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 태평가 공연사진. [사진=하응백 문화에디터]
가곡 태평가 공연사진. [사진=하응백 문화에디터]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중학교 때이던가? 음악 시간이면 선생님은 피아노를 치고 아이들은 한 소절씩 따라서 노래를 불렀다. “성문 앞 샘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로 시작되는 노래를 배운 기억도 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찾아보니 이 노래는 독일 시인 빌헬름 뮐러의 ‘겨울 나그네’라는 연작시에 역시 독일의 작곡가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연가곡 중의 하나라고 되어 있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와 같은 여러 동요를 배우다가 중학교 음악 시간에 ‘가곡’을 배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두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 가안다/ 물 맑은 봄 바다에 배 떠나 간다...”와 같은 ‘사공의 노래’나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와 같은 ‘동심초’도 배웠던 기억이 난다. 학기말이 되면 음악은 실기 시험이 있어 노래 연습도 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학교에서 배운 가곡들은 음과 노랫말이 기억이 난다. 그 후에도 ‘그리운 금강산’이나 엄정행이 불렀던 “오오 내 사랑 목련화여/ 오 내 사랑 목련화여”로 시작되는 ‘목련화’, 안주가 된 북어를 찬양한 ‘명태’, 쓸쓸한 노랫말의 ‘비목’ 등은 생각나는 노래이기도 하다.

요즘이야 음악교과서에 국악 관련 사항이 많이 추가되었지만, 30대 이상의 성인들에게 가곡(歌曲)이라고 하면, 위에 열거한 서양 가곡이나 한국 근현대 가곡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슈베르트가 27세의 나이에, 사랑에 실패한 청년의 괴로움이 진하게 담겨 있다고 알려진 뮐러의 시에 감동받아 24곡의 연가곡으로 작곡했다는 ‘겨울나그네’가 발표된 1827년  훨씬 이전, 이미 우리나라에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연속된 노래(가곡)가 있었다. 시조시의 노랫말에 곡을 붙인 한국 전통의 성악곡인 가곡이 있었던 것이다(물론 서양 가곡도 그 연원을 따져 올라가면 그리스 시대에까지 이른다). 

음악학자들에 의하면 우리 가곡의 역사는 “고려 말기에서 비롯되는데, 『양금신보(梁琴新譜)』에 의하면 가곡의 원형인 「만대엽(慢大葉)」, 「중대엽(中大葉)」, 「삭대엽(數大葉)」이 모두 고려 시대 음악인 「정과정(鄭瓜亭)」 삼기(三機), 즉 만기(慢機), 중기(中機), 급기(急機)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가곡(歌曲),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이 가곡이 여러 변화 단계를 거치면서 현대에 이르게 되는데, 이 중에서 상당히 중요한 것은 숙종 조 이후부터 편찬된 여러 가집(歌集)의 출현이다. 1728년에 김천택(金天澤)은 『청구영언』을 편찬했고, 이 『청구영언』은 현전하는 최고 오래된 가곡 노랫말 책이다. 김천택은 1690년대 정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음률과 문예에 뛰어난 예인(가객)이었다. 『청구영언』은 여러 판본이 있지만 육당 최남선 본에는 시조 999수와 가사 16편이 실려 있다. 

그런데 보통 헷갈리는 것이 바로 『청구영언』에 시조가 실려 있다는 대목이다. 시조는 시조이거나 시조창일텐데 가곡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바로 이 부분이다. 중고등학교에서 『청구영언』은 최초의 시조집이라고 가르치지, 그 시조집에 실려있는 시조가 가곡의 노랫말이라는 것은 대부분 가르치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우리 가곡에 대한 인식 부족의 원천이 되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청구영언』은 가곡을 부르기 위해 편찬한 노래책이다. 바꾸어 말하면 가곡의 노랫말은 시조다.

김천택 이후 김천택보다 몇 살 아래인 김수장도 『해동가요』라는 책을 편찬하였다. 이 책 역시 제목 그대로 가곡을 부르기 위한 노래책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전통 가곡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대부분 시조시를 노랫말로 하고, 관현악 반주가 따르는 5장 형태의 전통 성악곡이다. 가곡(歌曲)은 하나하나 독립되어 있기는 하지만 전체가 음률적으로 짜여 있는 전통 성악 모음이다. 서양식으로 말하면 연가곡(song cycle, 連歌曲)에 해당한다. 조선시대 상류사회에서 애창되었다. 우조(羽調)와 계면조(界面調)로 나누며, 성별에 따라 남창가곡, 여창가곡, 남녀창가곡 등으로 나뉜다. (자세한 것은 필자가 편찬한 네이버 지식백과 창악집성 ‘가곡’ 참조.)
   
네이버 지식백과의 설명을 보아도 우리의 전통 가곡이 무엇인지 감이 잘 안 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더 쉽게 비유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서양음악에 장조와 단조가 있듯이 우리 음악에도 우조와 계면조가 있다. 이 각각의 조에서 보통 음높이로 부르는 노래와 좀 들어서 음을 높이 내는 노래를 각각 작곡했다 치면 4개의 노래가 나올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다른 노래를 작곡하여 일정한 수의 노래를 만들었다고 하자. 예컨대 24곡의 노래를 만들었다고 하자.

그 노래를 순서대로 1번부터 24번까지 번호를 매긴다 하자. 작곡을 했으면 노랫말이 있어야 하니 1번곡에 들어갈 노랫말을 만들면 된다. 그 노랫말에 황진이의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를 사용하기로 한다고 약속을 하자. 그러면 24개의 노랫말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맨날 한 곡에 같은 노랫말을 부르니 재미없다.

그러니 곡은 그대로 두고 1번 노랫말에 황진이의 시조 대신에 양사언의 시조 “하늘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를 대체해서 부른다고 하자. 이렇게 확장하면 1번곡에 수많은 시조를 집어넣을 수 있게 된다. 바로 이것이 전통 가곡의 체계다. 일정한 틀의 곡에 여러 시조 노랫말을 대체하여 불렀던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엣 사람의 시조만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새로 시조를 지어 노래 부르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수많은 시조 노랫말이 가곡에 사용되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가곡을 부르기 위해 18세기 초부터 19세기까지 편찬된 『청구영언』, 『해동가요』, 『동가선(東歌選)』, 『대동풍아(大東風雅)』, 『객악보(客樂譜)』,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가곡원류』, 『고금가곡(古今歌曲)』, 『남훈태평가(南薰太平歌)』, 『여창가요집(女唱歌謠集)』 등이 바로 우리 전통 서정시인 시조문학의 보존처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 여러 가곡 가사집에 남아 있는 노랫말 고시조는 비슷한 것을 하나로 쳐도 약 5,500여수가 된다. 가곡을 부르기 위해 편찬한 노래 가사책 덕에 방대한 양의 우리 시조가 현대에까지 전해 질 수 있었다.

가곡은 성악 자체로도 우리의 중요한 문화유산이지만, 우리 시조 문학을 담아낸 그릇 혹은 틀이었다는 점에서도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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