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판문점 넘자마자 팬티 차림으로 “김일성 만세!” 외치기도

동해상에서 표류하다 구조된 북한 어부들이 2013년 7월5일 판문점을 통해 북측에 송환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 판문점은 남북 대결의 최전선이다. 2018년 봄 2차례에 걸쳐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이의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무력충돌까지 빈번했던 냉전 시기 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판문점은 화해와 협력의 상징보다는 치열한 남북 대치의 현장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북한과 미국의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2019년 2월 이후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판문점은 다시 얼어붙었다. 이듬해 초 코로나19가 번지면서 아예 인적이 끊겼다.

하지만 유일하게 남북 간 소통이 이뤄지는 예외적 경우가 있다. 바로 판문점을 통한 북한 주민의 대북 송환조치다. 임진강으로 떠내려 온 북한 주민 시신을 돌려주는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로작업을 나왔다가 기관고장이나 기상악화로 남측 수역으로 표류하다 구조된 어부들이다.

최근 불거진 2019년 11월 탈북·귀순 북한 주민의 강제북송 논란도 결국 주무대는 판문점이라 할 수 있다. 북으로 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당시 사진에서 드러난 모습에서 남북 간 체제의 이질성과 분단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를 실감할 수 있다.

판문점을 가로지르는 군사분계선(MDL)은 공동경비구역(JSA)란 말을 무색케 한다. 한때 남북한 군과 유엔사 소속 장병들이 판문점 지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머물렀지만 군사적 충돌이 생기면서 분계선 양측으로 단절된 말로만 ‘공동경비구역’인 상황을 맞았다.

분단의 현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건 20cm 남짓한 높이의 콘크리트 경계석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서로 악수하고 넘나들며 화해와 한반도 평화 비전을 내비쳤지만 여전히 넘을 수 없는 금기의 ‘콘크리드 장벽’이 되고 있다.

표류하다 구조됐거나 선박을 이용해 탈북·귀순한 경우 중국 등을 경유해 입국한 탈북자와 마찬가지로 관계당국의 합동신문을 받는다. 북한에서의 출생지나 직업, 귀순이나 표류 동기 등을 면밀하게 조사받고 거짓진술 여부를 가리는 허탐(虛探) 신문도 거친다.

고위 인사일 경우나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보다 가치 있는 정보나 심층적인 사항을 알아내기 위한 전략신문 기법도 가동된다. 이러다보니 몇 주가 걸리는 게 보통이고 3~4개월 소요되는 경우도 있다. 며칠 만에 돌려보낸 2019년 강제북송 건이 논란이 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도 지나치게 송환을 서둘렀다는 점이다.

조사 기간에는 남한의 발전상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장점을 알 수 있게 하는 정보가 제공된다. TV 시청을 통해 알도록 하거나 아예 서울타워나 강남의 코엑스 등을 참관토록 한다. 지하철이나 남대문 시장도 주요 체험 코스 중 하나다.

건강검진도 빼놓지 않는다. 북한의 선전과 달리 놀라운 서울의 모습과 의료 시스템 등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단순 표류로 북송을 희망하는 주민의 경우에도 서울의 모습을 둘러보고 갈등하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한다.

본인의 희망에 따라 최종적으로 북송이 결정되면 고향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북측에 신원을 통보해 송환 날짜를 잡고 이발과 목욕 등 정비를 한다. 입고 온 옷을 깨끗이 세탁해 입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입지 못할 정도로 낡았거나 오염된 경우 영문 표기나 한국산 상표가 없는 중소기업 제품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간다.

1978년 어로작업중 표류했다 북송되는 북한 어부들이 남측이 제공한 옷을 벗어던지고 팬티차림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통일부]  

과거 냉전 대결시대에는 판문점을 넘자마자 한국에서 장만해준 옷을 벗어 집어던지고 팬티차림으로 ‘김일성 수령 만세! 김정일 장군 만세!’를 외치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북한으로의 귀환을 희망한 주민을 받아들이는 북측의 분위기는 환대에 가깝다. 판문점에 나온 북측 연락관은 등을 두드리며 맞이하고 꽃다발과 승용차를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북한 주민은 남쪽을 향해 돌아서 만세를 부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는 보여주기에 불과하다는 게 탈북 인사들의 전언이다. 귀환한 주민들은 북측 공안당국으로부터 혹독한 심문을 상당기간에 걸쳐 받는다. 남측에 머무는 기간 동안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그 때문에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 아닌지 하는 점을 파헤치는 과정이다.

교육을 마친 뒤에는 주민이나 북한 군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선전 사업에 동원된다. 북한TV에 출연하거나 군부대와 공장·기업소, 협동농장을 돌며 “남조선에 가보니 뿌리부터 썩은 자본주의 소굴이더라”라는 식의 대남 비난 선전에 앞장서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건 쉽지 않다고 한다. 남쪽으로 갔을 때 간첩임무를 받고 온 것은 아닌지 등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기 때문이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남한에 상당기간 체류하면 당국의 조사를 받고 문물을 체험했다는 이유로 “남조선 때가 묻은 위험인물”로 낙인찍힌다는 것이다.

결국 주변의 눈총과 편견에 휩싸여 북한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남한에서의 신기한 경험을 잘못 발설했다가 정치범으로 몰려 영원히 가족·친지, 사회와 결별하는 일도 벌어진다.

북한 주민의 심문이나 북송 작업에 관여했던 정보당국 관계자들은 단순 표류 등의 경우에도 남한의 발전상을 체험한 뒤 심적 동요를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귀띔한다. 하지만 귀순 시 북한의 가족들이 입을 피해 등을 우려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북한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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