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핵과학자회보(BSA), “인류 문명 여전히 위험에 노출” 경고
핵 위협, 기후 변화, 생명과학, 그리고 AI 등 파괴적 기술 위험 요소 많아
러 핵 사용 가능성, 이스라엘-중동 확전이 커다란 위협
원자폭탄 개발 프로그램 ‘맨해튼 프로젝트’ 주도한 오펜하이머가 이끌어

미국 핵과학자회보(BAS)의 관계자들이 23일(현지시간) '지구 종말시계'의 초침을 공개하고 있다. 이 시계는 지난해와 같이 자정 전 '90초'를 유지했다. 자정은 종말을 의미한다. [사진=NPR]
미국 핵과학자회보(BAS)의 관계자들이 23일(현지시간) '지구 종말시계'의 초침을 공개하고 있다. 이 시계는 지난해와 같이 자정 전 '90초'를 유지했다. 자정은 종말을 의미한다. [사진=NPR]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 기자】 ‘지구 종말 시계’, 또는 ‘운명의 날 시계’(The Doomsday Clock)는 핵무기, 또는 기후 변화로 얼마나 인류 문명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알릴 목적으로 제작된 시계, 그리고 이와 관련한 캠페인이다.

시계바늘이 자정을 가리키면 인류가 사라지는 시점으로 지구의 종말을 의미한다.

1947년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시카고대학의 과학자들이 만들어 격월로 발행하는 잡지인 미국의 핵과학자회보(BAS: The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가 핵전쟁으로 인류가 사라지는 시점을 자정으로 나타내는 시계를 회보 표지에 실었던 것이 시초다.

미국 핵과학자회보(BSA), “인류 문명 여전히 위험에 노출” 경고

이후 과학자들은 이 회보를 발행할 때마다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핵실험이나 핵무기 보유국들의 동향과 감축 상황 등을 파악해 분침과 초침을 지정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지구 멸망까지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지구종말시계의 초침이 작년과 같은 수준으로 자정에 가깝게 설정됐다.

BAS는 이날 지구종말시계의 초침을 지구 종말을 의미하는 자정까지 '90초'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와 같은 수준이다.

과학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종말에 가장 가까운 초침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를 나열했지만 더 가깝게 나아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지난해 90초와 변함이 없는 것은 세계가 안정적이라는 표시가 아니다. 자정 전 90초는 매우 불안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들은 새로운 핵무기 경쟁의 위협,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 변화 우려 등이 모두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말했다.

2007년부터 회원들은 AI, 기후변화 등 인류가 만든 새로운 위험과 가장 큰 위협인 핵전쟁의 영향을 고려해 왔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폭발 모습. 이후 과학자들은 가공할만한 위력의 핵으로 인해 지구의 종말을 우려해 왔다. [사진=위키피디아]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폭발 모습. 이후 과학자들은 가공할만한 위력의 핵으로 인해 지구의 종말을 우려해 왔다. [사진=위키피디아]  

핵 위협, 기후 변화, 생명과학, 그리고 AI 등 파괴적 기술 위험 요소 많아

BAS는 “중국, 러시아, 미국이 모두 핵 무기를 확장하거나 현대화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지출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이는 "실수나 오산으로 인해 항상 존재하는 핵전쟁의 위험을 가중시켰다”고 말했다.

BAS는 또한 올해 시계를 설정한 위험의 근거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또한 "항상 존재하는 핵 고조의 위험"을 야기했다고 지적했으며,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 부족과 새로운 생물학 기술 및 AI의 "오용"과 관련된 위험도 언급했다.

BAS는 2020년부터 100초 전으로 유지해 오다 지난해 90초로 당긴 바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핵 사용 우려가 고조된 데 따른 것이다. 그들은 핵 위협 외에도 기후 변화, AI와 새로운 생명 공학을 포함한 파괴적인 기술 등을 들었다.

