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타이틀로 대외 위상 높여...사법리스크 등 이미지 탈피 시도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 자신...반도체 및 신사업 강화 핵심 과제로

지난 11일 삼성바이오로직스 4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삼성전자]

【뉴스퀘스트=김보민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했다.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지 31년 만, 2012년 부회장직에 오른 지 10년 만이다.

이번 승진은 삼성그룹에게 있어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일(1)인자를 돕는다는 뜻의 '부(副)'를 떼어내면서, 국내외 비즈니스 환경에서 진정한 그룹 총수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불안정한 경영 환경이 지속되는 가운데 삼성을 위기로부터 꺼낼 구원투수 역할을 해낼지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실적 개선을 꾀할 요인을 찾고 미래 먹거리를 강화해, 주요 경영 비전인 '뉴삼성'을 실현하는 데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공판에 출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7일 서울중앙지법을 나서며 기자들에게 승진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판에 출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7일 서울중앙지법을 나서며 기자들에게 승진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부'의 짐 털어내고 이미지 변신

27일 삼성전자는 이사회를 열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회장 승진을 의결했다.

이 회장은 이날 별도의 행사 또는 취임사 없이 예정된 일정을 소화했다. 대신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을 마치고 나와 취재진에게 "어깨가 많이 무거워졌다"며 "많은 국민들의 응원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고(故) 이건희 회장 2주기 때 사장단에게 전한 메시지도 사내 게시판을 통해 공개됐다. 이 회장은 기술과 인재, 사회공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오늘의 삼성을 넘어 진정한 초일류 기업, 국민과 세계인이 사랑하는 기업을 함께 만들자"며 "제가 그 앞에 서겠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그동안 암묵적으로 삼성의 총수 역할을 해왔지만, 이번 승진은 대외적인 이미지에 변화를 주는 데 의미가 있다.

그동안 재계에서는 국내외로 경영 활동을 펼치는 과정에서 부회장이라는 직함으로 과연 삼성을 대표할 수 있냐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국내 5대 그룹 총수 중 유일하게 회장직에 오르지 않은 점도 꾸준히 거론됐다.

지난 5월 이 회장이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평택 반도체 공장을 직접 소개했을 당시에도, 중대한 자리인 만큼 부회장보다 회장으로 나서는 게 좋지 않겠냐는 시각이 나오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 교수는 "부회장이라는 단어에서 '부'는 서포터라는 의미가 짙다"며 "부회장 위에 (그룹 전체를 이끄는) 회장이 있는 게 상식인데, 그 공석의 적임자가 누구냐에 대한 논의가 뜨거웠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분식회계 등으로 얼룩진 과거 이미지를 벗는 데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황 교수는 부회장직을 유지한 게 "대외적으로 구심점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사법리스크가 있던 점이 부각되기도 했다"며 이번 승진이 이런 시선을 불식시키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진단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6월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있는 ASML 본사를 방문했다. 사진은 당시 ASML 반도체 장비를 점검하는 이 회장. [사진=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6월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있는 ASML 본사를 방문했다. 사진은 당시 ASML 반도체 장비를 점검하는 이 회장. [사진=삼성전자]

◇ 주력 사업 개선하고 신사업 키우고...향후 결단에 '눈길'

이재용 시대가 공식적으로 막을 올리면서 삼성은 일단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지만, 이 회장 앞에 놓인 과제는 만만치 않다.

이 회장 또한 취임사를 대신한 사내 메시지를 통해 "안타깝게도 지난 몇년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며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지 못했고, 기존 시장에서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글로벌 시장과 국내외 사업장들을 두루 살펴봤다"며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엄중하고 시장은 냉혹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위기는)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가장 코앞에 놓인 문제는 반도체 실적이다.

삼성전자는 세계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반도체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최근 대만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인 TSMC에게 세계 반도체 매출 1위 자리를 뺏긴 것을 두고 새로운 승부수가 필요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여기에 다른 경쟁 기업들과 같이 메모리 부진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예상보다 높은 고객사 재고 조정에 메모리 시황이 꺾이면서, 삼성전자는 올 3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동기보다 약 31.4% 감소하는 쓴맛을 봤다.

'이재용표 뉴삼성'을 이끌 미래 먹거리도 강화해야 한다.

앞서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과 차세대 통신 등 신사업 분야에서 기술 주도권을 쥐고, 특히 바이오 분야에서 제2의 반도체 신화를 이루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인수·합병(M&A) 등의 결단을 내릴지 관심이 주목된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이 회장의 승진 시기를 논의하며 적절한 타이밍을 계속 찾았다"며 "사업 강화와 위기 극복에 대한 목소리가 커진 이 시점이 곧 적기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외 삼성 그룹의 지배구조 재편과 그룹 컨트롤타워 복원에 대한 결정도 내릴지도 관심사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 25일 경기도 수원시 선영에서 열린 고(故) 이건희 회장 2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모습. 이 회장은 27일 취임사를 대신한 메시지를 통해 "회장님의 치열했던 삶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진다"며 "선대의 업적과 유산을 계승·발전시커야 하는 게 제 소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삼성전자 안팎에서도 이 회장의 향후 행보에 주목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익명을 요청한 30대 삼성전자 직원 A씨는 "회장 승진과 동시에 취임사나 취임식 없이 업무 일정을 수행하고 있다고 하는데, 막중한 책임감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믿을 수 있는 오너 경영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30대 직원 B씨는 "회장직에 오른다는 것은 다들 예상하던 부분이라 엄청 놀랍지는 않다"면서도 "뉴삼성이라는 키워드가 계속 언급되고 있는데, 이번 회장 승진을 계기로 회사와 직원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모색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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