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는 약 1만5000그루의 보호수가 있습니다.

마을에 오래 살아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한 나무입니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는 각자 스토리가 있습니다.

나무와 관련된 역사와 인물, 전설과 문화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문화콘텐츠입니다.

나무라는 자연유산을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킨 예입니다.

뉴스퀘스트는 경상북도와 협의하여 경상북도의 보호수 중 대표적인 300그루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연재합니다. 5월 3일부터 매주 5회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봉화 서벽리 느티나무는 항일 의병과 기미년(己未年) 만세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신목(神木)이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봉화 서벽리 느티나무는 일제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되찾는 데에 큰 역할을 한 특별한 나무다.

나무 앞에는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 시설 관리번호 31-1-05로 지정된 ‘항일 의거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봉화 서벽리는 일제의 국권 침탈에 맞선 항쟁이 치열했던 곳이다.

항일 의병 성익현, 이강년, 김상태의 연합 활동이 대표적이다.

당시 서벽리 연합부대는 1908년 5월 18일에 봉화군 내성을 공격하러 가는 길에 느티나무 옆을 지나다가 일본군 정찰대를 발견했다.

지금은 느티나무가 한 그루뿐이지만, 당시에는 느티나무 30여 그루가 있었다고 한다.

의병 부대는 잠시 느티나무 숲속으로 몸을 피하고 일본군의 동태를 살피다가, 일본군 정찰대를 공격하여 수십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당시의 느티나무 숲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사실상 진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서벽리 느티나무 숲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 참여한 우리 의병은 천 명이 넘었다고 한다.

느티나무 30여 그루로 이루어진 숲에 천여 명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은 과장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곳의 지형을 꼼꼼히 살펴보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수령이 6백여 년 된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살아남아 언덕마루에 우뚝 서 있다.

느티나무가 있는 언덕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오르는 길이 상당히 가파르다.

언덕 아래쪽으로는 너른 벌판이 펼쳐져 있다.

지금의 지형이 그 시절과 다소 다를 수도 있겠지만, 당시 일본군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이 느티나무 언덕 아래쪽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언덕 아래 벌판으로 일본군이 지나고 있었다면 잎이 무성한 느티나무 30여 그루가 빽빽했을 숲과 들판 반대편 언덕에 의병 천여 명이 몸을 숨기는 건 불가능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곳의 지형은 경계심 없이 지나는 왜군을 기습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서벽리 전투 후, 일제의 순사들은 보복으로 동산에 있는 30여 그루의 느티나무를 모두 베어내려 했다.

그러나 지금의 서벽리 느티나무만큼은 베어내지 못했다. 마을에서 대대로 모셔온 신목(神木)이라 건드리기가 상당히 두렵고 찜찜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나무 곁에 성황당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분위기에 압도당했을 수도 있다.

신목을 잘라내면 뒤따를 민심의 동요와 반발을 걱정했을 수도 있다.

결국 순사들은 숲을 이루던 다른 느티나무들을 모두 베어냈지만, 지금의 서벽리 느티나무는 줄기의 절반밖에 베어내지 못했다고 한다.

일제에 의해 찢겨나간 서벽리 느티나무 줄기의 절반 부분은 충전재로 메우는 처치를 해주었고 마을 사람들도 정성을 다해 나무를 돌봤다.

그렇게 서벽리 느티나무는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도 건강하게 살아남았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서벽리 의병 전투에서만 서벽리 느티나무의 의미가 컸던 건 아니다.

그 뒤로도 서벽리 느티나무는 언제나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목이었고, 지역 독립운동의 중심지이자 상징이었다.

1919년 4월 5일 서벽리에서 정태준, 이인락, 이봉락 세 사람이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고 일제 순사에 잡혀 고초를 겪었다.

마을의 중심인 서벽리 느티나무 앞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서벽리 느티나무는 이제 서벽초등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서 미래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느티나무 동산에 초등학교가 자리 잡았다.

봉화 서벽초등학교다. 1932년에 춘양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한 학교로, 1941년에 서벽리로 옮겼다.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 대처로 떠나고 마을의 규모가 크게 줄어들어서, 서벽초등학교의 학생 수는 2020년에 2학년 6명, 4학년 6명, 5학년 3명이 전부였다.

그렇게 전교생이 총 15명이었고 그나마 1, 3, 6학년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교사는 교장 선생님을 포함해 5명이었다. 

서벽리 느티나무가 있는 서벽초등학교의 풍경은 사철 내내 아름답다.

특히 학교 정문 바로 안쪽에 서 있는 큰 벚나무 한 그루는 학교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벚나무가 벚꽃을 활짝 피우면 학교 풍경은 더욱 아름다워진다.

서벽초등학교 벚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는 아니지만, 규모도 크고 상당히 오래된 나무다.

서벽리 느티나무는 벚나무의 운동장 대각선 맞은편에 있다.

느티나무 주변에 전나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나무가 늘어서 있어서 맑고 시원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서벽리 느티나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아온 고난과 투쟁의 역사 중심에 있었던 의미 깊은 나무다.

<봉화 서벽리 느티나무>

·보호수 지정 번호 11-1
·보호수 지정 일자 1982. 10. 29.
·나무 종류 느티나무
·나이 600년
·나무 높이 25m
·둘레 6m
·소재지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산237
·위도 37.007805, 경도 128.833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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