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승국 전통문화칼럼니스트 】

한국의 만담(漫談), ‘재담소리’ 명인 박춘재의 전통을 이어받아

재담소리의 명인 박춘재
재담소리의 명인 박춘재

  비뚤어진 세태와 왜곡된 정치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개그나 코미디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응어리진 반감과 억눌림을 웃음을 통해서 해소 또는 정화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 간의 공감대와 결속력을 더욱 강화해주기 때문에 무형(無形)의 치료 약과 같은 것으로서 예나 지금이나 인기가 많다. 

  요즘은 개그맨 전성시대이지만, 얼마 전까지는 코미디언 전성시대였다. 연식이 좀 된 분들께서는 고춘자(1922~1995), 장소팔(1922~2002) 두 분이 재미있고 익살스럽게 세상이나 인정을 비판ㆍ풍자하는 재담을 주고받으며 사람들을 웃겼던 만담(漫談)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니 만담은 요즘의 코미디나 개그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쯤 된다. 

  혹자는 만담이 일본의 만담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만담을 처음 시작한 것은 신불출(1905~1976)이다. 그는 만담이라는 용어만 일본에서 차용한 것일 뿐, 20세기 초 경기 명창이자 발탈과 ‘재담소리’로 유명한 박춘재(1881~1948) 재담(才談)의 전통을 이어받았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박춘재의 재담과 신불출의 만담이 다른 점이 있다면 박춘재가 전통적인 소재와 주제를 다루었다면, 신불출은 현대적인 소재와 주제를 다루었다는 것이 다르다. 

만담의 대가 장소팔과 고춘자
만담의 대가 장소팔과 고춘자

  풍자와 해학으로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 재담이 ‘재담소리’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전통공연예술, 특히 마당 공연예술에는 모두 다 있다고 봐도 된다. 판소리, 탈춤, 발탈, 박첨지놀음, 병신춤, 줄타기, 풍물, 거북놀이…. 어디든 재담이 녹아들어 있다.

우희(優戲)란 풍자와 해학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즐겁게 하던 광대들의 연희 

  재담놀이 이전에도 풍자와 해학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즐겁게 하던 광대들의 연희를 우희(優戲)라고 하였다. 우리나라 우희의 역사는 아마도 고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우희(優戲)를 학계에서는 소학지희(笑謔之戱), 조희(調戲), 화극(話劇)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희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배우들의 놀이라고 할 수 있다. 문헌상에 언급된 우희를 종합해보면 우희는 인물과 소리 등을 흉내 내거나 세태를 풍자하고 비판하여 사람들을 웃기는 광대들의 연극이라 할 수 있다. 

  각가지 동물의 울음소리, 기차 소리, 전투 비행기 소리, 기차 소리, 선박의 엔진 및 뱃고동 소리 등 성대모사의 달인이었던 코미디언 고 남보원 씨나, 사회, 정치 풍자프로그램에서 역대 대통령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사람들을 웃기는 성대모사의 달인 방송인 배칠수 씨도 우희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許筠, 1569~1618)은 자신이 지은 「장생전(蔣生傳)」에서 장생을 우희(優戱)에 뛰어난 재인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우희(優戱)란 요즘의 코미디와 같은 것으로서 판소리, 가면극(탈춤), 재담, 만담 등에 영향을 끼쳤다. 허균은 장생이 행한 우희(優戱)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장생은 기축년(1589년)에 서울에서 거지로 돌아다녔다. 그의 내력을 물으니, 부친은 밀양 좌수였고 그때 그를 낳은 지 3년 만에 모친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 (장생은) 그는 우스운 이야기를 잘했으며, 노래를 잘 불러 사람을 감동하게 했다. …… 그는 입을 찌푸리며 호각, 퉁소, 피리, 비파, 기러기, 고니, 두루미, 따오기, 까치, 학 따위의 소리를 짓되 참인지 거짓인지를 분간하기가 어려웠으며, 밤이면 닭 울음, 개 짖는 소리를 흉내 내면 이웃집 개와 닭이 모두 따라서 우짖었다.” 

영화 ‘왕의 남자’ 속의 공길(孔吉)은 실제 인물이었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장생(蔣生)과 공길(孔吉)이 사대부들 앞에서 해학적으로 쏟아내는 풍자와 독설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왕의 남자>가 스토리를 조선조로 설정하고는 있지만 우리가 속 시원하게 공감했던 것은 장생과 공길이 쏟아내는 풍자와 해학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도 그대로 부합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배우 감우성이 역을 맡은 장생과 배우 이준길이 역을 맡은 공길은 실존 인물일까? 한마디로 답은 “그렇다.”이다. 

  『연산군일기』 11년(1505) 12월 29일 조에 공길의 우희(優戲)에 대하여 다음과 기록하고 있다. 

“..... 이보다 앞서 공길(孔吉)이라는 우인(優人)이 『논어』를 외우면서 말하기를,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아버지가 아버지답고 아들이 아들다워야 합니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면 설사 쌀이 있은들 내가 먹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임금은 말이 공경스럽지 못하다고 해서 형장을 치고 먼 지방으로 귀양을 보냈다.”

 

영화 속 '공길이'

우희(優戲)는 판소리, 산대놀이, 재담소리의 핵심 요소

  우희(優戲)의 일종으로서 선비를 풍자하고 유가(儒家), 유학경전(儒學經典)을 희롱하는 내용으로 행하는 연희를 ‘유희(儒戱)’라고 한다. 유희는 문희연(聞喜宴)에서 반드시 연행되던 연희로서 오늘날 연행되고 있는 ‘판소리’와 가면극인 ‘산대놀이(탈춤)’, ‘줄타기’, 인형극인 ‘박첨지놀음’, ‘재담소리’ 등의 핵심 요소로서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숙종 조 실학자인 이익(李瀷, 1681~1763)은 자신이 쓴 《성호사설(星湖僿說)》 기예문(技藝門) 이유위희(以儒爲戱) 조’에서 당시의 지도층이었던 사대부 유학자들의 위선과 부정부패에 대하여 다음과 탄식하고 있다. 

“창우(倡優: 광대)들의 연희에는 반드시 유희(儒戱)라는 것이 들어 있다. 다 떨어진 옷과 찢어진 갓을 쓰고 꾸며낸 이야기와 억지웃음으로 온갖 추태를 연출하여 축하연의 즐거움으로 삼는다. 대저 요새 벼슬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유(儒)로써 이름을 삼으면서도, 천한 사람들로부터 이렇게까지 모욕당하니, 저 배우들은 책망할 것도 없으려니와, 요즘 사대부들이 태연히 수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 괴이할 뿐이다.”

이 시대의 우희(優戲)가 그립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해괴하고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매일 뉴스에 오른다. 때로는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일들 적지 않아 도를 닦는 심정으로 자신을 달래며 매일 매일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이럴 때 성대모사에 능한 방송인이나, 개그맨들이 늘어놓는 우스갯소리가 우리의 응어리진 마음을 속 시원히 풀어줄 수 있을 텐데 요즘은 그런 모습도 잘 보이지 않는다. 괘씸죄에 걸릴까 두려워 그런 건지. 아무튼 우회(優戲)가 그리운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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