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전기차는 인공지능의 희생양이 되고 말 것인가?

[사진=픽사베이/이미지 편집=뉴스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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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윤한홍 경제에디터 】 지난 연재기사들에서 여러 번 지적해 왔던 전력공급에 대한 우려를 이제는 테슬라자동차의 오너인 엘론 머스크도 심각하게 시작한 것 같다.

며칠 전, 그는 독일 보쉬사에서 개최한 컨퍼런스(Bosch Connected World Conference)에서 “인공지능과 전기차가 동시에 보급되면서 전력과 변압기에 가하는 압박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긴장을 세계 전력 인프라에 가하고 있다”고 하면서 “당장 내년인 2025년부터 전력부족으로 이러한 (인공지능과 전기차의) 성장의 한계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발언의 영향으로 지난 며칠간 LS일렉트릭(010120)이나 가온전선(000500) 등 국내 전력장비 관련 기업들의 주가도 이러한 엘론 머스크의 발언을 배경으로 급등세를 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그는 최근 테슬라를 비롯한 세계 전기차 업계가 부진해진 상황에서, 전기차 사업을 위협하고 있는 여러 요인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다.

최근 세계 언론들이 자주 보도하고 있는 전기차 수요성장세 감소현상과 덤핑경쟁은 단기적 위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단연코 더 심각한 구조적 위험요인은 바로 전력부족과 그로 인한 전력가격의 추가폭등 가능성이다. 전력시장의 특성상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작은 전력공급 부족으로도 큰 폭 가격상승이 가능하다는 것은 경제학적 상식이고, 현실적 사례로서 최근 EU 전력도매시장에서 자주 관찰된 바 있다.

폭등한 전력가격은 당연히 전기차 소유자들의 유지비 부담을 폭증시킬 것이고 이는 전기차 구매포기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여러 번 말했지만 각국 정부들도 가계 생활비 부담우려로 전력소비 전반에 대한 억제정책을 실행할 수도 있다. 중복을 무릅쓰고 지난 1월 30일 기사에 게재했던 EU의 실제 전력가격 변동성 그래프를 다시 한번 참고해 보자.

◇EU 주요국 전력시장 가격 및 변동성 추이

[그래프rm=Red Eléctrica de España]
[그래프rm=Red Eléctrica de España]

러-우 전쟁 이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전력가격의 급격한 변동성확대는 풍력, 태양광 등 친환경 전력원의 확대와 함께 석탄 및 가스화력 발전소의 파산, 원자력발전소의 폐기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EU 주요국가들의 전력공급 부족량은 대부분 한자릿수 퍼센트 정도에 불과했지만 가격상승은 10배 이상의 폭으로 나타났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0% 공급부족이 1,000%의 가격상승으로 나타나는 식이었다. 좀더 알기 쉽게 말해보면 1%의 공급부족이 100%의 가격상승을 유발했다는 놀랍고도 공포스런 경험이었다.

현재 EU각국은 전기차 보급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선도지역이지만, 아직 인공지능 사업은 시작도 못하고 있다. 3년 전에 비해 두세배의 전력가격이 일상화된 사정을 감안했을 때 인공지능 서버에 투자할 기업이 거의 없는 것이다. 이에 관련해서 EU 각국 언론들은 ‘인공지능 투자공백으로 인한 유럽의 미국 디지털 식민지화’를 걱정하는 기사를 많이 내고 있을 정도이다.

미국에서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에 가장 많은 전력을 공급하고 있는 도미니언에너지(Dominion Energy Inc.)에 따르면 과거 2013년~2022년 구형 데이터센터 전력판매량 공급사업은 500% 넘게 성장했다고 한다. 또한 향후 2030년까지 AI가 중심이 되는 신형 데이터센터에 공급할 전력량은 현재 19GWh에서 35GWh로 80% 이상 추가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최신형 대형원전의 용량이 1GWh남짓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 전체에서 2030년까지 30기 이상의 대형 원전이 인공지능 전담 전력공급에 할당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수치는 작년에 추정한 것이라서 매우 보수적으로 평가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마도 40기 이상의 원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최대 원전보유국중 하나인 중국이 보유한 전체 원전의 수가 50기 정도라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얼마나 큰 전력이 인공지능 기반 데이터센터 운영에 소요될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 그나마 미국은 현재 낮은 천연가스 가격 등으로 에너지 사정이 매우 양호하지만 EU의 경우는 사정이 미국에 비해 훨씬 열악하다.

전기차 운용에 필요한 전력규모는 아직까지는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에 비교하면 작은 편이다. 그러나 미국정부(EIA) 전망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2035년까지 원전수로 환산해서 100기 이상의 신규원전이 전기차 운용에 필요할 정도라고 한다. 앞의 도미니언에너지의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전망과 합해 어림짐작해 보더라도 미국이 향후 10년간 200기 정도의 원전 또는 그와 비슷한 규모의 대체 발전소를 신규 확보해야만 전기차와 인공지능 양자를 모두 원활히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 비해 약간 작은 EU의 전체 경제규모를 감안해 볼 때 EU도 향후 10년간 150기 이상의 원전에 해당하는 정도의 신규 발전용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어림 짐작을 해볼 수 있다. 단, 이는 전기차와 인공지능 두 가지만을 위한 숫자이고 여타 경제부문의 전력수요 증가전망은 제외한 수치이다. 또한 발전소만이 아니라 송배전분야 인프라 확충도 엄청난 난제가 될 것이다. 과연 이 정도의 전력인프라 투자가 가능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자연스럽다.

풍력, 태양광 같은 친환경 전력도 기획과 건설에 5년은 기본이고 원전은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게다가 선진국 전력기업들도 전력가격 상한제 등 규제로 적자에 허덕이고 있어서 투자여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전력인프라 투자확대 소식은 별로 들리는 바가 없다. 전력요금이 가계생활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여서 일종의 공공재처럼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윤한홍 경제에디터
윤한홍 경제에디터

이러한 사정으로 현재 진행되는 프로젝트들의 진척은 매우 더디었고 엘론 머스크의 위기감은 매우 당연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전기차 보급의 선구자 역할을 담당했던 EU가 현실적 제약조건 때문에 인공지능 산업을 본격 도입하지 못할 것 같기도 하지만, 반대로 각국 정부들이 국가경쟁력 유지를 위해서 인공지능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을 바꾼다면 아마도 그 희생양으로서 전기차를 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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