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최혜인(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 찻잔과 자사호, 그리고 인장. 배경에 별다른 묘사 없이 세 가지 기물들만 나열되어 있다. 이 작품은 허련(許鍊, 1809~1892)이 그린〈기명도〉《한묵청연첩(翰墨淸緣帖)》이다. 《한묵청연》은 지인들에게서 받은 시와 자신의 그림들을 함께 모아 만든 시화첩(詩畵帖)이다. 이 시화첩이 만들어질 당시 허련의 나이는 72세였다. 시화첩에는 〈기명〉과 함께〈연하(蓮蝦)〉,〈노매구석(老梅癯石)〉,〈난(蘭)〉등 네 점이 실려 있다. 모두 배경을 생략하고 그림 소재에 집중하여 그렸다.〈기명도〉를 다시 살펴보면, 엎어진 찻잔과 당당한 몸체의 자사호가 있다. 찻잔 표면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선들은 빙렬(氷裂)로 보이는데, 빙렬은 도자기를 굽는 과정에서 유약과 흙의 온도 차이로 생겨난 미세하게 난 금을 일컫는다. 차를 우릴 때 쓰는 주전자인 자사호는 붉은 흙[紫沙]으로 만들어져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림에서 자사호 특유의 색감을 잘 표현해 냈다. 어깨 부분
[뉴스퀘스트=최혜인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 깊은 산 속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모옥(茅屋) 한 채가 보인다. 그 안에서 고사(高士)는 조촐한 식사를 하고 있고, 마당에 놓인 커다란 괴석 옆에는 다동(茶童)이 차를 준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 뛰어난 화원 화가 이인문(李寅文, 1745~1821)이 그린 《산정일장병》중 제4폭〈맥반흔포도〉이다. 가만히 감상하고 있으면, 찻물 끓는 소리와 함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이따금씩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마음이 평온해진다.《산정일장병》은 총 8폭으로 이루어진 병풍으로, 남송대 문인 나대경(羅大經, 1196~1242)이 쓴 『학림옥로(鶴林玉露)』 중 「산거편(山居篇)」을 주제로 하고 있다. 「산거편」은 나대경 자신의 산 속 생활에 대한 즐거움을 써내려간 짧은 산문으로, 관료문인들이 원하는 은거(隱居) 모습을 잘 담아내어 시대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에게 읽혀졌다.이는 회화의 주제로도 매력적이었다. 「산거편」의 첫 머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