다.

대개의 음식들은 삼키는 것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와인은 삼키고 나서 그 여운 소위 뒷맛(엄밀하게는 뒷향)을 느끼고 그 길이도 생각해보게 된다. 와인을 삼킨 후 숨을 내쉴 때 인후를 통해 역으로 코 안쪽에서 바깥 쪽으로 나오는 향을 느껴보고 그것이 얼마나 오래 잔향을 남기는지를 즐기는 단계다.

우리가 흔히 쉽게 지나치기 쉬운 이 단계가 아주 중요하다고 세퍼드 박사는 강조한다.

뒷맛(after taste/finishing)의 역할에 대해 확실히 알고 싶은 사람들은 입에 단맛이 나는 초콜렛을 넣고 코를 집게나 손가락으로 막아 보시라.

향은 없고 그냥 단맛만 느껴진다.

그리고나서 코를 막은 집게나 손가락을 풀어보면 못 느끼던 초콜렛향이 느껴질 것이다.

실제로 과학자들이 젤리빈으로 동일한 실험을 한 것이 있다.

와인의 경우에는 통상 뒷맛이 3초 이상이면 괜찮은 와인, 5초 이상이면 좋은 와인, 10초 이상이면 아주 좋은 와인으로 분류된다.

 

일곱번째 단계는 총평가의 단계이다.

기억의 창고에서 이와 유사했던 향과 맛을 가진 와인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이와 어울리는 음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도 하고 다음 번에 이 와인을 다시 사서 마실 것인지 말 것인 지 등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고 기억 창고에 결론을 저장하게 된다.

그리고 좋은 와인을 마셨고 기분이 좋아졌다면 뇌에서 행복 호르몬이 분비되는 단계이기도 하다. 아마 예민한 사람들은 향만 맡고도 이미 행복 호르몬이 분비되었을 수도 있고 와인을 고를 때부터 분비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다.

마지막 한 단계 여덟번째가 더 남아있다.

골프에서 18홀보다 어찌 보면 더 중요한 19홀과 같은 단계이다.

바로 마신 와인에 대해 서로의 느낌을 이야기하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다.

오감 중에서 와인 잔에 와인을 따를 때, 건배할 때 잔의 울림, 마실 때 목에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추가되는 또 하나인 청각에 대한 자극이자 대화(언어)와 사고의 뇌 부위가 활성화되는 순간이다.

청각만 놓고 볼 때 가장 활성화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언어 영역 역시도!

● 뇌의 언어 영역 관련 부위●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Human_brain#/media/File:1605_Brocas_and_Wernickes_Areas-02.jpg
● 뇌의 언어 영역 관련 부위●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Human_brain#/media/File:1605_Brocas_and_Wernickes_Areas-02.jpg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마신 후에 좋다고 느끼게 되면 뇌 속에서는 도파민 등 행복 호르몬들이 나오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느끼게 해준다.

바로 호르몬이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다음에 또 마시라고..

여기서 바로 주의할 점이 생긴다.

와인이 알코올 음료다 보니 만취와 과음으로 이끌려 가면 안 되는 경계의 단계이기도 하다.

음식으로 보면 과식과 비만으로 가는 길이 되는 경계선상이고..

바로 절제와 중독과 관련한 뇌 부위가 활성화되는 시기이다.

이것까지 포함하면 총 아홉 단계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뇌 활동을 극대화하면서 마시려면 결국 두 세번 만에 와인을 한번에 쭉 들이키는 우리의 기존의 음주 습관은 버리고 천천히 향과 맛을 음미하면서 마시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또 하나 와인에 대해 약간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공부한 만큼 더 많이 알고 느끼게 되니까.

그리고 기왕이면 온 몸의 감각 기관과 마음을 활짝 열고 편안하게 순간순간 사소한 것까지도 느껴가면서 마시는 것이 뇌운동에도 좋다는 이야기도 된다.

뇌도 운동을 시켜야 강화된다.

그나저나 조사의 결론은 와인을 마시면 직접적으로 특정 성분에 의해 머리가 좋아진다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언어, 기억, 감각, 감정, 보상 등 뇌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것은 맞고 맛있을 경우 행복 호르몬까지 분비된다고 하여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되어 있으니 치매 예방은 확실히 될 것 같고 감각이나 감성의 노화 방지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장수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혼자 있는 것 보다는 만남이 중요한 변수라고 하니 와인은 혼술하기 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마시는 것이어서 장수에도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 때문에 혼술을 해야했기에 와인 소비가 폭발했으니 재미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용불용설을 갖다 붙이면 머리를 많이 쓰니 그만큼 좋아진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면 좀 과장된 이야기일까?

신체운동을 하듯 자연스럽게 영양섭취와 함께 뇌운동을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와인 마실 때라는 말이니 일리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혹시나 기우에서 ‘그럼 다른 술들도 같은 작용을 하는 것 아니야?’ 라고 순간적으로 의구심을 갖는 술 애호가분들을 위해 한 말씀 드리면, 단 한잔을 놓고 보더라도 와인보다 향과 맛의 스펙트럼이 다양한 술은 없다는 점, 게다가 술 중에서 와인이 가장 종류가 다양하다는 점, 그리고 물 타지 않은 유일한 술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양조 과정에서 30℃를 절대로 넘지 않기에 오히려 포도주스보다도 당분 이외에는 포도의 영양분을 더 많이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드린다.

앞으로 와인 한 모금을 마시더라도 온 몸의 신경 세포 하나하나까지의 감각과 마음을 활짝 연다면 그리고 거기서 행복감을 느낀다면 명상을 통해 열반의 경지에 오른 것과 무엇이 다를까? 라는 좀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천국과 행복은 바로 와인 한 모금에도 존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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