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과기누설(72)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 기자】 옛 잉카 제국 사람들은 인간의 영혼은 피에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젊음의 비결은 바로 '젊은 피(young blood)'에 있다고 생각했다.

비단 잉카 제국만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메소포타미아, 심지어 중국에 이르기까지 이런 믿음의 흔적은 계속 나타난다. 순수한 혈통을 보존하려는 노력들도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한다.

그래서인지 아주 오래 천수를 누린 우리나라의 한 재벌 총수 가운데 한 사람이 한달에 한번씩 '젊은 피', 그것도 어린 처녀의 피를 수혈했다는 이야기가 그럴싸한 풍문으로 돌기도 했다.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신화와 전설에서 다시 과학의 무대로 등장

수년 전 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이러한 내용이 신빙성이 없다며 부정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주장은 바뀌기 시작했다.

최근 과학자들은 '젊은 피'의 수혈이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미신 같은 이야기가 과학적으로 옳다는 사실은 대부분이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젊은 피가 인간의 노화 방지와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젊은 피 속에 수명 연장의 열쇠가 있다는 것이다.

분명한 역사적인 기록이다. 1611년 헝가리 제국의 왕은 바토리 에르제베트 부인에게 종신 금고형을 선고했다. 

전쟁에서 사망한 남편의 재산을 상속받아 헝가리 최고의 부자였던 그녀는 합스부르크 왕조와 비견될 정도로 막강한 바토리 가문 태생이었으며 폴란드의 왕 스테판 바토리가 그녀의 외삼촌이었다.

이처럼 막강한 권력을 지닌 에르제베트에게 극형이 내려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의 죄목은 600여 명의 젊은 여성들을 살인한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젊음과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녀는 젊은 여성의 피를 욕조에 넣어 목욕하거나 심지어 피를 먹기까지 했다.

에르제베트가 이처럼 죽인 여자의 수는 1568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녀의 일기에는 1600년부터1610년까지 모두 612명의 여성을 죽였다고 쓰여 있다.

흡혈귀 전설의 모델 헝가리 바토리 에르제베트 부인의 이야기는 사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쇄살인마 가운데 한 사람으로 후세에 소위 흡혈귀 전설의 모델이 되었으며 ’피의 백작부인’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젊은 피 수혈이 왜 젊음을 되찾는 비결인가에 대해 그 이유를 밝힌 과학적인 연구가 있다. 2019년 미국 워싱턴 대학과 일본 국립장수의료연구센터의 공동 연구진에 의해서다.

연구팀은 노화로 감소하는 혈액 단백질 효소를 젊은 쥐에서 빼내 늙은 쥐에 주사하면 신체 활동이 활발해지고 수명이 연장되는 것을 밝혀냈다.

권위 있는 과학 저널 '셀(Cell)'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팀은 “어린 쥐 혈액에 풍부하게 있는 이남프트(eNAMPT)라는 효소를 나이 많은 쥐에게 옮길 경우 수명이 16% 연장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혔다.

연구팀은 "우리는 어린 쥐의 혈액에서 이남프트를 채취해 나이가 많은 쥐에게 준 결과 쥐들이 신체적 활동이 증가하고 수면 개선 등 현저한 건강 향상이 나타났다는 것을 목격했다"고 설명하면서 "우리는 건강한 노화를 향한 완전히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젊은 피 속의 ‘이남프트(eNAMPT)’ 효소가 회춘의 비밀?

노화는 각종 장기의 기능이 쇠약하게 돼 많은 질병의 원인이 된다. 연구팀에 따르면 그 원인은 노화로 인해 ‘NAD’란 물질이 감소하는데 이 NAD는 eNAMPT라는 효소에 의해 체내에서 합성된다.

연구팀은 4~6개월의 쥐에서 이 효소를 빼내 26개월의 암컷에 3개월 주사한 결과 수명이 16% 연장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털도 좋아지고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신체 활동 수준이 1년 젊어 질 수 있는 것으로 인간으로 치면 50대가 20대로 젊어 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항노화(anti-aging) 기술에 새로운 서막이 열린 것이다.

