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잡아먹은 그리스 신화 속 ‘크로노스가 보인다’

[트루스토리] 평소 이것저것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 편의점을 자주 찾는다. 아파트 근처이건, 회사 앞 주변이건, 처음 찾은 낯선 장소인건, 편의점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건 10대 또는 2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대학생 아르바이트생들이 고객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특히 90% 이상은 여고생을 많이 접한다. 손님이 길게 줄이라도 서있을 때면, 바쁘게 움직이는 손놀림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어쩌다 낯선 성인 남성이 ‘어른이라는’ 이유로 물건을 구매시 반말을 한다거나, 심야의 늦은 시간, 술에 취한 인사불성의 남성이 이 여고생들에게 행패를 부린다면, 그런 장면을 우연히라도 목격할 때마다 아르바이트생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더욱 안쓰럽다. 

하지만 가장 속이 타는 까닭은 그들이 얼마의 임금을 받으며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용돈을 벌기 위해, 혹은 어려운 가정을 부양하기 위해, 직접 생계의 전선에 뛰어든 청소년들은 (위험에 노출된) 좁은 계산대 앞에서 자본가들의 주머니를 배부르게 하기 위해 철저히 이용당하고 있는 데, 이 같은 현실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는 지난 24일 오전 서울 중구 ‘청어람 아카데미’에서 열린 청년 아르바이트 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최저임금제와 관련 “우리가 바라는 평균임금의 50% 수준의 최저임금을 놓고 자영업자들이나 영세업체들이 경쟁력을 회복하면서 같이 갈 수 있는 점진적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최저임금 기사를 보면 평균임금의 30% 수준인 것 같다. 저도 50% 정도가 바람직한 수준, 최저수준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012년 최저임금은 4580원, 2013년은 4860원이다. 내년 기준으로 봤을 때, 한달 116만6400원 수준이다. 물론 하루 8시간, 30일을 꼬박 일했을 때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기계도 아니고, 아플 때 쉬어가면서 일을 한다면 한 달 꼬박 일해도 100만원도 못번다는 이야기다. 이러니 일용직 노동자들과 노동계는 최저 임금을 올리자고 목청을 높여왔던 것이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CEO 출신을 대통령으로 뽑아놨더니 최저 임금은 제자리걸음이고, 겨우 300원 가량 오른 셈이다. 지나가는 개를 대통령을 뽑아놨어도 300원 이상은 인상됐을 가능성이 높다. ‘재계의 충실한’ 대변인으로 평가받는 사람이 무려 5년에 걸쳐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었으니 임금인상안에서 재계의 목소리가 다분히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노동착취를 방지하기 위해 임금의 하한선을 법적으로 정하는 최저임금. 최저임금은 애초부터 노동인구 중에서도 그 사회의 가장 취약한 층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제도다. 그리고 우리사회에서는 이 최저임금의 가장 중요한 적용대상이 10대 아르바이트생들이다. 편의점, 주유소, 각종 패스트푸드 체인점 등 우리 주변에는 법정 최저임금을 받는 우리의 아들, 딸, 동생들이 도처에 널렸다. 80년대 중반 대학 주변의 아르바이트 시급이 1000원에서 많이 주는 곳은 1500원 정도였던 걸 생각하면 25년 사이에 기껏 세배 정도 오른 건가.

그에 비해 당시 사립대학 등록금이 60만원 정도였던 걸 생각하면 대학등록금은 적게는 5배에서 많게는 8배까지 오른 셈이다. 국민소득도 늘어나고 민주화도 되고 선진국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데, 최저임금은 왜 이리 안 오르는 걸까.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건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적은 최저임금 기준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언론뉴스를 접하다보면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을 적발했다는 소식을 종종 듣는다. 고용부는 수시로 ‘일제 점검’이라며 보도자료를 뿌리지만, 여전히 고용노동부가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비등하다. 이런 모순적 구조 속에서 우리 청소년들은 얼마나 눈물과 한숨, 분노를 쏟아냈을까.

특히 영세한 자영업자가 아니라 국내 굴지의 재벌그룹들이 운영하는 편의점조차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면 할 말을 잊게 된다. 충북 청주에 사는 조모군(19·대학 1년)은 학비와 용돈을 벌기 위해 인근 편의점에서 주말 자정에서 오전 9시까지 9시간을 일한다. 조씨가 받는 임금은 1시간에 4000원, 법정 최저임금 4580원에 미치지 못했다.

그나마 조군은 4000원도 안되는 임금을 받고 일하는 주간 아르바이트생보다는 임금을 더 받는 것이다. 그에게 근로기준법상 주 15시간 이상 일할 때 보장받을 수 있는 주휴수당과 야간근로수당은 꿈에 불과하다. 지점장에게 주휴수당과 야근수당을 건의해 보았지만 “누가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그런 걸 바라느냐”는 핀잔만 돌아왔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임금이 그 밑으로 내려가면 안된다는 하한선을 법으로 정해놓은 것이지 딱 그만큼을 주라는 게 아니다. 더구나 그 대상이 10대 청소년들이고 밤낮 없이 아무 때고 일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실제 임금은 그보다 훨씬 높아야 하는 게 정상이다. 선진국 치고 우리처럼 하루 24시간 어딜 가든 편의점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나라는 없지만 그나마 우리와 비슷한 일본의 경우 최저임금 수준이 우리의 2배가 넘고 심야시간에는 더 많은 임금을 가산해 주고 있다.

따지고 보면 청소년들의 최저임금 문제는 보수를 자처하는 분들이 앞장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가족의 소중함, 공동체의 가치, 어른의 책무를 강조하는 보수라면 부모세대와 우리사회가 보호해야할 청소년들을 이렇게 착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돈만 벌면 된다는 장사치가 아니라면 훼미리마트나 GS25 같은 재벌그룹 편의점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최저임금은 아무리 어려워도 그 정도는 줘야 된다는 사회적 합의이고 이런 합의는 영세업체에나 해당되지 재벌그룹들이 운영하는 편의점체인에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시간의 신 크로노스는 아들을 삼켰다. 크로노스가 상징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 동네 편의점들은 바야흐로 크로노스 전성시대다. 일회용 소모품으로 전락하다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는 우리 10대 아르바이트생들. 누가 누구를 지금 삼키고 있는 것일까.

박영식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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