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 = 기획재정부 홈페이지
[트루스토리] 박영식 기자 =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막’을 걷어 내겠다는 박근혜정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기획재정부에서 정규직을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정리해고 요건 완화는 양극화 해소라는 우리 사회의 과제에 대한 ‘정면 도발’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크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 24일 기자간담회에서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대해 언급하던 중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고용의 유연성이 균형을 잡는 쪽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방향을 잡고 있다”면서 “구체적으로 정규직 해고에 대한 절차적 요건을 합리화하는 내용들이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재벌 대기업이 정리해고를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해고가 가장 쉬운 나라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실제로 정규직에 대한 정리해고도 가장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 결과 지금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인구의 1/3에 달하고, 월급쟁이 1900만 중 절반이 월 200만원도 채 되지 않은 상태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부총리는 25일 출입기자단 정책세미나에서 작심한 듯 정규직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정규직을 한번 뽑으면 60세까지 정년을 보장하고 임금피크제도 잘 안 된다”며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로 기업이 겁이 나서 인력을 못 뽑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대기업의 손을 번쩍 들어준 셈이다.

일단 여론이 어떻게 나오자 한번 말을 쏟아낸 뒤 여론이 악화일변도로 치닫자 그 이후에는 ‘함구’하고 있는 형국이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보다 정규직 해고가 쉬워야 한다는 게 박근혜 정부의 인식으로 보인다. 한입으로 고용률 70%를 말하고, 또 한입으로 정리해고를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파렴치한 일이라는 목소리가 야권에서 나오는 이유다.

고임금, 비정규직 진입 차단 등과 같은 정규직 보호 장치가 현재처럼 고착화 돼 있다는 점에선 심각성이 크다. 때문에 사회적 ‘논의’가 당장 시급한 실정이긴 하다. 대기업 직장인들의 인건비가 천문학적이고, 정규직이 비정규직에 비해 ‘과도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점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재벌의 적통임을 노골화하는 이러한 행태 속에 정부가 내놓는 노동자 정리해고 요건 완화는 이 정부가 과연 시대적 과제인 사회적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는 정부인지 의문부호를 갖게 한다는 지적이다.

통합진보당은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이처럼 ‘정규직 과보호론’을 꺼내들고 나선 것과 관련,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로 기업이 겁이 나 인력을 뽑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라,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우리 노동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마저 정부가 거부하며 벼랑 끝으로 떠밀고 있는 참혹한 상황”이라고 일갈했다.

홍성규 대변인은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사 결과로도 한국의 정규직 고용보호지수는 34개 회원국 중 고작 23위에 머물러 있다. 도대체 어디에 ‘과보호’가 있다는 것인지 도통 모를 일이다. 인력을 뽑지 못할 정도로 겁이 난다는 재벌대기업들이 곳간에는 천문학적인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고 있다는 말인가”라고 따졌다.

그는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노동시장 개혁이 성공한 나라로 독일, 네덜란드 등을 들었다는데, 제대로 알고 있기나 한지도 의심스럽다”면서 “노동기본권이 철저하게 존중되고 사회안전망이 구축된 상황에서 노사정이 꾸준히 논의하면서 대타협을 이루어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그는 “실질적으로 기업의 활동이 가능하게 하는 우리 노동자들의 존재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이런 발언은 설사 전경련에서 했다고 하더라도 호된 비판을 받을 말”이라며 “‘정규직 해체위협론’이 ‘경제정책방향’이라니, 더군다나 ‘비정규직 종합대책’의 기조라니, 가당치도 않을 뿐더러 절대로 용납할 수도 없다”고 반발했다.

김제남 정의당 원내대변인도 “기재부의 최고수장은 이른바 ‘친박실세’, ‘실세장관’이라 불리는 최경환 경제부총리다. 기재부가 밝힌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가 박근혜 정권의 의지로 비쳐지는 대목”이라며 “박근혜 정권은 최근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을 충돌시키더니, 이번에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충돌시키고 있다. 어떻게 매사가 이렇게 조삼모사식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그는 또 “기업들은 이미 근로기준법을 악용해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손쉽게 해고를 자행하고 있다. ‘정리해고를 하기 전에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법조항은 모호하기 짝이 없어, 기업들이 ‘노력했다’고만 하면 법원으로부터 그대로 인정되는 일이 빈번하다”면서 “대표적인 사례가 쌍용차 불법해고에 대한 최근 대법원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판국에 정규직 해고요건을 얼마나 더 완화하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우려스럽다”며 “기재부는 위험한 역주행 발상을 즉각 철회해야 하며, 최경환 부총리는 가뜩이나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국민에게 사과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민주노총과의 정책간담회를 갖고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정규직 해고절차를 완화하겠다고 한다. 정규직을 기준으로 삼아서 비정규직에 처우를 개선해도 모자를 판에 거꾸로 쉽게 해고돼는 정규직을 만들겠다고 한다”며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하고 있고,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의 외주화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박근혜 정부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풀어내야 하는 사안으로 이를 위해 사회구성원 전체가 함께 논의해야 하는 과제를 이 정부는 ‘기업의 애로’ 정도로 간주하고 있다”며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현실을 몰라서 하는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정부가 관철시키고자 하는 어떤 것을 재차 공개한 것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독립된 노동정책도, 고용정책도 없으며, 노동과 고용이 경제정책 중 하나이자, 규제완화의 일환으로 간주하고 있는 작금의 정부가 개탄스럽다”며 “어떠한 미사여구로도 비정규직 확대와 정리해고 요건 완화를 포장할 수 없다. 당장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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