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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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 최근 발간된 ‘결국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들의 비밀 (원제: Influence is yoir superpower)’이라는 책에서는 대니얼 카너먼의 시스템1과 시스템2라는 명칭이 적절치 못하다고 얘기하면서, 이를 악어 뇌 모드 (Gator mode)와 판사 뇌 모드 (Judge mode)라고 부르는 편이 낫다고 했다.

악어 뇌,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는가?

포유류, 영장류로 진화하기 전 단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뇌의 형태를 파충류가 지녔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 때문에 뇌를 세 영역으로 나눴을 때, 기본적인 생존에 대한 행동과 생각이 나오는 영역을 ‘파충류의 뇌’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편, 파충류의 대표 명사가 바로 악어인 지라, 파충류의 뇌를 악어 뇌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가 조금만 검색해 보면 악어의 뇌 크기는 호두 크기이며 그 무게는 8g 내외로 큰 쿠키 하나보다 무게가 덜 나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습 능력도 있고 간단한 숫자도 셀 수 있다고 한다.

아무튼 시스템 1과 유사하게 ‘악어 모드’ 또한 빠르게 이뤄지면서 신경을 거의 안 써도 되는 인지를 담당하여 순간적인 감정 및 인식, 습관 등과 관련 있다고 한다.

판사 모드는 시스템 2와 유사한데, 엄청나게 복잡한 계산을 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정치에 관한 논쟁을 하는 등 골똘히 생각해야 하는 인지를 담당한다.

그리고 사람마다 달라서 어떤 사람은 악어모드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판사모드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우리가 악어모드에 생각보다 더 영향을 받는다는 재미있는 실험도 있다.

‘사법 판결과 관계없는 요인들 (Extraneous factors in judicial decisions)’이라는 2011년도의 연구를 보면 시스템 2와 같은 판사 모드가 아닌 진짜 판사들의 악어모드가 나온다.

이스라엘에 근무하는 판사들은 하루에 3번의 공판을 진행하는데 3번의 공판 사이에는 두 번의 식사 시간이 있고 또, 각 공판에서는 몇 개의 사건에 대한 판단을 하게 된다.

즉 첫 번째 공판에서 몇 개의 사건을 진행하고 식사하고, 두 번째 공판에서 몇 개의 사건을 판단하고, 다시 식사한 후 세 번째 공판에서 몇 개의 사건을 판단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식사가 끝난 후 바로 진행된 공판에서 피의자가 가석방될 확률은 약 65%에 가깝게 나타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0%에 가까워지고, 다시 식사한 후 맡는 처음 사건에서 피의자가 가석방될 확률은 65%에 가까이 올라가나, 그 후에 조금씩 내려가 0%에 가까워진다는 결과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충분히 먹고 쉰 후 컨디션이 좋아진 상태에서는 매우 집중하여 사건을 다루게 되나, 조금씩 지쳐가고 피로와 허기를 느낄 때가 되면 악어모드가 작동하여 본능에 따라 조금 더 쉽게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범죄 사실로 법정까지 온 피의자에 대해 심사숙고하지 않고, ‘쟤는 기소될만한 이유가 있었으니 기소되었겠지’라고 판사가 간단하게 생각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왜 이렇게 장황하게 악어모드, 얘기를 길게 설명했을까?

행동경제학에 대한 글을 쓰면서 우리가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의 대부분은 시스템2가 작동해야 하는 시점에 시스템 1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를 악어모드, 판사모드로 확장하면 판사 뇌 모드가 악어 뇌 모드의 결정에 이유를 붙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르게 풀어 보면 우리가 냉철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그리고 골똘하게 계산하고 추론하고 논리적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하는 그 순간조차도 우리는 계속 악어 뇌 모드, 즉 본능과 편리함의 영향을 계속 받고 있다고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나와 상대하는 그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모두 악어모드가 주는 본능의 편리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악어모드에 사로잡힌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대상이 악어 모드에 사로잡혔을 뿐만 아니라 악어와 같은 흉포함을 지닌 사람이라면 어떨까?

그것도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 갇혀서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약점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 설득에 관한 많은 훌륭한 책들은 그 사람들을 사랑하고, 더 많이 관심을 가져주며, 상대방이 스스로 자신의 모순을 깨닫게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게 잘 안된다.

심지어 내가 그러한 행동을 하면, 그걸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이럴 때는 행동경제학자로서의 신념을 떠나서 한비자를 일독하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도 든다.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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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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