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부장 ‘역사적 재평가’ 움직임 활발, 김재규 통해 최순실과 박근혜를 보다

 

[트루스토리] 김수정 기자 =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쏜” 김재규 부장.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결론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갈수록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뜨겁다.

그도 그럴 것이 김재규 부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인 최순실씨의 아버지 최태민과 박근혜 영애와의 이상하고 수상하고 기괴하고 잘못된 만남의 실체, 즉 커넥션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

지난해 11월 26일 방송된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편에 따르면 당시 김재규 부장을 변호했던 강신옥 변호사는 인터뷰에서 “김재규 부장의 면회를 갔더니 최태민 목사 얘기를 꺼냈다”며 “박정희 대통령을 쏜 이유로 구국여성봉사단의 망국적 전횡도 작용했다며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면 교통사고라도 내서 처치해야 할 놈이라고 분개했다”고 말했다.

같은 시기, 시사주간지 ‘시사인’ 보도에서도 같은 주장이 나왔다. 시사인 보도에 따르면 김재규 부장이 사형을 당하기 4개월 전인 1980년 1월 28일, 강신옥 변호사는 김재규 부장을 면회 갔는데, 여기서도 그는 똑같은 이야기를 하며 분개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구국여성봉사단 총재는 최태민이고 명예총재는 박근혜였다.

이들 매체 뿐 아니라 복수의 언론 보도들을 종합하면 당시 중앙정보부 등이 청와대에 보고한 기록물에도 이 같은 내용들이 증언돼 있다. 당시 기록물에 의하면, 최태민은 당시 구국여성봉사단 총재를 맡으면서 박 대통령의 권세를 이용해 기업을 갈취하고 여성 정치 지망생들을 성추행했으며, 심지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최태민의 이러한 비리를 알고도 구국여성봉사단을 정리하기는 커녕 최태민을 총재직에서 명예총재로 바꾸고, 박근혜 현 대통령에게 직접 총재직을 맡겼는데 이에 분개한 김재규가 10.26 사태(일각에선 거사라고 부름)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지난 1979년 10.26사태 주역인 김재규 부장. 결국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다”는 김재규 부장에 대한 재조명 움직임이 각종 포털과 커뮤니티, 그리고 시민단체와 종교계 등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되고 있다.

즉 최근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민주주의를 앞당긴 인물’로 보는 평가가 최순실 게이트 속에서 그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김재규 부장을 법정에서 변호했던 안동일 변호사에 따르면 김재규는 ‘10.26 사태’가 벌어지기 반년 전(1979년 3월과 5월), 자신의 붓글씨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민주 민권 자유 평등’이라는 말을 남겼고 이를 자택에 보관해왔다. 김재규 부장이 ‘민주주의’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물론 안 변호사는 당시 재판에서 이 붓글씨를 증거로 제출했으나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 당시 재판은 짜여진 시나리오대로 움직인 ‘정치 재판’이었기 때문이다.

10·26 직후 박정희에 충성할 수밖에 없었던 ‘군인들에 의한’ 재판으로 인해 사형된 인물은 김재규, 박선호, 박흥주, 이기주, 유성옥, 김태원 등이다. 10.26 사태가 발생한 뒤 바로 재판에 들어갔고, 곧바로 사형을 확정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을 사살하고 1980년 사형된 것이다.

그리고 이후 그들을 중심으로 조작되고 서술된 ‘더러운’ 역사는 김재규를 ‘민주투사’로 부르는 것을 의도적으로 거부했고, 오직 그를 ‘파렴치한 인물’로 묘사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면서 김재규 부장을 희대의 ‘사기꾼’ ‘패륜아’로 만들었다. 심지어 부정축재자로도 묘사됐다.

전날 방송된 ‘그알’에 따르면 박정희 살해 당시 신군부는 김재규에 대한 대통령 살해혐의와 별도로 그의 보문동 자택에서 고미술품, 귀금속을 포함한 고서화 1백여 점이 발견됐다고 밝히고 그를 부정축재자로 발표했다. 이후 김재규가 모든 재산은 기부채납형식으로 국가에 환수됐고, 그가 모은 고가 미술품 속에 1977년 작으로 표기된 천경자의 미인도가 있었다는 것.

이와 관련 검찰은 80년도 김재규 전 중정부장에게서 환수한 미인도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관됐다는 소장이력을 근거로 ‘미인도’가 진작임을 주장했다. 또한 과거 그의 보문동 자택을 방문했던 미술전문가 김 모 씨가 응접실 벽면에 걸려있던 ‘미인도’를 본적이 있다는 진술이 문제의 그림이 집에 있었다는 유족들의 진술과 일치한다며 ‘미인도’ 진위에 대한 논란을 일축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과 만난 유족들과 개인비서 최종대 씨는 김 모 씨의 주장을 부정하며 신군부가 ‘미인도’를 천경자 화백의 작품이라고 단정한 이유가 김재규 전 중정부장을 부정축재자로 몰아야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분명한 건, 김재규는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함세웅 신부는 과거 “유신의 그림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신의 핵 박정희를 제거한 김재규 장군의 뜻을 확인해야 한다”며 “김재규의 참뜻을 확인할 때 우리는 비로소 박정희의 모든 암울한 유산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민주주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대 여론 역시 존재한다. 박정희를 사살한 김재규는 결코 민주화 투사가 아니라 박정희의 정권의 보살핌을 받아가며 출세길을 달려 왔던 인물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유신체제의 일원으로서 수많은 비리의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역사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일부에선 김재규가 당시 ‘발작증’을 일으켜 박정희에게 총격을 가했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각종 영화 등을 통해 구성된 당시의 사태에선 김재규는 철저히 계획적으로 박정희를 살해했지만, 박정희를 보호하는 측에선 ‘발작증’ 난동 정도로 의미를 축소하고 있는 것이다. 김재규가 사형선고를 받았을 당시, 대부분 판사들은 내란음모라며 전원합의에 의해 사형을 결정했다.

하지만 소수는 “그 당시 청와대가 있던 중앙정보부 사람들 몇 명으로 어떻게 내란이 이뤄질 수 있느냐”며 “살인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김재규’에 대한 평가는 한 가지 사안으로 접근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 다양하고 심층적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더욱 분명한 건 김재규 부장을 박정희 시대와 박근혜 시대가 일방적으로 정한 ‘잣대’로 평가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만약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었을까. 여전히 그들은 ‘국정농단’을 즐기며 제2의 박근혜를 만들기 위해 올인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는 또다시 무덤에서 나와 한국사회를 지배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때도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2017년에도 유신체제의 수혜자들은 이 땅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나아가 권력을 계속 장악하기 위해 더 지독한 국정농단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뜻이다.

김재규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3심 법정에서 졌다. 결국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이라며 “하지만 나는 역사의 법정인 4심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사안’으로서 김재규를 평가해선 안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를 결코 민주화 열사라고 볼 수 없지만,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박정희와 최태민, 그리고 박근혜와 최순실이 과거에 그리고 현재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밝혀내야 하고 또 법적 심판과 함께 역사적 심판도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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