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에게 총을 겨누지 말라고 지시하며 밥을 사줬던 안병하 경무관, 그는 빨갱이였을까

 
[트루스토리] 김수정 기자 = 안병하 경무관에 대한 관심이 그야말로 뜨겁다. 안병하 경무관이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끝까지 ‘이웃’과 ‘시민’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 따스한 인간애를 보여줬기 때문.

6·25 전쟁 당시 무공을 세우고 경찰이 돼서는 북한 무장공비 소탕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한 양양 출신 고(故) 안병하 경무관은 1979년 전남 경찰국장에 부임한 뒤 이듬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벌어지자 경찰이 시민을 과잉 진압하지 않도록 지시했다는 이유로 강제 해임되고 이후 보안사에서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런 안병하 경무관은 결국 1988년 세상을 떠났으며 2005년 서울 국립현충원에 유해가 안장되고 2006년에는 국가유공자로 등록됐다.

안병하 경무관이 이처럼 주요 포털 ‘실검’ 1위에 올라선 이유는 22일 방송된 MBC ‘서프라이즈’를 통해 5.18 전남 경찰 국장이었던 안병하 경무관(당시 국장)의 경찰 정신이 전파를 탔기 때문.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한국경찰의 과거와 현재에서 보자면, 안병하 경무관은 ‘진짜 경찰’이고 진정한 ‘민중의 지팡이’였던 셈이다. 

방송분에 따르면 안병하 경무관은 5·18 광주민주항쟁 당시 광주지역 치안책임자로 신군부의 강경진압 요구를 끝내 거부했다가 혹독한 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숨졌다. 안병하 경무관은 군인으로 6.25전쟁에 나가 춘천대첩에서 큰 공을 세운 것은 물론이고, 경찰에 들어와 수많은 무장공비 소탕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훈장도 많이 받고 간부직까지 올랐지만 반공으로 먹고 살았던 ‘비겁하고 더러운’ 권력은 자신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빨갱이 사냥’에 나선 반공적 인물도 자신들의 뜻에 맞지 않으면 또다른 빨갱이로 만들어버렸던 셈이다.

안병하 경무관은 1980년 5·18 광주민주항쟁 당시 전남도경 국장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을 소탕하기 위해 군 병력 투입을 요청하라거나 발포명령을 내리라는 신군부의 강요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군인이 시민들에게 총을 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 결국 안병하 경무관은 경찰 전원으로부터 무기를 회수해 시민들과 무력충돌을 피했다.

하지만 광주항쟁 당시 시위진압 경찰관에게 총기회수 명령을 내리고 시민에게 편의를 제공한 이유로 해임된 뒤 안병하 경무관은 이후 보안사에서 고문을 당한 뒤 후유증으로 숨졌다. 그리고 전두환 정권의 피를 이어받았던 역사는 “5·18 당시에 사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순직 대상자에서 제외시켰다.

분명한 건, 안병하 경무관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이름 없이 쓰러져간 수많은 5월 영령들처럼 반드시 역사적으로 재조명을 받아야 하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전두환 정권을 계승한 정권의 입장에선 안병하 경무관은 역사의 반역자일 수 있겠지만, 그리고 5.18을 여전히 북한군에 의한 소요사태로 규정하는 수구우익집단의 시각에선 ‘빨갱이’로 보일 수 있겠지만, 고 안병하 경무관은 오직 시민을 생각했던 시민의 경찰이었다는 점이다. 역사의 죄인이 되는 길을 결코 선택하지 않았던 셈으로, 역사가 그렇기 때문에 그를 다시금 ‘역사적 인물’로 안아줘야 한다는 목소리는 그래서 나온다.

실제로 도로에 죽어가던 시민들의 피가 얼룩졌던 참혹한 그 당시, 안병하 경무관의 지시로 인해 광주경찰은 계엄군에 의해 부상당한 시민들의 치료는 물론이고 직접 식당에 데려가 밥을 사주고, 옷도 갈아입히는 등 시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올인했었다.

사진 = 안병하 경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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