BAS의  레이첼 브론슨(Rachel Bronson) 회장은 BBC와의 회견에서 "영국을 포함한 모든 주요 국가는 마치 핵무기가 아주 오랫동안 사용될 수 있는 것처럼 핵무기에 투자하고 있다. 지금은 매우 위험한 시기다. 지도자들은 책임감 있게 행동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브론슨 회장은 "전 세계 분쟁 지역은 핵확산 위협을 안고 있고, 기후 변화는 이미 죽음과 파괴를 야기하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AI와 생물학적 연구와 같은 파괴적인 기술은 안전장치보다 더 빨리 앞서 나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종식은 요원해 보이며,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은 여전히 심각한 가능성으로 남아 있다"며 "지난 1년 동안 러시아는 수많은 우려스러운 핵무기 사용 신호를 보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핵 사용 가능성, 이스라엘-중동 확전이 커다란 위협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핵보유국으로서 이스라엘은 분명 지구 종말 시계와 관련이 있다"며 "특히 이 지역에서 분쟁이 더 광범위하게 확대돼 더 큰 전쟁이 일어나고, 더 많은 핵보유국이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기후 변화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2023년 세계는 기록적으로 가장 더운 해를 겪었고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도 계속 증가하면서 미지의 영역에 진입했다"며 "전 세계와 북대서양 해수면 온도는 기록을 경신했고, 남극 해빙은 위성 데이터가 등장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에는 청정에너지에 대한 신규 투자가 1조7천억 달러에 달했지만, 약 1조 달러에 달하는 화석연료 투자가 이를 상쇄했다고 덧붙였다.

수년 동안 종말시계 설정에 관여해 온 러시아 핵무기 전문가 파벨 포드비그(Pavel Podvig)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핵 담당 군대에 경보를 발령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지도자의 위협에 세계는 커다란 공포의 반응을 보였다. 푸틴은 이러한 의도적인 계산을

그는 이어 "러시아 대통령은 이러한 발언을 함으로써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개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는 올바른 계산이었다. 이것이 억제가 작동하는 방식이다”고 지적했다.

BBC에 따르면 ‘최후의 심판의 날’의 시계는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을 이끈 ‘불운의 물리학자’로 불리는 로버트 오펜하이머(J. Robert Oppenheimer)와 동료 미국 과학자들에 의해 1947년에 만들어졌다.

당시 최고의 핵물리학자로 손꼽혔던 로버트 오펜하이머(오는쪽)과 알버트 아인슈타인.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그램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한 오펜하이머는 이후 BAS를 설립해 핵무기로 인한 인류 문명의 위험을 지적해 왔다. [사진=위키피디아]  
당시 최고의 핵물리학자로 손꼽혔던 로버트 오펜하이머(오는쪽)과 알버트 아인슈타인.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그램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한 오펜하이머는 이후 BAS를 설립해 핵무기로 인한 인류 문명의 위험을 지적해 왔다. [사진=위키피디아]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그램 ‘맨해튼 프로젝트’ 주도한 오펜하이머가 이끌어

핵 전쟁 위기를 경고하기 위해 미국 시카고 대학 핵물리학자회를 중심으로 오펜하이머, 아인슈타인 등 원자폭탄 개발프로그램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주요 과학자들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도시에 투하된 핵폭탄의 파괴적인 영향을 목격한 그들은 대중에게 경고하고 세계 지도자들에게 핵무기가 다시는 사용되지 않도록 압력을 가하고 싶었다.

그동안 시계바늘이 25번 움직였다. 1947년 처음에는 7분 전 자정에 시작되었다. 미소 간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이 체결되면서 냉전이 끝난 1991년에는 자정 17분 전으로 가장 늦춰진 바 있다.

그러나 이후 1995년 미국과 러시아가 STARTⅡ를 비준하지 않자 14분전으로 앞당겨졌고, 1998년엔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하면서 9분전으로 앞당겨졌다.

지구 종말 시계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가장 큰 위험은 핵이었고, 2007년 처음 기후변화가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후 핵무기가 사라지지 않고 기후 변화와 코로나19 등이 위협이 이어지며 2019년 시계는 자정 2분 전으로 설정됐다.

자정에 가장 가까운 시기는 1953년으로, 2분전이다. 미국이 1952년말 수소폭탄의 실험에 성공하고 소련이 이를 뒤따르자 시계는 2분전을 가리켰다.

이어 2020년 이란과 북한의 핵 프로그램 등을 이유로 자정 전 100초로 이동했고 지난해 90초 전까지 앞당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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