그래서 최근 의학자들은 생명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로 NAD를 주목하고 있다. NAD를 연구해 알츠하이머 등 노화에 따른 각종 관련 질병을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NAD 합성에 관여하는 효소와 NAD로 변환되는 NMN이나 NR이라는 물질 등이 항노화기법으로 연구되고 있다.

지난 2017년 11월 스탠포드 의대를 졸업한 33세의 젊은 연구원인 제시 카르마진이 미국 캘리포니아에 ‘암브로시아(Ambrosia)’란 벤처기업을 설립했다.

그리스어의 ‘불멸하다’라는 말에서 유래된 암브로시아는 원래 신들의 음식으로서, 이것을 먹으면 불로 장생하는 것으로 전해진 불로초를 뜻하는 말이다. .

카르마진은 이 회사에서 젊은 사람들의 혈액을 수집해 나이든 사람에게 주입하는 장사를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혈액에서 적혈구나 백혈구 등의 유형 성분을 제외한 액체 성분인 혈장을 팔았다. 처리되고 걸러진 젊은 사람들의 혈장은 35세 이상의 고객들에게 수혈된다.

불로장생은 인간의 영원한 꿈이다. 젊은 피를 수혈해 젊음을 되찾는 회춘을 위한 ‘젊은 피의’ 신화의 비밀이 과학을 통해 하나 둘 벗겨지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불로장생은 인간의 영원한 꿈이다. 젊은 피를 수혈해 젊음을 되찾는 회춘을 위한 ‘젊은 피의’ 신화의 비밀이 과학을 통해 하나 둘 벗겨지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당시 가르마진 대표는 16~25세의 젊은이들에게서 1리터의 혈액을 8000달러, 2리터는 1만 2000달러에 매입했다. 그 젊은 피에서 분리한 혈장을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했다. 두 번 투여 받는 데 드는 비용은 8000달러였다.

최근에는 젊은 쥐와 늙은 쥐의 혈관을 서로 연결해 사실 확인

만만찮은 비용이지만 그 피를 수혈하기 위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들이 넘쳐났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최근의 연구는 젊은 피 수혈이 수명 연장에 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더욱 생생하게 뒷받침해준다. 지난 7월 미국 듀크 대학 과학자들이 건강 저널 '네이처 노화'(Nature Aging)에 개재한 연구결과다.

이 대학의 제임스 화이트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 저널에서 젊은 쥐와 늙은 쥐의 순환계를 외과 수술로 연결하는 병체결합(竝體結合, parabiosis) 실험을 통해 이런 사실을 확인했고 밝혔다.

그들은 수혈을 받은 늙은 쥐의 노화 방지 효과는 젊은 쥐로부터 분리한 후에도 오래 지속됐으며 순환계를 공유한 기간이 길수록 노화방지 효과도 더 오래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화이트 교수는 "이 연구 결과는 젊은 쥐의 핏속에 활력을 높이는 성분과 화학물질이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이런 요소를 밝혀내면 치유 속도를 높이고 젊게 하며 수명을 연장하는 치료법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 연구에서는 젊은 쥐와 3주간 병체결합을 한 늙은 쥐의 조직과 세포에서 노화 방지 효과가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었다. 늙은 쥐가 실험 후 활동성이 좋아지고 조직에 회춘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화이트 교수는 "3주간 병체결합으로 이런 효과가 있다면 그 기간을 12주로 늘리면 어떤 효과가 있을지 궁금했다"며 "병체결합의 효과가 일시적인지 오래 지속되는지 확인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12주는 쥐의 수명인 3년의 약 10%에 해당한다.

이 연구에서 분명한 것이 있다. 젊은 쥐의 혈액 순환이 늙은 쥐의 건강을 증진하고 수명을 연장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 피의 어떤 요인이 그런 효과를 내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 요인들을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이 다음 연구 목표라고 연구팀은 결론을 내렸다.

물론 젊은 피 수혈을 둘러싸고 효과가 없다는 부정적인 연구들도 나왔다. 그러나 마치 괴기소설 ‘드라큘라’에서나 있음 직한 전설과 신화의 이야기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인간의 영원한 꿈인 불로장생을 위한 ‘젊은 피의’ 신화의 비밀이 과학을 통해 하나 둘 벗겨지고 있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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